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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인물의 반이 이곳에 있다 6- 삼도수군도독, 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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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천추寶藏千秋 - 종현 2015년 06월 400호
해인사 고려대장경은 1962년 국보 32호와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가 되었다. 대장경이 칠백여년동안 수많은 화마와 전란속에서도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스님들의 성보를 모시는 정성과 불자들의 노력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특히 6.25 동란때는 군인들의 역할이 컸었는데 공군의 김영환장군 이야기는 안팍으로 널리 회자되는 문화재 보전의 역사적 일화이다.
이렇듯 많은 전란을 거친 우리 민족은 조선시대부터 문화유산을 수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숭유억불의 조선 국가적 흐름속에서도 팔만대장경만은 민, 관, 군이 일치가 되어 최우선으로 보존하였으며 임진왜란을 거치면서도 정인홍이라는 뛰어난 의병장이 있어 환란을 면할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선 중기 이후에는 병마절도사나 삼도수군통제사, 경상도 좌, 우병사등 군관련 인사들의 해인사와 홍류동 방문기록이 유난히 눈에 띈다.

삼도수군통제사
1 이장오李章吾 1755년 118대 삼도수군통제사
2 이방일 1784년 140대 삼도수군통제사
3 윤득규尹得逵 1796년 제149대 삼도수군통제사
4 이응식李應植 1841년 174대 삼도수군통제사, 1766년 경상좌도수군절도사, 1769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
5 이경순李景純 전임훈련대장前任訓練大將 제187대 삼도수군도독三道水軍都督
6 이주철李周喆 1871년 195대 삼도수군통제사
7 권용섭 196대 삼도수군통제사
8 민형식閔炯植은 제207대 삼도수군통제사이다. 1891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한 인물로 어려운 사람 돕기를 좋아하며 의를 숭상하는 인물로 김정희의 필법을 이어받아 글씨에도 능한 손꼽히는 서화가로 불렸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으로 명성황후가 충주로 피신할 때 호종하였으며, 별천別薦을 시작으로, 남행별군南行別軍·선전관·훈련원첨정·철산부사鐵山府使를 거쳐 병조참의·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1892년 범운 스님이 해인사 주지로 있을 때 주지스님을 도와 경홍전(경학원)을 건립한 인물이다. 낙화암벽에 새겨있다.

기타
9 김형노는 1747년(영조 23) 경상좌수사慶尙左水使에 임명되었고, 이후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등을 역임하였다.
10 홍우보 갑자맹하과차甲子(1744)孟夏過此
1755년(영조 31) 참군(參軍)을 거쳐, 1761년(영조 37)에 충청병우후忠淸兵虞侯, 1765년(영조 41)에 진주영장晉州營將, 1768년(영조 44)에 삼척영장三陟營將을 역임하였다. 삼척영장 재직 시에 울릉도에서 인삼을 불법으로 캐어오다 발각되어 유배되었다. 이후 1771년(영조 47)에 금군장禁軍將에 제수되었으며, 1787년(정조 11)에는 구성부사龜城府使를 지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11 김윤金潤 우병사右兵使 병인(1746)9월9일丙寅九月九日
12 양세현梁世絢 1784년 경상좌도병마절도사
13 윤희동 1778년 경상우병사
14 백사은 1784년 경상좌도병마절도사
15 이격李格 1790(정조14)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
16 권탁 1817년 경상우병사
17 이경희 1830년 경상우병사
18 김일金鎰 1857년 경상우병사
19 이원희李元熙 1858년 경상좌병사
20 이장회李長會 1877(고종14)년 경상좌도수군절도사, 남해와 진주현령縣令을 지낸 아들 이병수李秉洙와 함께 새겨져있다. 1866(고종3)년 서수라권관西水羅權管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근무성적이 우수하여 임금으로부터 활과 화살 등을 하사받았다. 1877(고종14)년에 경상좌도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에 임명되었다. 이후 전라도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 ‧ 충청도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등을 역임하였다.
21 서정규 1891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
22 이교준은 1895년 충청도병마절도사兵馬節制使에 임명된 인물로 홍류동 벽에 ‘나무아미타불’ 옆에 함께 각이 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