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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께서 떠나시면 누구에게 공양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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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해인 편집실 2015년 06월 400호
부처님 오신 달을 보냈다. 연등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낮에는 큰 법당 너른 마당에 등 그늘을 드리웠다. 그늘 드리운 등 아래를 걷는 일이 천상의 어디쯤을 노니는 것처럼 황홀했다. 밤에는 그 불빛이 얼마나 은은한지 시름을 잊기에 충분했다. 광화문광장에 구름처럼 불자들이 모여 세계평화를 기원했고, 깨달음을 추구했다. 시름 깊은 이들을 찾아가 어깨를 다독이는 자비실천도 여느 해처럼 활발했으니 부처님 오신 기쁨을 이웃과 나누었다.

부처님은 이 땅을 편안케 하기 위해 오셨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이 생을 붓다의 생으로 하리라. 천하가 둑카(Dukkha, 苦, 불만족)에 휘둘렸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이 생이 윤회하는 마지막 생이 되리라.” 부처님 탄생게다.
부처님은 세상이 둑카에 휘둘려 있다고 했다. 세상의 일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노병사를 겪지 않을 수 없다.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를 받아들이라고 했다. 거친 물결을 만나거든 물결을 타야 하듯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집멸도苦集滅), 그리고 고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 팔정도가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다. 알았으면 행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열반에 들 즈음 부처님은 육신의 마지막 힘을 모아 제자들에게 당부했다. 그러므로 부처님 오신 날에 떠나시던 날의 유훈을 깊이 새겨보는 일은 탄생게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하는 일이다. 디가니까야, 유행경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아래 인용은 장종천 편역, ‘땡큐 붓다’, 운주사]

부처님이 열반에 들 즈음, 때맞춰 불어온 저녁 바람에 사라나무 숲이 부드럽게 흔들었다. 사라나무의 새하얀 꽃잎이 비처럼 흩날렸다. 아난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 사라 숲의 요정들이 스승께 베푸는 마지막 공양이구나. 그때 붓다는 눈을 뜨고 아난다에게 말하였다.
“아난다, 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여래를 공양하는 게 아니다. 아름다움 빛깔에 향기 좋은 꽃을 수레바퀴만큼 크게 역어 나를 장식한다 해도 그건 진정 여래를 공양하는 게 아니다. 아난다, 진정한 공양은 무엇인가? 빅구, 빅구니, 우빠사까, 우빠시까들이 간절히 법을 받아 법을 존경하고 법답게 살아가는 것, 나아가 5온 12처 18계 안에 나와 나의 것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 이것이 여래에게 올리는 진정한 공양임을 알아야 한다.”

붓다께서는 거듭 제자들에게 궁금한 것이 있거든 물으라고 했다. 한 말씀이라도 더 남겨주고 싶었던 것인데, 어떤 빅구가 이렇게 질문했다. “세존이시여, 지금까지 저희들은 붓다를 따르고 공양을 올려서 복전을 지었는데 세존께서 떠나시면 누구를 따르고 누구에게 공양을 올려서 복전을 지어야 합니까?” 누군가는 꼭 했어야 할 결정적인 질문이다. 붓다께서 대답하셨다.
“네 가지 인연으로 복전을 지어야 한다. 첫째, 굶주린 이웃에게 음식을 주어 그 목숨을 살리는 것으로 복전을 짓고, 둘째, 병든 이웃을 정성껏 보살피고 간병하는 것으로 복전을 짓고, 셋째, 가난하고 고독한 이웃을 널리 베풀고 위로하는 것으로 복전을 짓고, 넷째, 올바른 수행자에게 옷과 밥을 공양하고 외호해주는 일로 복전을 짓는 것이다. 이 네 가지가 재가 수행자들이 진정 여래에게 공양하는 것이다.”

대중들이 모두 침묵하자 아난다가 일어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상가에는 한 사람도 의심이나 의혹을 품은 자가 없습니다.”
붓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침묵하다가 마지막 유훈을 말씀하셨다. “그대들아, 결합된 것은 반드시 흩어진다. 방일하지 말고 힘써 정진하라.”

크고 거창한 가르침이 아니다. 눈앞의 고통을 보거든 외면하지 말라는 것이다. 굶주림과 병고, 고독한 이들을 구제하고, 승가를 외호하라는 가르침이다. 어려운 가르침이 아니다. 불교는 나를 위하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고통에 힘겨운 이웃을 위해 존재하는 하는 실천행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황교안 법무장관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것을 계기로 바람직한 종교와 종교인상을 생각해보는 논의가 일고 있다. 황 후보자의 종교 편향과 종교관에 대한 문제제기다. 동아일보 등의 보도에 따르면, 황 후보자는 개신교 우월적 사고를 가진 이다. 그 예로, 2007년 아프가니스탄 선교 중 피랍되어 사망한 샘물교회 사건에 대해 “최고의 선교는 언제나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선교에는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옹호했다. 당시 샘물교회의 선교 방식에 대한 비판여론이 일자 “그들에 대한 부당한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인터넷에도 글을 올리고 댓글도 달아야 한다”고 했다. 황 후보자는 교회법이 사회법보다 우선이며, “부교역자(무목사 등)의 사택에 대해서도 목사관과 동일하게 비과세 대상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납세에 반대했다. 공무원시험을 일요일에 치르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했는데, 개신교인 아닌 사람들은 평일에 시험을 치르는 불편을 감수하라는 것이다. 병역 문제도 쟁점이 되고 있다. 그는 군대에 가지 않았다. ‘만성 담마진’이라는 피부병을 이유였는데, 이듬해에 황 후보자는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병마를 견디며 합격한 인간승리인지, 병역 면제를 위한 꾀병이었는지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다.

대한불교청년회와 바른불교재가모임, 참여불교재가연대 등 불교계 단체들은 “독실한 보수 기독교 신앙을 가진 황 내정자의 종교편향성은 건강한 열린 신앙이 아니라 맹신 수준이다. 그가 배타적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국정철학을 펼쳐 갈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후보자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비판도 일고 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는 “국민의 지지가 아닌 정권의 안위에만 천착해 부적절한 인물을 총리에 지명한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리더십을 재고할 것도 요구합니다. 또한 회전문 인사라고 비판받는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혁 등 현 정부의 투명하고 합리적인 인사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도록 향후 적극적인 문제제기와 비판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종교는 자기 울타리를 치기 시작하면서 종교가 아닌 무엇으로 변질된다. 영양이 풍부한 물질이 썩으면 독성이 더 강하다. 공격적인 선교는 다른 문화권에 대한 무례라는 것은 상식이다. 종교인 과세는 사회적인 요구이다. 자기 곡간을 먼저 채우겠다는 것인데, 반종교적인 발상이다. 사업가도 이익을 독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네티즌들은 박근혜정부에 맞춤인 인물이라고 꼬집었다. 박근혜정부와 자기중심적 개신교에 대한 냉소와 한숨이 깊다.

<해인> 400호다. 바른 불교를 위해 정진한 시간들이다. 나무와 콩은 종이와 잉크가 되어주었다. 디자인과 인쇄 사업자와 노동자들의 땀, 굉음을 울리고 돌아가준 기계는 혼이 담겨 있었다. 세상을 밝히는 글을 쓰기 위해 노심초사한 필자님들, 방장스님, 주지스님 등 사중의 스님들은 든든한 후원자다, 독자 여러분은 <해인>의 존재 이유다. 불전에 삼배 올리며, 인연 지은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방일하지 않고 정진하겠다는 다짐을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