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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의 끝에 누가 나를 맞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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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 법구경 - 김서리 2015년 06월 400호
ㅍ‘화려한 봄날에는 아니 오시더니, 여름 앞둔 이 오월에서야 날 보러 오시나이까.’라며 멀리, 그리고 가까이의 나무 잎사귀들이 짐짓 여린 척하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 속에 열정을 품은 채 연둣빛을 쏟아내고 있다. 그 아래, 오랜 바위들을 품은 계곡은 그저 백 년 전 오늘처럼, 십 년 전 오늘처럼 여일하게 흐르고 있다. 이제야 겨울잠에서 깨어나 동굴 속에서 갓 나온 것 마냥 나는 햇살과 공기를 만끽한다. 해인사 매표소를 지나 계곡을 옆에 끼고 해인사로 향하던 오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렇게 자연을 품어가며 도착한 해인사. 유학기간과 한국적응기간이 길어진 만큼 십 수 년 만에야 찾은 해인사인데 낯설지 않았다. ‘집’에 온 듯한 이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이것이 고찰이 주는 힘이다. 무구한 역사를 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생기가 넘치는 고찰, 해인사가 주는 힘이다. 그곳을 찾는 이에게 참된 나의 집에 돌아온 듯한 느낌을 주는 것 말이다. 집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은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여행길의 끝에 기다리고 있던 오랜 벗 때문이었다.
인연이 시작된 장소가 항상 관계의 뿌리인 것은 아니지만 경주라는 땅이 가진 묘한 에너지가 있어, 경주에서 처음 만나 곱게 인연을 키워간 이들에 한해 ‘경주 인연’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해인사에는 17년째 내 경주 인연인, 대학동기가 살고 있다. ‘살고 있다’라는 표현보다, 해인사에서 그녀는 ‘아침을 맞이하고 일을 하고 자신을 살피며 하루를 마친다.’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지인들이 해인사에 갈 일이 있다하여 지체 없이 그들을 따라 나선 건 오라하지 않았지만, 기다릴 것만 같은 내 오랜 벗, 경주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점심공양을 마친 후 그녀가 일하는 곳을 찾아 갔다. 저 멀리 그녀가 문을 열고 서서 손짓을 한다. 2년 만의 해후이다. 귀여운 고집을 담은 머리스타일, 가야산의 어느 여유 있는 소나무 같은 그녀 팔의 움직임, 마치 오늘 들은 계곡물소리 같은 그녀의 목소리. 그녀는 여전했고 또 변해있었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오랜 세월을 두고 만나다가 또 한동안 떨어져 지내다가 만나는 인연. 그 인연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저 깊다. 공존했기에 깊고, 또 서로의 부재 속에서 다른 삶이 들어와 한바탕 살아내고 있었기에 한 달음에 달려가 메우고 싶은 공백 또한... 깊다. 두 사람 서로가 바라보는 각자의 마음자리는 나와 상대 사이에 있었던 시간과 공간 속에 채워졌던 씨앗들이 피워낸 꽃이며 열매 같았다. 해인사에서 나를 맞이하였던 그녀는, 내가 느꼈던 그녀는, 어쩌면 내 삶의 한 부분이 피워낸 꽃이며 열매가 아니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의 여정 끝에 나를 맞이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 마음자리가 만들어내는 것들이다. 이 마음자리에 심고 있는 씨앗들이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인생의 여정이 끝나면 꽃으로 활짝 피어나고 옹골찬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것이 공덕의 꽃이며 공덕의 열매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법구경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tath\'eva katapuññam pi asmā lokā paraṃ gataṃ
따테와 까따뿐냠 삐 아스마 로까 빠랑 가땅
puññāni paṭigaṇhanti piyaṃ ñātīva āgataṃ. ①
뿐냐니 빠띠간한띠 삐양 냐띠와 아가땅

공덕 쌓은 이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때 공덕들이 맞이한다.
소중한 이가 돌아올 때 친척들이 맞이하듯. ② 《법구경 220》


위의 시는 법구경 제16장 ‘사랑하는 것(Piya)’편의 시이다. 깊고 소중한 인연을 우리가 반갑게 맞이하듯, 무량공덕 지은 이를 반갑게 맞이하는 것은 바로 그 공덕일 것이다. 그 공덕의 열매일 것이다.
가는 길도 좋고 동행했던 이들도 그저 훈훈했으며 여정의 끝에 나를 반기는 벗 또한 참 따뜻했던 지난 오월의 하루처럼, 오늘이 좋고 함께 하는 이들이 그저 훈훈하며 이 인생의 여정 끝에 나를 반기는 것 또한 내가 지은 공덕의 숲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지금 내 마음자리에는 공덕의 묘목들이 있는가. 씨앗 심은 자리가 있기는 한 것인가... 내 마음자리 살피다가 이내 얼굴이 붉어진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알았으니 지금부터 심으면 될 일이다. 그 오월, 그 날의 모든 것들이 듬성듬성 게으른 내 마음자리를 오롯이 비추고 지나갔다.

이제 경주 인연이 ‘해인사 인연’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될 것 같다... 그 인연자리가 더 깊어지고 빛이 나겠지... 그리하여 이 고운 인연들과 때로는 함께 때로는 각자 이 인생의 여정을 참되고 아름답게 채워가게 될 것이다...

① tath\'eva: 마찬가지로. katapuññam: 공덕 쌓은 이를. pi: ~도 또한. asmā: 이것으로부터. lokā: 세상으로부터. paraṃ: 저쪽의. gataṃ: 간. puññāni: 공덕들이. paṭigaṇhanti: 맞이한다. piyaṃ: 소중한 이를. ñātī: 친척들이. iva: ~하듯이. āgataṃ: 돌아옴을.
② 호행복자好行福者 종차도피從此到彼 자수복조自受福祚 여친내희如親來喜 (한역법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