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호랑이, 그리고 외할머니와 혜림이 인연이야기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인사 향기 - 혜림┃해인사 포교국
2015년 06월 400호
“할머니 우리 어디가요?”
“응, 오늘 우리 해인사로 소풍가는 거야.”
나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 댁에서 종종 지내곤 했고 서울에서 방학을 하면 외가인 거창에 가서 늘 할머니 손을 잡고 가던 곳이 해인사 였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 전인 예닐곱살로 생각이 난다. 꼬불꼬불 시골길을 버스타고가다 25분 정도를 부지런히 걷다보면 드디어 큰절 해인사 입구인 일주문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 당시 일주문까지 오는 길에 나무를 비스듬하게 잘라 인두로 좋은 글을 써서 판매하시던 거사님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그날도 할머니와 함께 언덕을 오르고 있는데 누더기 옷을 입으신 어떤 분이 내려오시는 모습을 보고 “와, 거지다”라고 소리쳤고 그 소리에 우리 외할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라시며 어쩔 줄 몰라 하셨다. 누더기 옷을 입으신 그 스님은 나의 철없는 모습에 껄껄껄 웃으며 “그래, 나는 빌어먹고 얻어먹는 거지다. 그래, 니는 어디서 온 누꼬?” 하셨고 그 말씀에 나는 “저는 서울 우리 집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었다.
그 광경을 본 외할머니는 연신 그분께 합장하시며 어쩔 줄 몰라 하셨고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분은 빙그레 웃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분은 아랫마을로 내려가시고 난 다시 할머니 손을 잡고 해인사로 올라왔던 유년시절의 기억….
그날 그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분이 바로 가야산 호랑이라 불리던 성철 스님이었단 사실을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고 그날의 인연 때문인지 나는 지금 해인사 포교국에서 템플스테이를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인연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 같다.
어린 시절 내 손을 잡고 해인사에 데려다 주시던 우리 외할머니께선 늘 그런 말씀을 한결같이 해 주셨다. 인생이란 잠시 소풍 나온 것이라고. 그 소풍에 톡 쏘는 사이다와 삶은 달걀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인생을 잠시 소풍나온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던 우리 외할머니는 지금 여기 계시진 않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못난 나 혜림의 소풍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비록 톡 쏘는 사이다와 삶은 달걀은 없지만 혜림의 소풍엔 새로운 친구들이 많아서 나는 오늘도 외롭지 않거니와 혹 나중 친구들과 모두 헤어지더라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