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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사월초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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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원덕┃지리산 함양 문수사 2015년 05월 399호
깊은 산골 산사에도 사월 초파일이 다가온다.
이때쯤이면 노보살님들이 모처럼 자녀들의 쉬는 날을 이용해서 부처님을 뵈러온다. 비닐봉지에 담아온 쌀을 부처님 전에 올리고 허리춤에서 구겨진 지폐를 꺼내어 손으로 반듯하게 훑어서 단상에 올려놓고는 절을 한다.
어떤 노보살님은 얼마나 간절하게 절을 올리는지 두손을 크게 벌려 원을 그리며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면 부처님께 단단히 부탁할 일이 있는 것 같다.
“보살님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예 스님, 오늘 마침 객지에 있는 아들이 와서 차를 태워줘서 왔습니다. 법당에 초파일 등 달려고 왔
는데 우리 집 등은 부처님 바로 앞에다 꼭 달아 주셔야 해요!”
손가락으로 부처님 정면 앞 천장을 가리키며 협박아닌 협박을 한다.
조그마한 법당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부처님 앞에 등을 달아주기를 원하니 이만저만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젊었을 때는 아이를 등에다 업고 머리에는 쌀을 이고 수십리 길을 걸어서 문수사를 다녔다면서 젊었을때 절에 다닌 얘기를 무용담처럼 얘기를 한다.
지금은 절에 가고 싶어도 자식들이 차를 태워주지 않으면 못 온다며 젊었을 때의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못내 아쉬워한다.
노보살님들에게는 과연 부처님은 어떠한 존재일까.
그분들에게는 자비와 지혜도 아니고 해탈 열반도 모르고 오로지 집안 식구들 잘되기를 비는 마음뿐이다. 특히 자식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모든 종교의 시발점은 기복피화祈福避禍(재앙과 화을 피하고 복을 비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너무나 기복적으로 치우치다 보면 정법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마련이다. 어떤 불자들은 법회날 법당에서 스님이 축원할 때 자기 식구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왜 축원할때 이름을 빼먹었느냐”며 노골적으로 따지기도 하고 어떤 분은 눈물을 흘리는 불자도 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처음 성도成道하시고 중생들을 제도하시는 것을 망설였다는 것도 실감이 난다.
과연 탐·진·치 삼독에 빠져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중생을 어떻게 교화敎化할 것인가?
세속에서 오욕락에 젖어 있는 탁濁한 중생들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여 단절된 환경에서 고된 수행을 하라고 하면 그것을 어떻게 믿고 인욕하며 따르겠는가?!
부처님께서는 하는 수 없이 사람과 근기에 따라 각기 다른 수많은 방편을 말씀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경전이다.

‘사월초파일’ 하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소승小僧은 2008년도 2월 말에 은사스님인 법전 대종사께서 창건하신 경기도 포천의 법왕사에 주지로 부임하였다.
처음에 가서 2개월이 지났는데 초파일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초파일 하면 당연히 연등작업이 우선이다.
신도 중에 젊은 처사들을 소집하여 법당에서 일 년등을 준비하는데 법당천장에서“팍!”“팍!”하는 소
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스님!! 전구가 자꾸 터지는데요!”
천장에서 작업하는 처사가 연등 속에 들어가는 조그만 고추 전구를 만지는 순간 전구가 자꾸 터진다는것이었다.
나는 연등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전기 기술자를 불러 전구가 터지는 연유를 물어보았다. 이유인즉 전기선이 노화되고 고추전구의 전력소모가 규정량보다 많아서 과부하過負荷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전선과 전선을 잇는 부분에 테이프로 감았는데 그 부분에서 화재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전선과 전선을 연결하지 않는 통짜 전선을 써야 되며 화재 위험이 없고 전기소모가 적은 LED등을 사용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결론은 기존에 쓰던 모든 연등과 전선을 철거하고 새로 다시 설치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돈이었다.법당에 연등을 새로 설치하려면 팔백만원에서 천만원까지 소요된다는 견적이 나왔다.
사중에는 적립된 돈이 없고 주지로 부임해 온 지 두달밖에 되지 않으니 이곳의 신도들에게 부탁할 만한 처지도 못되었다.
난감하였다. 궁리 끝에 평소에 알고 지내던 대구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김 거사居士에게 법왕사의 사정얘기를 했다.
“예 스님! 법왕사 연등 불사는 제가 단독으로 시주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하며 흔쾌히 수락하였다. 그렇게 하여 부랴부랴 연등작업을 마치고 초파일을 무사히 치른 기억이 있다.

오늘의 주제는 소승을 도와준 김 거사에 대해서 말을 하고자 한다. 김 거사는 젊은 나이에 자수성가하여 사업을 크게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성공하기 까지는 참으로 눈물겨운 고생을 많이 하였다.
이십대 때 지금의 부인을 만나 서로 사귀던 중 청운의 꿈을 안고 두 사람은 무작정 상경하였단다.
맨 처음에는 서울의 김포공항 앞의 길거리에다가 가판대를 만들어놓고 햄버거를 만들어 팔았다. 처음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터라 얼마나 창피하던지 여름이나 겨울이나 항상 차양이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햄버거를 만들어 팔았다.
점심 때면 점심을 먹어야 되는데 돈이 아까워서 그 흔한 짜장면을 사먹지 못했다.
그렇다고 자기들이 만들어 팔고 있는 햄버거를 먹자니 가격이 비싼 것이라 먹을 수 없고 하는 수 없이 옆에서 다른 사람이 장사하는 풀빵을 사먹으며 끼니를 연명했다.
추운 겨울날 밤늦게까지 길거리에서 햄버거를 만들어 판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었다. 그래도 그날 만들어 놓은 햄버거는 밤늦게라도 꼭 팔고 들어갔다.
추운 겨울날 밤 햄버거 몇 개가 남았는데 아무리 손님을 기다려도 팔리지 않을 때가 있다.
부인이 남편을 생각해서 오늘은 춥고 밤이 늦었으니 그만하고 들어가자고 말하면 남편은 햄버거를 모두팔기 전에는 집에 못 들어간다고 요지부동이다.
도저히 고집을 꺾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인이 꾀를 냈다. 잠깐 살짝 자리를 나와 남편 몰래 지나가는 행인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햄
버거 살 돈을 건네주고는 햄버거를 사가 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그때서야 남편은 장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란다. 밤늦게 장사를 마치고 집에 가야 되는데 부부의 귀가歸家길 행선지는 달랐다. 두 사람은 월세 방을 얻어 살았는데 돈이 없어서 집세를 못 내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면 집 주인이 얼마나 집세 독촉을 하는지 견디기가 힘이 들었다. 당분간 집세가 마련될 때까지는 집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마침 두 사람 모두 서울에 친한 친구가 있어서 잠을 잘 때는 각자 친구 집에서 자고 아침이 되면 김포공항 앞에서 다시 만나서 장사를 하곤 했단다.
젊은 부부가 성공해 보겠다고 객지에 와서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피나는 노력을 계속 했지만 이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청운의 꿈을 접고 두 사람은 대구로 낙향落鄕했다.
쓰라린 인생 공부를 한 것이다.
남편은 중장비 부속품을 취급하는 조그마한 점포에 겨우 취직하여 직장에 다녔다. 그 사이 아들을 낳았다.
세월이 흘러 애가 커서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도 생활은 여전히 밑바닥을 헤맸다. 하는 수 없이 부인이 나섰다.
‘타우너’라는 작은 중고 봉고차를 싼값에 구입해서 뒤 칸에 있는 의자를 뜯어내고 그 공간에 호떡 틀을 싣고 호떡장사를 시작했다.
장사를 하자니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장사를 시작한 곳이 하필이면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호떡장사를 했다는데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는 가히 짐작이 간다.
어려운 중에도 두 사람은 거친 세파世波에 흔들리지 않고 굳은 의지로 살면서 조금씩 돈을 모았다. 그러던중 마침 남편이 다니던 중장비 부속품 가게 주인이 점포를 팔려고 내놓았다.
두 사람은 상의 끝에 빚을 얻어 그 점포를 인수했다.
부인은 호떡장사를 그만두고 가게에서 일하고 남편은 밖에서 중장비에 관련된 업체를 다니면서 영업을 시작했다. 점포에서 가만히 앉아서 오는 손님만 기다리는 장사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때만 해도 중장비 부속품을 영업하는 곳은 별로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탁월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친절과 신용으로 인맥人脈을 형성하면서 부지런히 일하고 또 일을 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기 어려운 사업 철학과 하면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사업을 키워나갔다.
부부 두 사람이 하던 점포가 점점 날이 갈수록 사업이 번창하였다. 이제는 직원들이 상무 부장 과장 등의 직책을 두고 업무를 분담해서 할 정도로 탄탄한 기업체로 발돋움했다.
그 결과 지금은 영남지방에서는 중장비 부품을 취급하는 업체 중에서는 단연 톱이 됐다.
김 거사는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성공한 입지적인 인물이 됐다.

연등작업이 모두 끝나고 김 거사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걸었다.
“김 거사 덕분에 법왕사의 연등불사가 원만하게 회향하게 되었습니다.내가 그 보답으로 김 거사의 사월초파일 연등을 부처님 정면에다 달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선심 섞인 말을 했다.
“스님!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님 앞에다는 다른 불자님들의 연등을 달아주시고요, 저희 집 등은 법당 맨 구석에 후미진 곳에 달아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경탄驚歎스러운 말이다.
남들은 서로 부처님 앞에다 등을 못 달아서 안달인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그 마음은 별것 아닌 것 같아 도 보통의 마음이 아닌 것이다.
세속에 사는 재가불자가 이러할진대 출가하여 삭발 염의削髮染衣한 사문으로서 나는 나 자신을 한번 다시금 뒤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평생을 좌복에 앉아서 참선을 하면 무엇을 하고, 팔만대장경을 종縱으로 횡橫으로 모두 외우면 뭣할 것인가? 언행일치言行一致가 안 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시간 낭비이고 겉치레일 뿐이다. 나는 지금도 초파일 날 법문 할 때면 김 거사 얘기를 하고는 한다.
“여러 불자님들! 부처님께서 복을 주신다면 다른 사람을 제치고 부처님 바로 앞에 등을 단 사람에게 복을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부처님의 앞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법당구석에 등을 달아 달라고 한 사람에게 복을 주시겠습니까!”
이후부터는 부처님 바로 앞에 등을 달아 달라고 부탁하는 불자들이 별로 없다.

우리가 사월 초파일이 오면 성인이신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서 절에 가서 성의껏 연등 공양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불자의 도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밝히는 마음의 등을 달아야 될 것입니다.
나의 잘못을 뉘우칠 줄 아는 마음의 등, 남의 잘못을 용서할 줄 아는 마음의 등, 더 나아가 이 사회와 온 인류가 화목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의 등을 달아야 될 것입니다.
부처님에 대한 최상의 예불이고 부처님이 이 사바세계에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