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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존국장 부공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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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취재·정리 | 정 영 2015년 05월 399호
부공 님 처소에 드니 살림살이가 소박하다. 물건마다 시간의 무게가 있으나 바랑 하나면 언제 어디로든 걸음을 옮겨도 좋을 법하다. 벽에 붙여놓은‘山靜水動산정수동’글씨가 눈에 드는데 그 글씨 또한 부공 스님이 직접 붓으로 쓴 것이다.
\"산은 고요하고 물은 움직인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지요. 그와 같이 사람도 제 본분을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우주 삼라만상의 이야기다. 그러니 사람도 그와 같아야 할 것이란 말씀이다. 그러하면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평온하다는 말씀이다.
부공 스님은 출가 후 계속해서 선방에서 참선만 했다. 월정사에서 사회국장 소임을 맡아 조선왕조실록 반환운동을 한 것 외에 다른 소임을 맡아본 적 없이, 이번에 팔만대장경 보존국장 소임을 맡았다.
“부처님 말씀을 보존하는 책임자로 온다는 것이 생각할 바도 없이 정말 기뻤어요. 이곳에 온 이후로 매일 아침 팔만대장경을 살피고 수시로 가서 상태를 보는데 매순간 전율이 와요.”
말사 주지를 비롯해 다른 소임을 맡아달라는 청이 많았으나 다 손사래 치던 부공 스님이다. 그러나 팔만대장경 보존국장 소임을 맡아달라는 청에는 선방에 들였던 방부도 빼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팔만대장경은 힘들게 헤쳐 나온 한국의 역사예요. 고려시대부터 해서 조선시대 억불정책 속에서도 스님들이지켜왔고 일제시대와 6·25를 겪으면서도 보존되어 온 것은 대단한 거예요. 이것은 그저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는 불교 문화재를 넘어서 우리 한국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공 스님은 팔만대장경이 그저 보존되어 있다는 가치를 넘어서서 이것이 미래를 위한 동기부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보존해 온 팔만대장경을 통해서 이 시대의 온 국민이 화합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팔만대장경의 현재 보관 상태에서부터 향후 어떻게 보존하고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전통문화대학이 주가 되어 문화재청과 경남 합천군을 비롯해 해인사가 문화재 자문위원을 두고 진행하고 있는 것인데 스님은 이만큼 중요한 일이 없을 것이란다.
“팔만대장경을 교육의 콘텐츠로 개발하고 활용하는 큰 불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한 순간에 이루어질 사안은 아니다. 팔만대장경이 16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것을 생각하면 길고 넓은계획을 세워서 향후 이삼십년을 보고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닐 것이다. 부공 스님은 자신
이 임기를 마치더라도 그 다음에 이 소임을 맡을 스님이 이어서 해나가길 바라는 것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그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문화재가 아니라 앞으로의 세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가치를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공 스님은 팔만대장경이야말로 한국의 자주성을 만방에 과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힘을 통해서 국민들이 화합하고 자주성을 갖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저 보존에 급급한 문화재로서만의 팔만대장경이 아니라 그것의 가치를 뿜어내어 후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살아 숨쉬는 문화재일 것이다.
이러한 팔만대장경을 곁에서 늘 지키고 살피고 발휘하게 만드는 소임을 맡은 부공 스님은 이것이 인연이라 생각한다. 오대산에서 조선왕조실록 반환운동을 성공리에 마친 것도 이를 위한 과정이었던 듯 하고, 전생에 팔만대장경에 대한 원력이 있었던 듯 하단다. 그러니 이번 소임을 맡은 게 이렇게 기쁘지 않겠냐며 웃으신다.
“선방에 있을 때는 열심히 정진하고 소임을 맡았을 때는 그 소임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지요. 부처님 말씀을 수호하는 일이니 얼마나 보람되고 행복합니까.”
선방에서 오래도록 참선하며 수좌라는 상이 있었으나 그것은 오래 전에 떨쳐냈다. 오로지 팔만대장경만 보고 맡은 이 소임에 부공 스님은 최선을 다할 것이란다. 인연이 다하면 봄에 눈이 녹듯이 바랑 싸들고 선방에 갈것이란다. 한 군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서 자유자재로 공부도 하고 외호도 하는 것이 스님이 할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정靜을 알아야 동動을 알고 동動을 알아야 정靜을 아는 것이지요.”

부공 스님은 늦은 나이에 불교를 접했다. 불교에 대해 알고 싶어서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 입학했으나, 불교는 학문이 아니라 수행이라는 생각에 학업을 접고 출가를 결심했다. 행자생활을 마치고는 바로 기본선원에 들어갔다. 봉암사 1년 결사를 시작으로 백담사, 용화사, 동화사 등의 선원에 머물며 4년간의 기본선원을 마치고 학림사 오등선원에서 용맹정진했다. 그리고 금선대 토굴에 들어가서 전기와 물도 없이 채마밭을 가꾸며 한 철을 살기도 했다.
“선방에서 정진하다 보면 환희심이 들면서 부처님 법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계속해서 선방에 다니는 것이겠지요.”
학림사에서 용맹정진을 할 때는 반철이 지나 탈진을 했다. 고열에 몸을 앓았으나 병원에 가지 않고 선방에서죽겠다는 생각으로 정진을 했다. 손톱 발톱이 다 빠지고 피부도 다 벗겨졌으나 스님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고행을 거쳐서 한 단계 뛰어넘는 것이지요. 한번 뛰지도 못하면 어떻게 여래지如來地에 가겠어요.”
부공 스님은 그런 시간을 보낸 수행의 힘으로 소임을 본단다. 그리고 그 힘으로 포교를 하고 싶은 원력이 있다.
“도심에서 포교를 하고 싶어요. 중생이 도심에 있으니 곁으로 가야지요. 이 산중에서 공부하는 것은 도심에 나가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서죠.”
스님은 언젠가는 도심에 나가 시민선방을 만들고 싶단다. 대한불교 조계종이 간화선을 정통 수행법으로 하니, 부공 스님은 그 수행 풍토가 흐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심에 시민선방을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정통 간화선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다.
“공부가 다 되고 나서 포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내가 방법을 알았으면 그것을 가르쳐주고 도반이 되어 같이 수행해야지요.”
그래서 스님은 법문을 할 때에도 먼저 참선을 시킨단다. 먼저 앉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자세와 호흡법 등 하나하나 일러준다.
“망상이 보이면 그것이 망상이라는 것을 일러주고 그것이 어디서 일어나고 그것을 소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지요. 설명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직접 해봐야 아는 것이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스님은 열심히 정진한단다. 참선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은 자가 어찌 그것을 가르치겠냔 말씀이다. 그리고 부공 스님은 불교의 본질에서 어긋난 신도들의 모습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란다. 부처님 말씀도 모르면서 절에 드나드는 신도들을 바른길로 이끌어야 하는 것도 스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파사현정破邪顯正하는 것도 내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부르짖고 그것을 올바르게 잡아야지요.”
부공 스님은 그렇게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이들과 도반이 되어 도심의 시민선방에서도 산중에서도 같이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우리 불교가 아무리 힘이 없다고 해서 말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부처님 사상은 평화주의예요. 평화주의는 한 마디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모두가평등할 때에 다툴 일이 없고 평화롭지요.
그러한 부처님의 사상을 알려야 합니다.”
산정수동山靜水動, 이것은 제 본분을 알고 제 할 일을 하며 용맹심으로 살라는 말이다. 나태하면 고요히 머무르지도 기운차게 움직이지도 못할 터. 늘 깨어 머무르는 산은 움직이는 물을 알고 흘러가는 물은 고요한 산을 아니, 이러한 배려와 화합이 없다.
“인연에 따라서 열심히 살면 돼요. 봄이 왔는데도 눈이 안 녹게하려고 하면 거기에서 괴로움이 닥치는 것입니다. 늘 깨어 인연에 따라서 흘러가면 되는 것이지요.”
팔만대장경이 봉안된 장경판전으로 가는 부공 스님의 발걸음이 단단하고 경건하다. 매일 수차례 그 걸음으로 부처님 법을 만나고 그것을 마음에 새길 것이니, 그 하루하루가 참으로 환하게 여겨진다. 팔만대장경 보존국장 소임을 맡아 그리도 기뻤다니, 역사 속의 스님과 같은 소임을 보았던 옛 스님들은 또 얼마나 기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