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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괜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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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 스님을 기리며 - 종현 / 해인지 편집장 2015년 05월 399호
따뜻한 일요일 지인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는데 사무실 문이 열린다.
“성안 스님을 뵙고 싶은데 해인사에 위패를 모셨다고 합니다.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지요?”
작년에 다비까지만 본 나로서는 위패를 모셨다는 질문에 한참 생각에 잠겼는데 함께 있던 지인이 해인사 고불암
에 모셨다고 말한다. 다비를 하고 습골하여 고불암에 위패와 함께 모셨다고 친절히 안내했다.‘그랬었나?’할
정도로 무심히 지내왔는데 위패와 납골이 고불암에 모셔졌다니… 까맣게 있고 있었다. 그렇구나. 벌써 1년.
성안 스님 추모 1주기가 다가온다.
슬픔에 잠길 틈도 없이 다비와 49재를 치른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1주기이다.
도반 스님들은 추모집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성안 스님! 나에겐 어떤 존재로 남아 있을까.
행자생활 조금과 강원 4년, 국장소임 4년 근 10년을 함께했다.

어느 날 보존국장에 성안 스님이 부임한다는 말을 들었다. 1년 선배이고 활발했던 이미지 때문에 은근히 기대를 했었다. 어느 날 택시에서 내린 스님은 나를 의아하게 했다. 울 소재의 승복을 세탁기에 돌렸는지 아래위로 쭈글쭈글한 것이 다림질도 안하고 두루마기도 입지 않았다.
“스님 오랜만이야. 나 좀 잘 봐줘. 아무것도 몰라.”
위아래로 살피는 나에게
“해외에서 막 들어와서… 옷도 없고 ”
평소 다림질을 안 한다고 했다. 그만큼 바삐 다니고 활발했던 스님이었다.

대장경에 대한 애정과 학술적 고뇌가 깊었던 스님
본격적으로 보존국장 소임을 살면서 대장경 세계문화축전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쳤다. 학술행사, 문화행사를 비롯하여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분주했다.수차례의 세미나를 하면서 늘 논쟁의 중심이 되는 문제가 있었다. 과연 대장경을 조성한 판각처가 어디며 기존 학설대로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이운한 것이 맞느냐는 것이다. 성안 스님은 늘 한결같은 말을 했다.
고려시대 강화도에 설치된 대장도감은 행정관청이며(지금의 문화재청이 대전에 있는 것처럼) 남해, 진주, 지리산, 해인사 등지에서 나무와 각수들을 모아 조성했고 그 대장경을 삼재불입처로 알려진 해인사에 바로 모셨다
는 것이다. 실제로 대장경을 해인사로 이운했다는 1398년 이전 기록에도 대장경과 판전에 대한 기록이 해인사에 나오기 때문이다. 강화도는 전란의 한복판에 있었고 언제든 몽고군이 쳐들어올 수 있어서 늘 전시상태였으며 대장경을 조성할 물적, 인적 토대가 부족했다고 말한다. 당시 나로서는 무조건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늘 열정적으로 토론과 조사에 임하는 스님을 보며 출가자 중의 전문가로 성안 스님은 여러 교수나 학자를 능가할 스님으로 보였다.

창건 이래 최대의 축제 2011, 2013 대장경세계문화축전
성안 스님은 일복을 타고난 스님이다 . 2010년 국장소임으로 오면서 창건 이래 최대의 축제라고 할
수 있는 세계문화축전을 두 차례나 지냈다. 45일간 2백만의 인파가 찾아왔고 국내외 언론, 방송에
서 많은 취재가 이루어졌으며 당시 스님은 많은 인터뷰와 취재요청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스님의 모습을 회상하면 5분가량 나가는 방송도 세 시간, 네 시간 촬영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스님은 단 한 번도 인상 쓰지 않고 촬영시간 내내 장경판정과 대장경을 지켰다. 당신은 인터뷰만 하고 나머지는 실무자에게 맡기고 내려올 법도 한데 행여 촬영 중 훼손이 일어날까 우려하며 촬영시간 내내 자리를 지킨 기억이 난다.
촬영 끝나면 늘 웃으면서 이야기 한다.
“스님, 나 괜찮았어?”

축전 기간에 대장경 보존회원 구축이라는 쉽지 않은 과제가 떨어졌다. 후원회원을 팔만명 모집하는 이 사업은 취지와 명분은 훌륭하나 사람들에서 설명하고 접수를 이끌어 내야 하는 말 그대로 대장경 영업사원이 되어야 했다. 전국 사찰 행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범어사, 안국선원, 통도사… 해인사에 단체로 성지순례나 템플스테이 오는 팀들이 있으면 늘 나아가 마이크를 잡고 대장경 보존에 힘을 보태주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보존회원이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일만 명이 넘게 되었지만 이후 성안 스님 입적 후 이 사업은 다시 정체상태이다.
다시 새로운 열정과 신심으로 무장한 소임자가 와서 이 사업이 마무리되기를 기대해본다.
곁에서 4년간 함께 뒹굴며 소임을 살았지만 내가 본 성안 스님은 말 그대로 천진도인이다. 이름도 어찌 그리잘 지었는지 성 안내는 스님으로,‘못합니다, 안됩니다’란 말을 쓰지 않은 열정적인 스님으로, 그리고 인정하긴 실지만 보기 드물게 나보단 잘생긴 스님으로 기억이 남아 있다.
선배면서도 늘 도반처럼 어울린 스님. 큰 일을 마치고는 늘‘나 잘했지!’하며
생글생글 웃던 성안 스님.
1주기가 다가오며 문수보살의 게송이 생각난다.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서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