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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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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최하수 2015년 05월 399호
조선 성종 때의 문신 김일손金馹孫은‘두류頭流기행록’에서 신흥사 앞 나무다리에 이르렀을 때
운중흥雲中興 료장로了長老 두 스님으로부터“고운 최치원 선생이 죽지 않고 신선이 되어 청학동
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 사실을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신흥사는 사라졌지만, 그 주위의‘세
이암洗耳岩’과‘삼신동三神洞’이라는 각자刻字는 고운 선생의 발자취로 남아 있다.
1558년 봄, 지리산을 찾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은 불일폭포 협곡을 내려다보며“여기가 세
상에서 말하는 청학동靑鶴洞이다. 바위와 봉우리가 하늘에 매달린 것 같아 아래로 내려다볼 수가
없다”고 <유두류록遊頭流錄>에 썼다. 김일손 역시“신선이 살 만한 곳으로 청학동이 분명한 듯
하나 지형이 험난하여 원숭이가 아니고는 찾아들 수가 없다”고 했다.

신라의 석학 고운 선생은 그 깊은 협곡으로 들어가 큰 바위 속 천연 암굴에 기거하며‘공부’를
한 끝에 신선이 되어 영생의 천수를 누린다고 전해진다. 이 천연 암굴의 큰 바위가‘옥천대玉泉
臺’이다. 잠을 잘 수 있는 공간과 서재와 같은 또 다른 공간이 있는데, 신통하게도 그곳에 책 한
권 크기로 햇빛이 비춰들어 고운 선생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남명 선생은 불일협곡을 청학동으
로 단정하고 이렇게 썼다.“어느 사람이 나무를 베어 사다리를 만들어 세우고 겨우 입구에 들어
가서 이끼 낀 돌 하나를 주워서 보니‘삼신동三神洞’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용 추폭포
밑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용소龍沼가 있는데, 신선이 된 고운 선생이 이곳을 통해 지리산과 가야
산을 오고간다는 것이다. 지리산이 너무 좋아 20여 년 곳곳을 헤매고 다닌 필자는 청학동 후보지
의 한 곳이라는 불일폭포 협곡에 매료되었다. 지형이 험난한 만큼이나 자연경관도 신비롭고 아
름답기 때문이다. 특히 불일폭포 입구의 오두막‘봉명산방鳳鳴山房’을 지켜온 변규화卞圭和 옹이
최치원 신선(?)과 관련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 영향이 컸다.

변 옹은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지성인으로 뜻한 바 있어 상불(上佛, 불일폭포 상류 골짜
기)의 토굴에서 10년가량 도를 닦았고, 3년 동안 승려생활을 한데 이어 다시 10여 년째 봉명산방
을 지켜오고 있었다. 그이는 신선이 된 고운 선생이 지리산과 가야산을 오간다는 불일협곡 용소
등의 얘기를 필자에게 아주 실감나게 들려주고는 했다. 지리산 불일폭포는 쌍계사를 거쳐 오른
다. 쌍계사는 석문을 지나 찾게 되는데, 나무뿌리를 하늘로 세운 장승 옆 좌우의 자연암석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쓴‘쌍계雙磎’‘석문石門’이란 큰 글자가 음각돼 있다. 사찰로 들어서면 대웅전
앞의‘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국보 제47호)를 만나는데, 글을 짓고 쓴 주인공이 고운 선생이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로 오르는 길에‘환학대喚鶴臺’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다. 고
운 선생이 청학동靑鶴洞을 찾아다닐 때 여기서 학을 불러서 탔으며, 진감국사대공탑비문도 이곳
에서 지었다고 한다. 환학대에서 1㎞가량 위쪽에 변규화 옹의 불일오두막‘봉명산방’이 있고, 거
기서 300m 더 가면‘청학동’으로 언급되기도 하는 불일협곡이 자리한다. 원숭이가 아니면 찾아
들 수 없다는 불일협곡에 필자가 기어코 발을 들여놓은 것도 변규화 옹의 도움을 받고서였다. 그
이는 거의 수직 낭떠러지를 성큼성큼 걸어서 내려갔지만, 필자는 간이 콩알만 해진 채로 천신만
고 끝에 간신히 내려설 수 있었다. 용추폭 밑의 용소와 옥천대를 들러보았지만, 다른 징담澄潭이
나 천연암굴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유사 이래 지리산에서 은거했거나 수도정진 또는‘공부’를
한 이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신선이 되어 영생한다는 이는 오직 한 사람, 고운 최치원 선생
뿐이다. 왜 그럴까?‘한국 도교道敎의 비조鼻祖’로 불리는 고운 선생은 불교나 도교, 노장老莊사
상, 풍수지리설 등에 해박하여 후세 도인들의 마음속에‘득도한 신선’으로 각인된 때문이리라.

‘2011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제’개막과 함께‘해인사 소리蘇利길’이 탄생했다. 홍류동紅流洞
계곡을 자동차를 타고 스쳐 지나치던 것을 자연친화의 명품길을 따라 걸어서 갈 수 있게 되었다.
물소리, 산새소리, 바람소리 등 생명의 소리와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걷는 숲길이다. 필자는 이
곳에서 고운 선생의 진정한 자취를 만날 수 있게 되어 아주 기뻤다.

고운 선생이 가야산 해인사로 찾아들며 속세와 인연을 끊기로 다짐하며 지었다는 청산맹약
시靑山盟約詩, 이른바‘입산시入山詩’에서 우리는 그이의 진정한 마음을 읽게 된다.

승호막도청산호僧乎莫道靑山好 스님이여 산 좋다 말씀 마오
산호하사갱출산山好何事更出山 좋다면서 왜 다시 산을 나오시오
시간타일오종적試看他日吾踪跡 뒷날 내 자취 시험해 보시구려
일입청산갱불환一入靑山更不還 청산에 한 번 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려니

백옥 같은 암반 위로 청아한 물소리가 음악처럼 흐르는 이 홍류동 계곡길에 들어서면 시간 개
념마저 사라진다. 소리길은 지리산 불일협곡과는 달리 편안하게 걸어갈 수 있어 남녀노소 누구
나 마음을 열고 자연과 역사에 동화될 수 있다. 이 길 가운데 가장 수려한 곳에 고운 선생의 자취
가 서린 농산정籠山亭과 그의 둔세시遁世詩를 새긴 제시석題詩石이 있다.

광분첩석후중만狂奔疊石吼重巒 미친 물 바위 치며 산을 울리어
인어난분지척간人語難分咫尺間 지척에서 하는 말도 분간 못하네
상공시비성도이常恐是非聲到耳 행여나 세상 시비 귀에 들릴세라,
고교류수진롱산故敎流水盡籠山 흐르는 물을 시켜 산을 김쌌네.

고운 최치원 선생이 탈속脫俗의 소회를 적은 시, 칠언절구의 둔세시가 이렇게 전해온다. 이 시
는 그이가 얼마나 소박하게 자연에 귀의하려 했는지를 분명하게 들려준다. 그이의‘청산맹약
시’나‘둔세시’는 지리산에 떠도는‘고운의 신선설’이 얼마나 엉뚱한지를 말해준다. 고운 선생
이야말로 탈속의 순수자연인이다, 해인사 소리길이 그것을 깨우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