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강 빅토이아 라고 해요. 한국 땅에 온지 8년이 되었어요.
아이를 낳고 3년 집에 있다가 일 하러 나갔어요.
아이 두 돌 되고 우리는 맞벌이 부부가 되었어요. 딸은 어린이 집에 맡기고 ‘한국 액자’ 로 첫 출근 했어요.
처음이라서 너무 떨리고 무서웠지요.
내가 외국인이라, 의사소통도 안 되고 나를 오해 할까봐. 걱정도 되었어요.
아침 8시 45분에 회사에 출근하면 사람들은 다 와 있었어요.
월요일 이라 아침회의를 시작 했어요. 회의가 끝나고 마지막에 어떤 사람이
저 보고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우리 회사 사장 이었어요. 제가 일하는 곳은 웨딩, 돌잔치 앨범 액자를 만드는 곳이었어요. 저 일하는 부서는 앨범실 이었구요. 같이 일 하는 사람들이 저 한태 너무 잘 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그 만큼 일을 잘하고 싶었어요.
2년 가까이 다니면서 좋은 일 나쁜 일도 있었지만 웃으면서 일 했어요.
같이 일하는 언니들이 몇 달 다니다가 자주 그만 두었어요.
작은 월급 때문 이예요.
저도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돈 보다 앨범실 사람들이 저 한태 너무 잘 해주셔서 고마웠어요. 회사 일은 열심히 했지만 집안일은 엉망이었어요. 그래도 열심히 일 하고 돈을 모아서 고향에 갔어요.
고향에서는 푹 쉬고 다시 한국으로 왔어요. 집에 있으려고 했는데.
마침 그때 친 언니가 한국에 왔어요. 의사소통 전혀 안되고. 언니랑 같이 공장 에 다닐려고 결정 했어요.
사출공장 이라 그 전에 일 했던 곳 하고 완전 달랐어요.
공장도 크고 외국인도 많고, 가족 같은 분위기도 없고 딱딱한 분위기였어요.
일 하는 10시간 중 30분만 쉴 수 있었어요. 그 30분이 바로 식사 시간이었어요. 일이 힘들지만 하루 종일 서서 쉬지 않고 일 하는 게 더 힘들었어요.
사출에서 기계와 사람하고 일을 했기 때문에 대화 할 상대가 없었어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게 되고 음악이 저에게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어요. 그 친구 덕분에 일도 즐거웠고 재미있었어요.
월급 받을 때마다 이 세상에 공짜 없고, 남의 돈 벌기 힘든 거 알게 되었어요.
겨울이 오고 회사일이 많이 줄었어요, 저 와 언니는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게 되었어요.
그러다 생활 정보지를 보고 식품 다시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 회사에서는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이 많았어요.
그 아주머니들을 이모라고 부르게 되었어요.
저랑 같이 일 하게 된 이모는 나이가 많아서 인지, 성격이 너무 욱 했어요.
초보라고 이모 한태 매일 혼나기 일쑤였어요.
속으로 울고 또 울었어요. 그래도 이모 한태 잘하는 모습 보여 주려고,
노력 하고 한 달이 지날 무렵 일 하는 속도가 많이 빨라졌지만.
여전이 혼나는 일이 많았어요, 왜? 알려 주지 않고 혼만 내는지 마음이 너무 답답했고 힘들었어요,
그때 우리 딸이 5살이 이었는데, 한 참 말 많고 말을 안 듣는 나이지만.
저는 아이를 혼내고 싶지 않았어요. 설명 해주고 또 설명 하고
언제나 잘 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회사에서 지치고 힘들지만 아이를 보고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어요.
우리 가족 건강 하고 행복 하게 살면 저는 뭐든지 견딜 수 있었고
참고 다니다 회사 이전 문제로 그만 두게 되었어요.
그러다 다시 아는 언니 소개로 다른 회사로 이직하였고 딸아이가 입학하기 까지 1년 6개월 일 하다 지금은 다시 가정주부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다양한 일터의 경험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제 삶에 봄비처럼 새싹을 틔우는 신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