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느려지고 싶은, 제 이름은‘신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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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신나영┃원주 거주
2015년 07월 401호
꽉꽉 차 있는 2호선 출근 지하철 안,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석 달이 된 나는 그날도 힘겹게 지하철에 올라타 겨우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고 누군가 내 숨을 턱! 하고 잡는 느낌에 순간적으로 곧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서울 생활, 갓 입사한 신입 사원의 이야기를 다룬 어떤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내 모습,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일들, 학생일 때와는 다른 책임감의 무게 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갓 입사 석 달 차인 내겐 조금 감당하기 벅찼던 것 같다. 일은 너무 즐거웠지만, 복합적인 여러 일과 사정들로 나는 그렇게 회사 생활을 그만두고 서울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글로 적으면 몇 줄로 정리되는 상황을 억지로 견뎌보려 했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괴로움’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에 대한 실망과 좌절, 그리고 사회생활을 버텨내지 못한 나를 바라볼 주위의 시선들을 생각하며 내가 나를 더욱 힘들게 옥죄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다 받게 된 한 통의 메시지.
“나영아. 우리 템플스테이 갈까?”
이 짧은 한마디는 힘들었던 내 시간과 생각들을 바꿀 수 있는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전환점이 되었다.
템플스테이를 하자고 이야기해준 친구 윤진이와 감사하게도 윤진이 부모님께서 해인사까지 데려다주신 덕분에 편하고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지만, 막연한 불안감과 나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들이 사라지지 않아 첫날, 조금은 괴로웠던 것 같다.
템플스테이 방사에 짐을 놓고 현각스님과 차담도 나누며 해인사에서 첫날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날은, 불교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공양간에서 욕심껏 공양을 담은 후 큰 후회를 했던 기억이 난다. 저녁 예불을 마치고 평소처럼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작은 빛도 들어오지 않은 방사 안에서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다.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재수나 휴학 한번 하지 않고 7년을 쉼 없이 달려 졸업 전 취업까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고 내가 지금 힘든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면서 무조건 ‘빨리빨리’ 남들보다 먼저 해내려는 마음을 이겨낼 방법은 무엇일지 “진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던 조금은 슬픈 밤이었다.
해인사에서 보냈던 시간은 모두 의미 있고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의 연속이었다고 말하고 싶다(평상의 나무가 살에 박혔던 순간까지도…). 윤진이와 나는 총 4박 5일을 해인사에서 보냈는데, “아침 공양을 못 하는 한이 있더라도 새벽 예불은 꼭 드리자!”라는 우리만의 약속을 했다. 아침잠이 많은 나를 아는 엄마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다행히도(?) 해인사에서 지내는 시간 모두 새벽 예불에 참여해 우리만의 약속을 지켰다.
윤진이와 내가 했던 ‘작은’ 약속 한가지로 인해 ‘작은’ 변화들이 하나 둘 만들어지고 있다. 아침에 늦잠을 자던 나는 아침잠을 조금씩 줄여 도서관에 다니면서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진짜” 공부를 하고 있다. 또, 인우 보살님, 여련화 팀장님과 함께 떠났던 해인사 주변의 희랑대, 지족임, 백련암,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마애불까지! 걷는 것을 포함해 모든 운동을 싫어하고 관심도 없던 나는 보살님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에베레스트 산도 정복할 수 있겠다.”는 산행에 대한 자신감뿐만 아니라, 나를 실패자로만 여기고 스스로 상처를 주던 그동안의 내 모습을 반성하면서 약해지는 나를 이겨내는 힘을 얻게 된 것 같다.
새벽 예불을 드리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눈을 떴던 날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비가 오는 날은 유난히도 우울해지는 마음에 매우 힘들었던 나였는데 고즈넉한 해인사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비와 조용하고 평화로운 해인사 곳곳의 모습들은 비가 오는 날에 대한 괴로운 마음까지도 깨끗이 빗물에 씻겨 내려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보살님들, 스님들과 나눈 차담 시간 덕분에 그동안 일상에서 느끼기 어려웠던 여유로움이나 소소한 즐거움과 따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녹음해둔 빗소리는 조금씩 다시 나태해지려는 나를 다잡아주는 알람처럼 매일 재생되고 있다. 그렇게 해인사는 내게 단순히 종교, 불교, 절의 의미가 아니라 빠르게 에너지를 소비해서 닳아지는 건전지였던 나를 충전기처럼 조금씩 천천히 단단해질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힘이자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해인사를 가기 전, 내 방에는 여러 장의 방 곳곳에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내가 부족한 게 아니야.’ ‘ 남에게 의지하지 말자.’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자.’처럼 나만의 강박이 적힌 종이들인데, 방에 들어오면 종이들을 한 번씩 둘러보며 종이에 적힌 말대로 행동하려는 나만의 규칙을 갖고 그동안을 지내왔다. 그리고 해인사에 다녀온 후, 속 시원하게 이 종이들을 떼어냈다. 많은 시간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자라면서 나는 사회에서 정해진 기준, 주변의 시선을 생각하면서 무조건 빠르고 완벽하게 해내려는 생각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나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지내왔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치열한 사회를 겪어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지내고 있을 것이다.
자기의 이름과 꿈조차 잊은 채 바쁘게 기계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해인사에 들러 나를 돌아보고 진짜 ‘내 이름’, ‘삶’ 그리고 일상에서 내가 사람들에게 실천할 수 있는 나눔과 배려는 어떤 것이 있을지에 대해 공부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지 제안해보려 한다.
어느 성공한 사업가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주고서라도 청춘의 시간과 바꾸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시간은 돌릴 수 없기에 더욱 값지지만,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내 또래의 친구들은 여전히 취업, 학력, 스펙에 열중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처럼 어릴 때부터 경쟁에 익숙해지고 빠름의 압박을 받는 친구들에게, 그리고 ‘자신’을 잊고 지내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우리는 충분히 빠르게 지내왔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씩 느려져도 괜찮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조만간 빠름에 익숙해져 지쳐있는 엄마와 함께 다시 해인사에 찾아갈 계획이다. 엄마께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는 아직 불교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주 소중한 가르침과 깨달음을 얻게 해주신 부처님, 어쩌면 한번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우리를 따듯하게 반겨주셨던 스님들, 점심·저녁뿐만 아니라 새벽에 피곤하실 텐데도 법고를 울려주시는 스님들, 짧은 시간 동안 번거롭고 바쁘실 텐데도 신경 써주시고 예뻐해 주신 보살님들♥, 그리고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우리를 해인사에 불러주신 현각스님, 든든한 내 친구 윤진이까지 평생 잊지 못할 따듯하고 포근한 추억을 만들어주신 모든 분에게 이 글을 통해 감사한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