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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 처마 끝에 달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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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금선┃해인사승가대학 1학년 2015년 05월 399호
대적광전 처마 끝에 달이 걸렸다. 작년 처음 해인사에 도착했을 때 보았던 반달….
처음 출가 결심을 하고 은사스님 차를 타고 내려온 해인사는 따뜻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기운보다는 차갑고 성성한 할아버지의 기운이 서려있었다

그 기운 속에서 내 첫 가야산 생활이 시작되었다.
해인사 행자실은 소문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오기 전 누군가 내게 했던“해인사 행자실은 해병대보다 힘들다”라는 말은 매일매일 내 피부에 와 닿았다.
눈을 뜨자마자 시작되는 소임과 눈을 붙이기 전까지 계속되는 소임. 그 소임과 소임 사이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호랑이 같은 행자반장이었다.
얼마나 지독하던지 하루에도 스무번씩 환속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이들었고, 눈물도 흘렀다. 참회도 참 많이 받았다.
108배 300배 500배 1000배…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은 이 참회를 하고 나면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차분히 내려 앉으며 몸속이 신심으로 가득 차는 고양감을 느꼈다. 이를 악물고 참았다.
10개월의 행자시절 동안 내가 참을 수 있었던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아버지 같은 은사스님이다.
은사스님께서는 10개월 동안 세 번이나 찾아오셨다.
인천-합천이라는 찾아오기 힘든 거리. 두 번째 찾아오셨을 때는 한 달여의 용맹정진 끝에 직접 법명을 적어와 전해주셨고 세 번의 만남에서 마음을 내려놓는 방법과 대중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방법, 원력을 세우는 이유 등을 알려 주셨다.
두 번째는 어머니 같은 원주스님이다.
해인사 대중이라면 누구나 정수당 앞에서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들을 수 있는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원주스님이다. 행자 10개월 동안 나는 7개월여를 원주시자로 생활했는데 그 기간 동안 원주스님께서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셨다. 물질적인 지원은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인 부분까지… 행자생활을 해 본 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원주스님이셨다.
행자들이 힘든 일을 겪으면 행자들을 부르시거나 직접 행자 대방에 찾아와 좋은 말씀을 해주셨고, 본인의 수행생활에 비추어보아 초심자인 행자들이 주의해야 하거나 알아야 할 것을 설해주셨다. 그리고 항상 웃어주시고 믿어주셨다.

세 번째는 김영미 보살님, 내 어머니이다.
스물일곱,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많은 생각 끝에 결심한 내 출가는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가정을 버려두고 간다는 죄책감이 컸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고 집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출가를 해서 탐·진·치를 여의고 부처님
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서로 상충되어 쉽게 출가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몇 달을 혼자 고민하던 끝에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의외로 흔쾌히 허락하셨다.
그 허락에 바로 출가를 했고 행자생활을 지속했다.
하지만 죄책감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매일 가족을 버린 못난 놈이라는 생각에 힘들어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다니시는 절로부터 작은 택배가왔다. 그 안에는 회색 조끼와 어머니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낯익은 글씨체와 낯설은 존댓말 사이로 내가 여지껏 보았던 글귀 중 가장 감사한 말씀이 적혀 있었다.
“아들 스님, 우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너무 괴로워하거나 힘들어하시지 않길 바랍니다. 어서 스님
되셔서 얼굴 볼 수 있길 기대할게요. 당신을 기다리는것조차 나에겐 희열입니다.”
이 말씀 한마디가 얼마나 죄송하고 감사하던지 편지를 들고 몇 분 동안 선 채로 하염없이 울었다. 항시 당신의 핸드폰에 내 이름을 희망이라고 저장해 놓을 정도로 나를 생각해 주시던 어머니를 알기에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이 많이 힘든 것을 참고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끝까지 자식을 생각해주시는 모습이 너무 감사하고 죄송했다.
그리고 이 한마디의 말로 내가 힘든 것은 더 이상 힘든 것이 될 수 없었다. 그저 묵묵하게 버티고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0개월이 지났다.
계를 받고 스님이 되었으며 강원 학인이 되기 위해 다시 해인사를 찾았다. 아직 새로 맞춘 적삼에 다림질 선 하나 구겨지지 않은 햇중이다. 어떤 것이 스님의 모습인지 스님으로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하나도 알지 못한다.
앞으로 4년 해인사 학인으로 지내며 많은 것들을 알아가고 싶다는 조그만 원을 세워본다.

일년 전과 같은 반달…
조금은 달라진 내 모습…
그리고 앞으로 많은 것이 바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