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세월호 참사의 달이다. 예전 4.19의 4월에도 젊은이들이 스러져갔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있으며, 아이를 기다리는 피붙이들이 팽목항의 바닷바람에 서 있다. 1년이 지나도록, 왜 사고가 터졌고, 구하지 못했는지 답이 없다. 그때 국가는 어디에 있었나? 지금도 묻는다. 국가는 무엇인가? 만해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무엇이 다르고 같은가? 한국사회의 삶은 가혹한 인내를 요구한다.
국가가 무능하고 무력했다면, 불교와 종교는 무엇이었나? 4.16 그날 이후 우리는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졌다. 가슴을 치고 한탄했다. 그랬는데 그 기억은 먼 시간의 그림자인 것처럼 아득하다. “생명의 가치를 우선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지난해 5월 12일 종교지도자들이 발표한 대국민 호소문의 제목이다. “종교지도자로서 마음의 무게는 어느 누구보다도 무겁고, 고통의 짐을 누구보다도 더 많이 나누어야 한다는 종교적 사명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라면서 자성했다. 정부당국에 대해서는 “남은 실종자들이 한시라도 빨리 가족의 품에 올 수 있도록 구조와 수습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사고에 대한 정확한 원인과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여 다시는 이런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안전관리시스템을 확고하게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촉구했다. “생명의 가치가 최우선으로 존중받으며,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 권한과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철저하게 공공의 이익에 복무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우리가 구현해 나가야 할 사회입니다. 그 사회를 향하는 길에 우리들이 앞장을 서고자 합니다”라고 다짐도 했다.
그러나 지금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특별법에 의해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의 이석태 위원장이 지난 3월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답답함을 토로했다. 기자회견에 나선 이석태 위원장은 특별조사위원회 운영의 핵심은 ‘독립성’이며,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출범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정부가) 특조위의 직제와 예산 마련에 필요한 지원을 해 주지 못하면 독립성 보장이 어렵고, 인적, 물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으면 진상규명은 요원한 일”이라고 걱정했다.[‘세월호 특별조사위, 정부에 조속한 출범 촉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5. 3. 16.]
정상적인 사회라면 사고 발생 1년이 지나도록 이 상태이지는 않을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의 자성, 다짐, 호소가 무색하다. 종교(宗敎)는 무엇인가? 으뜸의 가르침이다. 중생들의 고통과 함께 하지 않고서는 소승적 미망일 뿐이다. 종교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것은 중생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떠안는 것이다. 종교는 철학에 머물지 않으며, 위로에 머물지 않다. 연기이므로 중생과 내가 둘이 아니므로 중생의 구제가 곧 종교인 까닭이다.
지난 1월 발표된 한국갤럽의 ‘한국인의 종교, 1984-2014’는 한국종교에 대한 평가보고서다. 종교인이 줄었다. 연령별로는 20~40대의 종교인구가 줄었다. 이들은 IMF관리체제와 저성장의 시대를 어릴 적부터 경험했다. 불안과 극한경쟁에 내몰렸다. 비정규 노동자가 800만 명이다. 그들의 가족까지 합치면 2400만 명이 해고와 무직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위로받고 싶고, 어디선가 돌파구를 열어주기를 기대했다. 그런 사회‧경제적 상황에 처했으니 종교에 귀의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에서 멀어졌다. 종교에서 위로도 받을 수 없고, 돌파구를 열어주리라는 기대를 갖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답할 질문이 아니다. 종교인들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종교인들이 우리 사회의 특권층이 된지 오래다. 얼마 전 고위공직자의 재산 내역을 보니, 고위 공직자의 절반이 소득상위 5%의 자산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을 위해 봉직해야 할 이들의 계층이 상위에 편향되어 있는 것이다. 한겨레신문은 관보에 공개한 고위공직자들의 정기재산변동 신고 내역을 분석해 이 같이 보도하면서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발언을 인용해 위험성을 지적했다. \"고위 공직자 중에 경제적 상위 계층이 많으면 이 계층의 이해가 과도하게 대표되고,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종교인이 특권층이 되어서는 중생들과 함께 있기는 어렵다. 고급 승용차, 좋은 음식, 쾌적한 잠자리, 신도들로부터 떠받들어지는 속에서 종교는 종교인에게서 멀어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하루치의 삶이 불안하고,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놓은 이들이 종교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당연하다.
가난해져야 한다.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종단은 청규를 만들어 선포하기도 했다. 봉암사 결사 50주년을 맞아서는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자’고 다짐했었다. 가난해지지 않고서는 청규는 허울이다. 부처님대로 살자던 약속도 허망하다. 옷으로 가린들 욕망의 송곳은 삐져나오기 마련이다. 다시 청규를 펼치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자던 다짐을 새겨야 한다. 집단의 운동이 아니다. 누가 나서야 하는 게 아니다. 각자 각인으로부터의 회복이다.
지난 달 25일 있었던 100인 대중공사의 주제는 ‘사찰제정 투명화’였다. 말들이 쏟아졌다. “스님들의 비자금 문제, 소유욕 문제가 심각하다. 재정 공개로 승가에 대한 공경심이 높아지고 신뢰가 회복돼 불교가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변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제 우리도 바뀌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엄청난 돈이 오고가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재정공개만 닦달할 것이 아니라 승려가 돈을 만지지 않게 하고, 재정은 100% 공개하도록 하며 이 같은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소임을 맡지 못하게 해야 한다.” 듣기 불편한 분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가난한 삶과는 멀어도 너무 먼 우리 부끄러운 모습의 일부이다. 이래서는 중생으로부터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브레이크를 밟고 유턴해서 가난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것 말고는 답이 아니다.
만해스님은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고 했다. 만해스님은 갔지만, 우리는 자주 불러들입니다. 만해스님에게서 길을 찾으려 호출하는 것이다. 박재현 교수는 <만해, 그날들>의 마지막을 “거기, 누구요?”라는 만해스님의 물음으로 끝맺는다. 만해스님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만해를 불러내지 말고, 만해스님에게 다가가 “제가 왔습니다”라고 화답해야 한다. 그럼 누가 만해의 방문을 두드릴 텐가? 각자 각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