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심에 자리한 응화스님의 무위토굴에 들어서니 서각 작품들이 가득하여 웬만한 갤러리 못지않다. 온화하게 모셔진 부처님과 짱짱한 스님의 도력까지 더해지니 이 작은 토굴이 환한 빛을 머금은 듯하다. 사방이 부처님의 말씀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앉아 스님은 오늘도 무얼 하시는가.
“나는 본래 부처이나 완전한 부처가 되기 위해서 육바라밀행을 실천에 옮기며 오늘을 충실히 살아갑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어느 날 서각 분야에 외도를 하게 되었네요.\"
스님이 서각을 외도라 칭한 것은 그것에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가지를 열심히 해서 성공할 수 있으면 다른 것도 성공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 가지가 통하면 열 가지가 통하지요. 그러한 마음으로 크게 생각해서 모든 사물을 보니 작품 세계도 열리는 것이지요. 역시 한 이치로 통하는 거예요\"
스님은 서각 작품 활동을 하며 오묘한 매력에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서각을 통해서 인생을 다시 배우고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글 속에 숨은 뜻을 음미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의 실천과 참선수행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스님에게 있어 서각은 하나의 수행과정인 것이다.
\"인연 있는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게 되고, 글자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기다 보면 불법에 가까워지는 것이지요. 일종의 포교라 할 수 있습니다.\"
스님과 함께 토굴에 걸린 작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해본다. \'오유지족\' \'해탈\' \'무위\' \'회광반조\' \'청정무욕\' \'빈자일등\' \'대자대비\' \'무연대비\' 등. 그 뜻을 하나하나 풀어주시는데 그것이 말씀으로만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눈에도 들어차니 마음에 오롯이 새겨진다.
응화스님이 서각을 해온 것은 오래되었다. 그간 두 번의 전시회를 열었고 대한민국 공예예술 대전의 대상 수상을 비롯해 각종 미술대전에 참가해 50회 이상의 수상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최근 3년간 작업한 74점의 작품을 모아 작품집을 발간했다.
\"흔적을 지우는 방법으로 작품을 한 데 엮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본연의 자세로 되돌아가고 싶습니다.\"
스님은 작품을 돈 받고 팔아본 적이 없다. 어떤 이는 그것의 값어치를 매기고 또 어떤 이는 욕심을 내기도 하지만 스님에게 있어 이 작품들은 그저 부처님의 말씀일 뿐이다.
\"만약에 저것들이 다 돈으로 보인다면 제가 이 안에서 행복하겠습니까.\"
공이 많이 드는 일이다. 우선은 은행나무를 골라 그것을 다듬어 깨끗이 하고 붓글씨 쓴 것을 먹지에 대고 그림을 그린다. 창과 칼을 들고 망치로 두들겨 글자를 파내고 바탕에는 그 문구에 맞는 터치를 섬세하게 새긴다. 그것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불로 살짝 그을려 거친 부분을 없애고 먹물을 칠해 바싹 말린 후 솔질을 해서 털어내고 그것에 색을 입히는 작업을 시작한다. 바탕에 여러 차례에 걸쳐 색을 입히고 마지막으로 글자에 색을 입힌다. 그렇게 정성스레 은행나무에 부처님 말씀을 새기는 동안 스님은 그 글자를 얼마나 마음에 새길 것인가. 그러니 그것은 그저 여느 미술가의 예술품이 아니라 응화스님의 생애일 것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그 진가를 알아보는 것이리라.
응화스님은 문중이 살고 있는 부산의 길상암에 머물며 무위토굴에 다녀가곤 한다. 법랍 55세인 응화스님은 한 번도 절을 지어본 적도 소임을 맡은 적도 없단다.
\"절을 맡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주었어요. 소임을 맡으면 그것에 충실해야 하니 장애가 따르기 마련이지요. 절을 지으면 집착이 생겨서 아무 것도 못해요. 명예나 권력을 얻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공부는 날아가 버리는 것이지요. 저는 그저 늘 공부하면서 지냅니다.\"
무비스님과 함께하는 화엄경 공부를 6년째 해오고 있는 응화스님은 공부하러 가기 전에 늘 꼼꼼히 예습을 하고 간다. 스님이 책을 펼쳐 보이는데 빼곡하게 적은 풀이들이 마치 열정에 찬 스물 살 무렵의 학생 것만 같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지요. 그런데 어찌 부처님 법 공부하는 것을 게을리 하겠어요.\"
응화스님은 말씀하신다.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 한들 깨닫지 않은 한 부처님 가까이도 못 간다고. 그러니 아무리 잘나도 잘난 척 할 수 없다고. 성불하기 전까지는 그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크고 좋은 집에 살아도 일생, 움막집에 살아도 일생이에요. 모든 걸 내려놓고 집착 없이 자유롭게 살아야 해요.\"
일흔이 훌쩍 넘은 응화 스님의 부처님 법을 향한 걸음이 젊은이의 것 마냥 날래고 환희에 가득하다.
\"제 본분을 잊지 않고 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면 됩니다.\"
응화스님은 의학을 공부했다. 1961년도에 동양침구의학 전문학원, 1962년도에 부산 동의침구 전문학원을 졸업한 후 그로부터 30년 후엔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 커넬 대학교에서 한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중국 안휘중의학원을 졸업하고 중국의 국가고시에 합격해 의사 자격을 취득했다. 어떤 연유로 의학에까지 능통하신가 여쭙는다.
\"출가해서 절에 가니 아픈 사람이 많이 찾아와요. 돈 없어서 병원에 못 가고 절에 오는 거예요. 돈 안 들이고 그들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했지요. 그러다 침구의학을 생각했어요.\"
부산에 있는 세속의 집은 알아주는 부자였다. 불교집안이었으니 집안에 드나드는 스님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병든 스님이거나 노잣돈을 얻어가는 스님이었다. 스님들이 오가며 금강경, 천수경, 원각경 등을 갖다 주니 틈틈이 보며 좋아했다. 그러던 중 스님이 여고를 다닐 무렵에 친 오빠가 결핵을 앓게 되었다. 좋다는 병원엔 다 가보고 유명한 한의사도 다 찾아다녔으나 손 쓸 수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뿐이었다. 응화스님은 현대의학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스님은 오빠를 간호하며 병원에도 다니고 한의원에도 다니며 신약에 대해서도 한약에 대해서 공부하고 질문하고 탐독했다.
\"병이 있으면 약도 있는 법이에요. 근본을 알고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원리를 알면 다 치료할 수 있어요.\"
그렇게 오빠를 간호하고 있는데 결핵을 앓는 스님 한분이 집으로 찾아들었다. 그렇게 해서 여고생인 응화스님은 두 결핵 환자를 돌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국어책에서 물아일체 사상이라는 걸 봤어요. 그게 귀에 들어오면서 내가 병이고 병이 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그까짓 병이 뭐가 무섭나요. 그러니 결핵 환자를 간호해도 병이 안 걸리는 거예요.\"
그렇게 환자를 간호하면서도 스님은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그러나 아픈 오빠와 환자들을 두고 서울로 떠날 수가 없었다. 유능하다는 간호사를 데려다 놓아도 제대로 간호하지 못하니 스님은 입학을 포기했다. 그렇게 응화스님은 앳된 학생의 신분으로 두 결핵환자의 병을 낫게 하였다. 그랬더니 또 아픈 스님들이 집으로 찾아들었다. 그러다가 1960년 어느 날 집안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돈 한 푼 없이 고무신 하나 달랑 신고 도망을 나와 충남 공주 계룡산 갑사로 출가했다. 절에 있으면서도 아픈 이들이 찾아드니 의학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선 더 체계적인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미국과 중국에서 의학 공부에 매진했다.
\"환자의 몸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니까 병이 잘 낫는 거예요. 환자를 고쳐서 돈이 얼마가 되겠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될 게 없어요. 워낙에 업이 많아서 이 사람 병도 고쳐주고 저 사람 병도 고쳐주지만 성불도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도와가며 함께 해야 하는 것이지요.\"
응화스님이 의학 공부를 한 것은 그야말로 아픈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서였다. 고통 속에서 우는 이들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였다. 스님은 지금까지도 그 마음으로 아픈 이들을 돌본다. 부처님 법 안에서 그렇게 중생이 내민 손을 잡고 살아간다.
\"제가 서각에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새겼는데 저는 그 글귀가 참 좋아요. 내 꿈은 부처님이 되는 거예요. 꿈은 이루어지겠지요. 그것만을 목표로 삼으니까.\"
응화스님은 금생 뿐 아니라 세세생생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처님을 만나 불법을 여의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그 원력은 변함이 없단다.
\"다른 사람들은 다음 생에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출가한다는데 나는 앞으로도 부잣집에서 태어나고 싶어요. 부잣집에서 태어나도 불법만 만나면 되는 거예요. 저는 금생에 부잣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집착 없이 더 자유로울 수 있어요. 모든 걸 갖추어서 생활했기 때문에 돈에 대한 애착도 물질에 대한 미련도 없어요. 풍요롭고 넉넉하면 정신력도 그만큼 부자가 될 수 있어요. 그만큼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는 힘이 생기지요. 그래서 다음 생에도 난 부자로 태어나 불법을 만날 겁니다. 부처님이 왕궁에서 태어나 모든 것을 버리고 성불하신 것처럼요.\"
세세생생 부처님 법을 만나 살 것이니 이 생에 젊고 늙음이 무슨 문제일 것이며 생과 사는 또 무슨 문제일 것인가. 그러니 응화스님은 오늘도 스무 살에 삭발을 하던 그날처럼 신이 나서 부처님 말씀을 나무 위에 새기고 있는 게 아닐까. 불길에 타올라 재가 될지언정 영원히 소멸하지 않을 부처님의 말씀을 우리의 가슴에 새기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