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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원 교육국장 진광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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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취재·정리 | 정 영 2015년 06월 400호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 무릇 군자는 만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걸은 후에 세상을 논하라고 했다.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과 몸으로 경험해 쌓은 지혜가 겸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진광 스님이 들고 다니는 가방 안엔 대여섯 권의 책이 들었다. 피에르 쌍소의 \'게으름의 즐거움\'을 비롯해 베네딕토와 수피즘 관련 서적들이다. 스님은 늘 책을 읽는다. 2010년부터 서울 생활을 하면서 사 모으기 시작한 책만 해도 천권이 넘는단다. 역사, 종교, 인문, 여행 등등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기면 계속해서 책을 사서 읽는다. 그리고 어느 날 훌쩍 여행을 떠나며 살아왔다. 98년도에 하안거를 마치고 무작정 인도로 떠났다. 그것을 시작으로 때때로 시간이 여유롭고 의지가 솟으면 어느 곳으로든 걸음을 옮겼다. 6개월 동안 시베리아 횡단을 하고 또 6개월 동안 중남미에 머물고 또 6개월 동안 아프리카에서 지냈다. 그리고 유럽을 비롯해 동남아, 중동 등 지금까지 130여 개국을 다녔다.
\"선방에서 벽만 쳐다본다고 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니잖아요.\"
옛 스님들은 금강산에서 한철을 보내고 범어사에서 다음 철을 나기 위해서 세달 동안 걸으셨단다. 산과 강 구경도 하고 탁발도 하고 돈 벌어 자신의 양식을 마련해서 그걸 갖고 세달 만에 선방에 앉으셨단다. 그 또한 구도자의 지극한 여정이었을 것이다.
\"여행은 자기한테 돌아오는 과정이에요. 떠난다는 건 자기를 찾아나서는 것이고 그것은 다시 자기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사실은 태어나면서부터 여행은 시작된 거예요.\"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다녔듯 진광 스님은 발걸음을 옮긴단다. 여행을 하면서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정치와 종교를 경험한다. 그러다보면 타 종교인들이 틀린 게 아니라 우리와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단다.
\"이슬람 수피즘을 보면 우리와 유사한 부분도 많고, 베네딕토 수도 규칙을 보면 정말 잘 만들었기에 지금까지 이렇게 이어져오는구나 싶어요.\"
그렇기에 진광 스님은 타 종교를 모르면서 비판하는 것도, 우리 것이 무조건 옳다는 독단도 버려야 할 것이란다. 그러기위해서는 스님들이 다른 종교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고 나아가 다른 나라에 가서 더 많은 것들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신라시대엔 스님들이 최고의 교양인이었어요. 당나라에 유학 가서 새로운 문물을 배워온 유일한 사람들이었죠. 그래서 스님들이 사회를 이끌어나갔어요. 우리 스님들이 그렇게 넓은 문물 속에서 공부해서 교양인이 되어 중생을 교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광 스님은 길 위에서 공부하고 길 위에서 중생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려고 한다. 공부해서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지식이기 때문이다. 배우는 게 궁극의 목표가 아닌 그 배움을 통해 공헌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진광 스님은 동국대 졸업과 동시에 출가했다. 그것은 어느 한 길을 선택하는 것 이전에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김성동의 \'만다라\'와 최인호의 \'길 없는 길\'을 수없이 읽던 시절이었다. 수덕사로 가니 주지로 계셨던 법장 스님이 손수 삭발을 해주시고 그렇게 은사 스님이 되었다. 진광 스님은 은사스님과 방장스님을 7년간 모셨다. 10년간은 선방에 다녔고 그러곤 세계 곳곳으로 걸음을 옮겼고 총무원에서 일한 것도 7년이다.
\"방장이신 원담 큰 스님 모셨던 3년이 내가 지금까지 중노릇하는 가장 큰 기반이 아닐까 생각해요. 어른 스님이 무심코 던지는 한 마디나 행동 하나하나가 그 어떤 법문보다 감화하게 합니다. 젊은 스님들이 어른 스님 모시는 걸 꺼려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진광 스님은 큰 스님 시봉하면서 같이 목욕탕에 가고 염불당에서 노래도 불렀던 그 시절을 자주 그려본다. 그리고 선방에 다니는 내내 은사 스님이 늘 공양 오셔서 제방 스님들 외호하시던 모습도 더듬어본다. 그러다보면 은사 스님이 살아계실 때 왜 같이 여행 한번 못 갔을까 싶단다.
\"은사스님 입적하시고 다비를 못 했어요. 시신을 기증하셨기에 몇 년 후에야 뼛가루를 스님 사시던 토굴 뒤에 뿌렸지요. \'헛되이 정으로 돌을 찍어 비석을 만들 필요 없나니 지나가는 나그네의 입이 곧 비석이니라\'하는 옛시가 있어요. 입적하시면서도 그런 가르침을 주신 거죠.\"
진광 스님은 에베레스트에 가서 은사 스님의 옷가지를 불살라드렸다. 스님이 생전에 에베레스트에 가보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광 스님은 때때로 그곳을 찾는단다.
\"난 우리 스님이 에베레스트의 어느 바람으로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은사 스님이 총무원장을 하실 때 진광 스님은 수행 사서로 지냈다. 그러고는 2010년에 교육국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불학연구소 사무국장 연수국장 교육국장 소임을 차례로 맡아서 살고 있다. 그 안에서 여러 일을 하고 있지만 진광 스님은 스님들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며 가장 즐겁단다.
\"우리 안에 갇혀서 우리끼리 하는 불교가 아니라 스님들이 세계인이 되어 세계인의 발걸음으로 살면 좋겠어요. 최고의 길을 가며 시대를 이끄는 인물이 됐으면 좋겠어요.\"
어느 절의 주지로 살면서 신도들이 가져다주는 것 먹고 살며 불사하는데 공들이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향해서 나아가기를 바란단다. 스님들이 해외순례를 통해서 그것을 깨닫고 노력했으면 한단다.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 한다는 카프카의 말처럼 우리의 잘못된 의식도 깨부수어야지요. 도끼로도 안 되면 망치로라도 쳐내야지요. 부처님의 법이 벽이 되면 안 돼요. 살불살조해야합니다.\"
진광 스님은 많은 스님들을 더 다양한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처음엔 경주 남산 답사를 시작해서 인도 부처님 성지 순례와 중국 선종사찰 순례와 일본 고찰 순례를 했다. 반응이 좋아 실크로드, 티베트, 미얀마 순례도 했고 올해는 유럽까지 나가 그리스, 터키까지 순례할 생각이다. 그때마다 어디를 가서 어떤 것을 보고 무엇을 할지 계획을 짜는 것은 진광 스님의 몫이다. 그저 둘러보고 오는 관광이 아니라 구도자들의 순례길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인도의 부처님 성지에 갔을 때 어느 책에서 이런 내용을 보았어요. 어떤 신라스님이 인도에 유학을 가서 불교 공부를 하고 졸업을 하니 나이가 50이 넘었대요. 다시 사막을 뚫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매양 해 뜰 때나 해 질 때면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인도에서 입적했다는 행장을 들었어요. 그때 생각에, 훗날 내가 스님들을 많이 모시고 와서 그 외롭게 돌아가신 구법승을 위한 천도재를 지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해외 순례 프로그램을 만들 게 된 모티브예요.\"
그 후 정말 50여명의 스님들과 함께 그 성지에 가서 금강경을 독송하고 그 스님이 경전을 사경하다가 입적하셨다는 나무 밑에서 신라의 구법승들을 추모했다. 모두가 눈물을 흘렸단다. 그렇게 스님들이 성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연수를 마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깊이 감회할 수 있도록 길을 인도하며 진광 스님은 많은 보람을 느낀단다. 그리고 진광 스님이 교육원에 있으면서 또 한 가지 보람되게 생각하는 것은 행자교육에 변화를 준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옛날식만 고집하면 되겠습니까. 계율만 가르칠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하자는 취지로 새로운 특강 시간을 만들었어요. 본래는 비구 큰 스님들만 특강을 할 수 있었는데 비구니 스님들과 재가불자들도 할 수 있도록 했지요.\"
행자교육이 생긴 22년 만에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 이런 변화에 대해서 여기저기서 말도 많았다. 그러나 진광 스님은 무모해보일 정도로 밀고나갔다. 스님들이 모든 일에 \'안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한번 해보자\'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중도라는 것은 바른 길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치우쳐 보고 다시 가운데로 가는 힘을 얻어 걸어가는 것이 중도가 아닌가 말씀하신다. 그렇게 개혁의 뜻을 굽히지 않고 밀고나가 첫 특강을 고려대 철학과 조성택 교수가 맡았다. 진광 스님은 그때의 강의를 잊을 수가 없단다.
\"조성택 교수가 행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어요. \'세상의 중심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아무도 대답을 못했어요. 다시 물었지요. \'그럼 사람 몸의 중심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때에 가장 아픈 곳이 사람 몸의 중심입니다.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면 그곳이 몸의 중심이 됩니다. 그와 같이 세상의 중심도 어렵고 고통 받고 힘들게 살아가는 중생이 있는 그곳입니다. 행자님들이 공부를 많이 하셔서 그런 세상의 중심을 향해서 나아가십시오.\' 그 강의를 듣고 모두가 감동 받았습니다.\"
진광 스님은 생각한다. 재가불자들이 밖에서 바라보는 스님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고, 그리고 어떤 수행자를 바라는지에 대한 얘기도 들어야 하는 거라고, 귄위 안에서 나쁜 얘기는 안 들으려 할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바른 길을 가야할 것이라고.
진광 스님은 \'승리의 그날까지 영원한 전진!\'을 외쳤던 체 게바라를 좋아한다. 그리고 \'배고픈 채로 무모할 정도로 도전하라\' 했던 스티브 잡스를 좋아한다. 그런 스님은 남의 뒤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앞장서서 변화를 주도해 나가야 할 것이란다. 그래서 오늘도 \'다르게 생각\'하고 \'불가능한 꿈\'을 품는다.
\"여기서 밥값 하다가 또 어디로든 떠나겠지요. 이번엔 지중해로 가볼까 합니다. 그러고는 또 선방에 가서 공부하고.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나중에 돌아보며 회한에 젖는 것, 그게 인생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