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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자비원 광명노인요양원 원장 성병태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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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선우海印善友 - 무구 2015년 05월 399호
사오월 여기저기 피어나는 것들에게 시선이 향한다. 색이 하나둘 입혀지다 사라질 때에서는 그 찬사 또한 대게 끝이 난다. 목련꽃 진자리도 그러하다. 마알갛던 하얀 꽃잎들이 낙화하면 그저 어지러워진 자리에는 시선을 거두고 만다. 아름다움의 시작과 끝은 있는 걸까.

관욕灌浴하듯이
벚꽃을 가장 오랫동안 볼 수 있다는 이곳 마장골은 해인사보다도 지대가 높아서 옛적부터 신선이 산다는 곳이란다. 이 곳에 위치한 해인사자비원 광명노인요양원에 들어서니 밝고 따사로운 햇살과 이제야 피어난 진달래 그리고 목탁염불 소리가 마중처럼 들려온다. 얼마 전 입적하신 비구니 노스님의 사십구재를 지내는 염불소리라고 원장님께서 말씀 하신다. 그렇다. 이 봄날을 설렘만으로 점철되어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은 눈먼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이면은 계절을 떠나서 늙어 가면 자연스레 병이 찾아오고 고통을 겪다가 생의 마감으로 그렇게 오고가는데 말이다. 해인사자비원 광명노인요양원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승려복지회 지정요양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복도 곳곳에서 비구니 노스님들도 뵐 수 있다. 인사를 드리면 한결같이 손녀라도 맞는 듯이 환하게 웃으시며 반겨주신다. 특히 할머님들은 곱게 빗은 머릿카락과 마알갛게 뽀얀 얼굴이 목련꽃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자유로웠던 몸이 뜻대로 움직여 주질 않으니 휠체어에 앉아 이동을 해야 하고, 수저로 밥을 떠 드려야 하고, 목욕하실 때도 도와드려야 하고, 대소변 또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해결하기는 힘드신다. 다시 아기로 되돌아 간 것처럼 보살핌을 받아야만 일상적인 생활들을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라면 생면부지인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는 곳, 그렇게 마주보며 웃어주는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이다. 관욕하듯이 매일매일 요양보호사는 할머님을 씻겨드리고 그 할머니는 마알간 얼굴로 새롭게 태어나신다.

함박꽃 같은 마지막 미소
함께 생활하던 분의 임종이 가까워지면 열일 제쳐두고 가서는 원장님과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직원 분들이 곁에 계신다고 하셨다. 원장님께서 근래 비구니 노스님의 임종의 순간을 조심스레 꺼내 놓으신다. 가파른 숨소리에 의사선생님은 마지막을 예고하셨다. 그 마지막에서야 군더더기 같았을 산소마스크에서 벗어나 깊은 숨을 몰아쉬시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는 “그동안 고마웠어요” 라며 생의 마지막을 함께해 준 직원 분들에게 말씀하셨다. 생전에 누군가에게 그토록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신 적 없던 스님께서 마지막에는 함박꽃을 닮은 미소로 마지막 인사를 하신 것이다. 그 순간 곁에선 원장님과 직원들은 뭐라 말하기 어려운 감정에 벅차올랐다고 하셨다. 간혹 상좌 분들도 연락되지 않는 연고 없는 노스님들께서 입적하시면 정부에서 지원받는 약간의 장례비에다 요양원의 알뜰한 살림살이로 생겨난 여유자금을 보태서 장례를 치르고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들이 끝까지 마무리하고서 사십구재도 지내드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의 마지막까지 새로운 가족들은 끝까지 함께 한다.
원장님은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는 직업정신 너머로 무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요양원에 계신 직원 분들을 곧잘 “정말 천사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 일이 직업정신 만으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거든요. 치매나 거동이 불편하신 중증 환자분들을 봉양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특히나 만주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그 할머님은 가끔씩 집에 가야한다며 그리고 딸래미와 통화를 해야 한다며 투정부리신다. 할머니는 만주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시는 옛 기억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런 날은 요양보호사가 인터폰을 통해 전화를 걸어드리면 반대편에서는 기다렸단 듯이 사무실에서 딸의 대역을 맡은 요양보호사나 사회복지사가 전화를 대신 받는다. 그 순간만큼은 모녀지간이다. 즐겁고 유쾌한 통화가 끝나면 그 할머님의 기분이 풀어져 다시 밝아지시곤 하신단다. 잠자던 앙금이 수면에 떠오를 때 그 할머님은 현재로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그렇게 길어 올리시나
보다.

‘못된 자식보다 지팡이가 낫다’
원장님은 이제 예순의 중반인 연세이신대도 일에는 아주 적극적이시다. 그 연세이시다보니 보살핌을 받는 분들의 모습 위로 스스로가 덧입혀진다고 하셨다. 원장님의 어린 시절 몸소 겪었던 부모님에 대한 봉양에 대한 인식이 지금 세대와는 많이 달라져 안타깝다 하셨다. 그래서 어느 경전에 있다는 글귀를 말씀하신다. ‘못된 자식보다는 지팡이가 낫다’고. 이 말씀이 마음에 콕 박힌다. 그래서 이 지팡이 같은 2008년에 제정된 장기요양보호법은 정말 다행이라고 하셨다. 지금 이러한 세태에서 홀로 의, 식, 주 마저도 스스로 해결하기는 불가능한 상황에 노인의 인권은 법적으로라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장을 몸소 겪고 나니, 원장님도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겠다는 결심을 하셨다고. 그리고 한 달에 한번이라도 부모님을 찾아뵙길 바라는 당부 또한 빼놓지 않으신다.

역시나 봄 햇살이다. 눈부시지만 아직은 따갑지 않은 보드랍고 푸근한. 그래서 오월은 분주한 달일지도 모르겠다. 생의 정점에서 자라나는 것들은 점점 위를 향해 오를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화려한 꽃들이기 쉽다. 한데 꽃 진 자리를 살펴보며 한때에 꼭 한번은 한껏 피어났을 꽃들을 그려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아직도 어딘 가에서는 봄볕을 채 아직 받지 못하는데도 푸른 순이 움트고 꽃은 피어나더라. 그 곁에서 바람이 오고가며 동무가 되어 주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