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들이 지천에서 앞다투며 피고 지는 요즘은 특별한 일이 아니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왠지 간지러운 멘트를 주위 사람들에게 하게 되는 요상한 계절이다. 꽤 지난 어느 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18년 전인가? 부처님오신날 우리 절에서 처음으로 불꽃놀이를 쏴 올렸던 것 같다. 그때의 충격이란…그래서일까? 왜 그랬는지 기억은 없지만 벚꽃이 흩뿌려지는 장면과 불꽃놀이 불꽃들이 떨어져 내리는 것과 동화가 되었나 보다. 후로 벚꽃은 내게 부처님오신날을 준비해야 한다는 설렘이고 기다리는 준비신호가 되었다.
우리 절(부천 석왕사)의 매년 부처님오신날은 축제 기간이었다. 몇 달 전부터 길놀이를 위한 풍물연습과등 작업은 물론, 작은 발표회를 위해 늦은 저녁까지 연습을 하고도 다음날 더 쌩쌩히 출근을 하곤 했다.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하며 다양한 행사들도 많이 했는데 다문화가족들을 위한 문화대축전 및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산사음악회, 중·고등 학생부는 꽃 공양 꽃을 사기위해 새벽시장을 돌아다녔고, 이때가 기회다 싶어 철야 정진을 한다며 수련회를 잡고 공식적인 외박도 했었다.
많은 행사 중 거리를 가득 메운 제등행렬은 부처님오신 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날만큼은 4차선 도로를 당당히 막고 목청이 떨어져라 석가모니불을 외쳤다.
풍물패는 선두에서 길놀이를 열어 모든 이들에게 축포를 알리기 시작했고 몇날며칠 꼬박 새워가며 만든 장엄물은 어설퍼도 의미가 컸다.
제행무상 諸行無常
부처님오신날이 벌써 다음 달이다. 부처님오신날 행사 중 백미는 역시 제등행렬이다. 얼마 전엔 제등행렬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뭐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제등행렬의 유래를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한 민족의 역사 속에 이처럼 질기게 면면히 흘렀던 문화가 또 있었을까? 생물학적 근거를 따지고 들지 않더라도 우리 민족의 존재 자체에 그저 함께 엉켜 살았던 불교는 한민족의 핏속에 당연히 녹아 있는 헤모글로빈, 뭐. 철분, 뭐, 이런 따위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고, 자랑할 일도 아니고, 당연한 결과이니 겸허히 유유자적할 일이다.
사실 우리 불자들…너무 착하다. 어디 가서‘나 불자입니다’큰소리로 내지도 못한다. 자신을 드러내거나 적극적으로 권하지도 못하고 왠지 쑥스러워 하는….
그래서 조금은 바보스럽고, 그래서 왠지 별로 인 것 같은…
점점 영악해지는 시대에는 왠지 구식처럼 느껴지는…
그래서 급변하는 시대의 요구가 조금은 버거운 듯.
도대체가 힘 맥아리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유순한 힘 없는 종교… 물론 극악무도한 마구니에 맞서 날선 정법의 칼날을 제대로 전파하는 이들도 분명 있지만… 그런 그들마저도 왠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너무 과해 지나침이 있을 때가 사실 간혹 있다.
그렇게 사회 저변에 있는 듯 없는 듯 퍼져 있던 불자들이 이날만큼은 크게 기지개를 펴고 당당히 나오기 시작해 온 도로를 가득 채우는 그 마음 한 조각. 개인적으로 제등행렬은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부끄럽고 자신 없고 내세울 것 없는 민초들에게, 묵묵히 살아가는 우리의 도반들에게 소란스럽지 않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내 가족과 이웃을 지키며 살아낸 우리 모두에게 주는 훈장 같은 시간.
하지만도 푸짐히 상을 받아먹고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분명 오랜 시간 노련해지고 기술적인 향상으로 장엄물은 더욱 화려해지고 진행의 완성도도 높아지고 이젠 정부의 든든한 후광을 입고 더욱 당당히 제등행렬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 기쁘지가 않다.
외형적으로 화려해지고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는 만큼 오히려 내실적으로 공허한 불교 대중화는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될 중요한 숙제이다. 변화되는 사회 속에 언제나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며 면면히 이어왔던 저력을 다시 한번 내 볼 때이다. 90년대 같은 조직이 아니라면 시대적 요구가 무엇인지 바로 보고 정확하게 읽어 내려는 노력이, 그리하여 사부대중들이 어떤 미래의 사회 속에서도 불제자로의 삶이 영광스러울 수 있도록 종단차원에서 지원과 체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힐링, 웰빙, 복지, 생로병사… 어쩌면 영원불멸한 인간의 집착. 거기서부터 해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해외엔 무수히 많은 카니발이 있다. 우리의 제등행렬은 분명 카니발이다. 문화유산이고 2000년을 이어온 우리의 정신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놀아봐야 한다.
제대로 정말 제대로 놀아봐야 할 것이다.
옛 스승은 삼천배를 하면서도 염주알에 묶여 있었다고 호되게 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밥 먹을 땐 밥에 집중하고, 일 할 땐 일에 집중하고. 공부할 땐 공부에 집중하고, 놀 땐 노는 것에 집중 해야한다.
더 늦기 전에 올해 제등행렬을 제대로 놀기 위해 고민 좀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