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공 님 처소에 드니 살림살이가 소박하다. 물건마다 시간의 무게가 있으나 바랑 하나면 언제 어디로든 걸음을 옮겨도 좋을 법하다. 벽에 붙여놓은‘山靜水動산정수동’글씨가 눈에 드는데 그 글씨 또한 부공 스님이 직접 붓으로 쓴 것이다. 부공 스님은 늦은 나이에 불교를 접했다. 불교에 대해 알고 싶어서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 입학했으나, 불교는 학문이 아니라 수행이라는 생각에 학업을 접고 출가를 결심했다. 행자생활을 마치고는 바로 기본선원에 들어갔다. 봉암사 1년 결사를 시작으로 백담사, 용화사, 동화사 등의 선원에 머물며 4년간의 기본선원을 마치고 학림사 오등선원에서 용맹정진했다. 그리고 금선대 토굴에 들어가서 전기와 물도 없이 채마밭을 가꾸며 한 철을 살기도 했다.
“선방에서 정진하다 보면 환희심이 들면서 부처님 법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계속해서 선방에 다니는 것이겠지요.”
학림사에서 용맹정진을 할 때는 반철이 지나 탈진을 했다. 고열에 몸을 앓았으나 병원에 가지 않고 선방에서죽겠다는 생각으로 정진을 했다. 손톱 발톱이 다 빠지고 피부도 다 벗겨졌으나 스님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고행을 거쳐서 한 단계 뛰어넘는 것이지요. 한번 뛰지도 못하면 어떻게 여래지如來地에 가겠어요.”
부공 스님은 그런 시간을 보낸 수행의 힘으로 소임을 본단다. 그리고 그 힘으로 포교를 하고 싶은 원력이 있다.
“도심에서 포교를 하고 싶어요. 중생이 도심에 있으니 곁으로 가야지요. 이 산중에서 공부하는 것은 도심에 나가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서죠.”
스님은 언젠가는 도심에 나가 시민선방을 만들고 싶단다. 대한불교 조계종이 간화선을 정통 수행법으로 하니, 부공 스님은 그 수행 풍토가 흐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심에 시민선방을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정통 간화선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다.
“공부가 다 되고 나서 포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내가 방법을 알았으면 그것을 가르쳐주고 도반이 되어 같이 수행해야지요.”
그래서 스님은 법문을 할 때에도 먼저 참선을 시킨단다. 먼저 앉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자세와 호흡법 등 하나하나 일러준다.
“망상이 보이면 그것이 망상이라는 것을 일러주고 그것이 어디서 일어나고 그것을 소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지요. 설명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직접 해봐야 아는 것이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스님은 열심히 정진한단다. 참선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은 자가 어찌 그것을 가르치겠냔 말씀이다. 그리고 부공 스님은 불교의 본질에서 어긋난 신도들의 모습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란다. 부처님 말씀도 모르면서 절에 드나드는 신도들을 바른길로 이끌어야 하는 것도 스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파사현정破邪顯正하는 것도 내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부르짖고 그것을 올바르게 잡아야지요.”
부공 스님은 그렇게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이들과 도반이 되어 도심의 시민선방에서도 산중에서도 같이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우리 불교가 아무리 힘이 없다고 해서 말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부처님 사상은 평화주의예요. 평화주의는 한 마디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모두가평등할 때에 다툴 일이 없고 평화롭지요.
그러한 부처님의 사상을 알려야 합니다.”
산정수동山靜水動, 이것은 제 본분을 알고 제 할 일을 하며 용맹심으로 살라는 말이다. 나태하면 고요히 머무르지도 기운차게 움직이지도 못할 터. 늘 깨어 머무르는 산은 움직이는 물을 알고 흘러가는 물은 고요한 산을 아니, 이러한 배려와 화합이 없다.
“인연에 따라서 열심히 살면 돼요. 봄이 왔는데도 눈이 안 녹게하려고 하면 거기에서 괴로움이 닥치는 것입니다. 늘 깨어 인연에 따라서 흘러가면 되는 것이지요.”
팔만대장경이 봉안된 장경판전으로 가는 부공 스님의 발걸음이 단단하고 경건하다. 매일 수차례 그 걸음으로 부처님 법을 만나고 그것을 마음에 새길 것이니, 그 하루하루가 참으로 환하게 여겨진다. 팔만대장경 보존국장 소임을 맡아 그리도 기뻤다니, 역사 속의 스님과 같은 소임을 보았던 옛 스님들은 또 얼마나 기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