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교회에서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고 아들 3명을 낳았고 한국 와서 벌써
17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처음에 한국 생활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한국문화는 모든 게 빨리빨리 하는 조급한 행동 때문에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빨리빨리 하는 행동 때문에 버스 탈 때는 뛰어다니면서 타고 내릴 때는 차가 완전히 멈추지 않고 문을 열어 줬기 때문에 사고가 생길까봐 너무 무서워서 버스를 자주 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음식은 너무 맵고 입맛에 맞지가 않아서 잘 먹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늘 고향음식이 그리웠습니다.
한국에 와서 좋은 점은 전자제품이 고장 날 때 수리 기사가 빨리 와서 고쳐주는 것이 너무 편리하고 좋았습니다. 그리고 시장에는 음식이 싸고 양도 많아서 좋았습니다.
첫째 아이가 생길 때 입덧 때문에 고향음식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시부모님과 소통이 안 되서 잘 먹
지 못했습니다.
일본에서 교회를 통해서 시집온 사람들과 말이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친구도 만나고 교회도 가고 싶었는데 시부모님께서 자주 나간다고 혼내고 이해를 해주지 않아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스트레스도 너무 많이 받고 말도자주 못해서 우울증도 걸렸습니다. 모임에 나가려고하면 시부모님께서 집안일은 안하고 놀러간다고 생각을 하셔서 오해를 많이 받았고 설명을 해줘도 이해를해주지 않으셔서 너무 힘들고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고 답답했습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날 때는 양수가 먼저 터져서 다른 아기들보다 몸무게도 적고 덩치도 적었지만 건강하게태어났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가 돌이 지나도록 잘 일어서지도 못하자 시부모님께서 저에게 상처되는 말을 많이 하셔서 편하게 쉬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고향에 가고 싶어졌고 도망가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둘째가 태어날 때도 그랬고 셋째 태어날 때도 시부모님께서 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받을 말을 많이 했기때문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너무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우울감으로 인해 말을 하기도 싫고, 기쁜 마음도 없어지고… 그래서 그랬는지 셋째아이가 성장과정에서 언어장애가 생겨서 말을 잘못했어요.
아이가 3살이 되도록 대화도 잘 안 됐어요. 아이가 말을 잘 못하니까 주위 사람들이 치료받으라고 말을해서 병원 가려고 하면 치료비가 비싸서 못 갔어요. 그래서 복지관 쪽으로 알아보고 신청하고 2년 후에 치료받게 되었어요.
치료받기 전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치료하는 방법을 책으로도 찾아서 최선을 다했어요. 아이가 치료를 시작할 때는 5살이었어요.
치료실에서만 치료하고도 부족해서 집에서도 치료하는 것을 복습을 하고 감각운동도 많이 했어요.
아이의 머리 속에 언어의 이미지가 생길 때까지 계속 반복했습니다. 아이가 자유롭게 혼자서 말할 때까지 계속 반복했어요.
아이가 힘들고 하기 싫다고 매달리고 울고… 그래서 아이도 나도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러나 내가 포기하면 그 아이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되어 하나님께 도와주시라고 많이 기도했고 여러 사람들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아이가 일반 아이들과 똑같이 성장하고 지금은 말도 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경험으로 느낀 것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안좋으면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도 받고 장애도 생긴다는걸 시부모님을 보고 느꼈습니다.
지금, 셋째아들은 발음이 조금 안 좋지만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문화센터가 있어서 자녀문제 상담도 하고 공부도 하고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고 그때와는 달리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정말로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