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일상을 뒤집어엎는 장치다. 우리 의 탈춤은 대표적인 전복의 난장이다. 평소 계급과 권위에 억눌렸던 이들이 탈을 쓰고 한바탕 조롱을 퍼붓는다. 조롱받는 이들도 그 조롱을 탓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이 늘 축제일 수 없듯이 축제의 기간은 짧고 일상은 길다. 탈춤놀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5월은 축제의 달이다. 부처님오신날이 있는 달이다. 부처님의 탄생 설화는 다시 읽어도 새롭다.《과거현재인과경》은“보디삿따는 어머니의 태 내에 계셨지만 조금도 더럽지 않고 비단에 쌓인 진주처럼, 계단을내려오는 법사처럼 두 팔과 두 발을 벌리고 탄생하니, 먼저 아홉 수장이 첫 경배의 물을 뿌려 아기와 어머니의 몸을 씻겼다”라고 시작한다. 이어“그때 하늘에서 광대무 변한 빛이 흘러 수천의 세상이 열리고 보디삿따는 동편으로부터 편편한 발을 들어 사자처럼 당당하게 일곱 걸음을 사방으로 걷고 한 손은 하늘을,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이렇게 소리 높이 외쳤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이 생을 붓다의 생으로 하리라. 천하가 둑카(Dukkha, 고)에 휘둘렸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이 생이 윤회하는 마지막 생이 되리라.”
이렇게 선포하자 그 음성이 하늘로 길게 뻗치고 지옥까지 울려 퍼졌다.
[장종천 편역, <땡큐 붓다>, 46-47쪽]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는 위 경전에서 가리키듯 인간의 존엄의 선언이며, 중생을 편안케 하겠다는 서원을 되새기는 것이다. 올해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는 올해의 표어를‘평화로운 마음, 향기로운 세상’으로 정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염원하고 화해와 자비의 향기가 넘쳐나
는 세상을 구현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종정 진제 대종사가 제안해서 열리는‘광복 70년,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기원대회-세계 간화선 무차대회’도 봉축행사의 일환으로 함께 치러진다. 15~17일 세계의 고승들이 참석해 열리는 이 대회에서는‘세계평화 기원 선언문’과 조계종
이 만든‘한반도 통일 선언’이 발표될 예정이다. 따라서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평화와 통일의 염원이 더욱 간절한 때이기도 하다.
지금, 세계의 평화는 멀어졌고, 남북의 통일은 아득하다. 그래서 평화와 통일은 더욱 간절한 것이겠지만, 이상형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먼 미래의 상상 속의 세상이긴 하지만, 헛된 욕망의 산물이 아니다. 깨어지기 쉬운 유리그릇처럼 애지중지 보듬어야 할 현재이어야 한다. 그래서 염원하는 것
이다. 먼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금 눈앞의 일처럼 생생하기도 하다.
현대사를 보면 6·25전쟁의 상흔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1953년 7월 정전협정을 체결했지만, 남북의 군사적 충돌은 그치지 않고 있다. 남북의 대치는 서슬이 퍼렇다. 때로 전쟁 전야처럼 아슬아슬하다. 그러나 2000년 6·15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처럼 화해의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 남북의 역사이기도 하다. 6·15 남북 공동선언은 정상회담의 결과물이다.
5개 기본 조항은
1.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 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이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5개항 외에“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는 것을 부가했다.
지금,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은 기대난망한 상황이다. 1월이면 으레 희망적인 전망이 나오는데, 올해의 전망은 그렇지 않다.“북한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기는 어렵다. 북한이 핵 개발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은 우리나라가 북한의 핵 개발을 사실상 용인 하는 것으로 비치게 되기 때문이다.”
[안정식, sbs뉴스 취재파일-남북 정상회담이 어려운 이유, 2015. 1. 5]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역사는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당국이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 남북당국의 책임 있는 이들은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반면 존중해줘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원하는 것을 주지 않기 위해, 상
처 입을 것들을 헐뜯는 일을 골라서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래서는 백년하청이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불교계가 발표 할 ‘세계평화 기원 선언문’ 과 ‘한반도 통일 선언’ 에 관심이 모아진다.‘선언은 선언일 뿐’ 이라며 지레 폄하하거나 무관심할 일은 삼갈 일이다. 선언을 이뤄나가기 위한 실천계획을 담보하도록 종단의 지도부에 요구하고 동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까지 없었던 일이다.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일이지 않은가.
계절의 변화는 전복함으로써 이뤄진다.봄은 겨울을 전복시키는 것이며, 여름은 봄의 전복이다. 가을은 여름을 전복시키는 것이며, 겨울은 가을의 전복이다. 전복시키지않고 계절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축제는 전복을 꿈꾼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에 불교계는 평화와 통일을 꿈꾼다. 평화가 아닌
것, 통일을 가로막는 것을 향해 조롱을 퍼붓고, 그리하여 평화와 통일을 향한 깃발을 들어올리는 것이다. 계절의 순환에서 건너뛰는 법은 없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발을 들어올리고 온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동작이 있어야 한다. 평화와 통일을 향한 길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