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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해인사 본·말사 중국성지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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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임연우 / 산청 정취암 2015년 04월 398호
2015년 해인사 본 ‧ 말사 중국 성지 순례는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이 몇 겹으로 겹친 성지순례였다. 원래는 2014년도 하안거 해제직후인 8월 17일에 갈 계획이었으나 지난해 4월 16일 우리국민들을 절망과 분노에 빠지게 만든 세월호 참사로 인해 2015년 3월 9일로 연기되었다. 우여곡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4년12월 23일 법전 방장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셨다. 2015년 2월 9일 49재를 마치고는 설 다음날인 2월 20일에 정원 큰스님께서 또 열반에 드셨다. 연이은 일들이 일어나다 보니 성지순례동참을 할까 말까 몇 번씩이나 망설였다.

사실 해인사 본 ‧ 말사 성지순례에 대한 유쾌하지 않는 기억이 더욱 망설이게 했었다. 2012년 중국 쓰찬성 성도와 구채구 황용 낙산대불을 다녀온 성지순례는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에다가 여행사마저 현지정보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엉터리 성지순례였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출발 전까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되었던 것은 해인사 주지스님께서 직접 동행하신다는 점과 여행사가 이전의 여행사가 아닌 대승투어라는 점. 그리고 대승투어 박규석 사장님이 직접 인솔한다는 점이 믿음을 갖게 했다.

3월 9일 여행의 출발지는 두 곳으로 나뉘었다. 한 팀은 대구국제공항을 이용하고 다른 한 팀은 김해국제공항을 이용했다. 나와 정취암 신도들은 김해공항을 이용하는 팀에 속했다. 진주 호국사 밑 주차장에서 오전 8시 30분까지 집결한 우리는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김해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여행사 직원을 만나 여권과 항공권을 받은 후 짐을 붙이고 수속을 마친 후 오후 12시35분에 출발 비행기에 탔다. 김해에서 출발한 팀이 상해공항에 늦게 도착해서 대구에서 출발한 팀들이 먼저 영파로 출발하여 호텔에 도착했고 우리는 나중에 호텔에 도착했다.
두 번째 날 제일 먼저 아육왕사에 갔다. 아육왕사는 인도의 아쇼카왕이의 헌금하여 지었다고 해서 아육왕사(아쇼카왕사)라고 한다했다. AD 282년에 건립된 중국 5찰의 하나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보관되어 있으며, 한중일 선종불교의 역사상 중요한 사찰로 고려시대 의통 대사가 이 절의 주지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이곳의 10각 탑은 석가모니의 열 가지 가르침을 상징한다. 아쉽게도 부처님 사리친견을 못했다.
아육왕사에서 나와 님보 시내에서 25㎞ 지점에 위치한 천동사로 갔다. 천동사는 1,700년이나 된 중국에서 오래된 고찰로 원형보존이 잘된 몇 안 되는 사찰 중에 하나란다.

천동사는 건축면적이 4.5만 평방미터 이고 전殿이 999개 있다. 천동사의 창건설화는 매우 흥미롭다. 중국 서진西晉(266~316년)시기 의흥義興 스님께서 태백산(현재 천동사가 위치하고 있는 곳) 아무도 없는 무인산에서 수행을 더 높이 쌓으시려고 절을 건립하는 중에 어떤 귀여운 동자가 스님께 공양을 가져다주며 시봉을 했다. 그러는 중에 스님께서는 이 절을 다 짓게 되었다. 어느 날 이 아이가 스님과 작별할 때가 되었다면서 인사를 하며 자기소개를 했는데 \"저는 태백금성太白金星입니다. 제가 여기 온 연유는 옥황상제가 스님께서 정진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한 후 저를 파견하여 스님을 잘 살펴드리라고 했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구름을 타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래서 의흥 스님은 하늘에서 온 동자라는 뜻인 \'천동사\'라 절 이름을 명명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천동사는 한국의 사찰처럼 큰 기와로 연결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기와 들을 연결해서 지붕을 이은 것이 특이했다. 천동사는 특히 한국하고 연관이 많다고 한다. 예전 우리나라의 고려시대 때는 승려단이 이절까지와 수련을 하였다고도 한다.
오후에는 그 유명한 서호西湖에 갔다. 서호는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 면이 도시를 향해 있으며 호수 안에 3개의 섬이 있는 동서 3.2km 남북 2.8km 인 아주 거대한 반 인공호수이다.

서호는 수질을 보호하기 위해 금지된 사항이 있는데,
첫번째는 화장실이 없고,
두 번째는 모든 유람선은 전기 배터리로 움직이며,
세 번째는 수심이 얕아 수초가 자라면 유람선 운항에 장애를 주기 때문에 수초를 먹고사는 초어를 보호하기 위해 낚시를 금지하고 있다.
서호에는 서호십경西湖十景이 있는데
1, 소제춘요 : 안개낀 봄날의 새벽 풍경.
2, 평호추월 : 백제 서쪽 끝에 있는 평호에서 바라보는 가을날의 보름달.
3, 곡원풍양 : 여름밤 호수의 연꽃이 만개 할 때 연꽃 향.
4, 단교잔설 : 백제 끝에 있는 아치형 돌다리에 눈이 내린 후의 모습.
5, 화항관어 : 떨어지는 목련꽃잎과 붉은 잉어가 노는 연못.
6, 유랑문앵 : 버드나무 가지에서 지저기는 꽤꼬리 소리.
7, 쌍봉삽운 : 서호에 바라보는 남고봉과 북고봉의 모습.
8, 삼담인월 : 서호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인 소영주에서 바라보는 추석날 달의 모습.
9, 남병만종 : 서호 남쪽에 있는 정지사의 저녁 종소리.
10, 노봉석조 : 서호 남쪽 영봉산의 탑이 석양에 물들어 서호에 비치는 모습 등이다.
\'서호십경\'은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나눈 것이라 서호를 한 번에 와서 다 볼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단교잔설, 평호추월, 소제춘요, 곡원풍화, 화항관어등 이란다.
‘단교잔설斷橋殘雪’은 중국의 오래된 신화고사인 백사전白蛇傳에서 백소전과 허선이 만난 무대가 된 곳으로 옛날에는 다리 중간에 문이 서 있었다고 한다. 문 위에는 처마가 얹혀 있었는데 눈이 내리면 눈이 처마위로 쌓여 멀리서 바라보면 눈 쌓인 다리가 문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 같이 보여 단교斷橋라는 이름이 붙어 졌다고 한다.
‘평호추월平湖秋月’은 넓이 400평방미터의 정원으로 호수 수면과 높이가 같아 평호平湖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소제춘요蘇提春曜’는 소동파가 항주에 지사로 부임 했을 때 쌓은 둑(제방)으로 사시사철 모두 아름답지만 이름에서도 추측 할 수 있듯 봄날 새벽의 경치가 가장 절경이란다.
‘곡원풍하曲院風荷’는 소제춘요의 북서쪽에 펄처진 풍경으로 여름에 연꽃이 피어 특히 아름답단다.
‘화항관어花港觀魚’는 봄에 모란꽃을 보며 용정차를 마실 수 있는 운치 있는 공원으로 누각 등이 새워져 있으며 수많은 모란이 피어 있는 목단원牧丹園이 유명하다 한다.

서호 입구 쪽에는 남송시대의 시인인 소동파의 동상이 있다. 당송 8대가의 한명인 소동파는 서호를 단지 호수가 아닌 중국 문학의 살아 있는 보물로 만든 대표적인 인물이다. 백낙천과 소동파는 문학가이면서 항주의 지방 관리를 역임하였는데 재임 중에 백낙천은 백제를 소동파는 소제를 쌓는 업적을 이루었다. 서호는 백낙천, 소동파 등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아 시를 읊었던 곳이기도 하다. 또 서호는 유명한 미인 서시西施를 기념하는 의미로 “서자호西子湖”라고도 불리 운다. 춘추 전국시대 말기 월나라 여인인 서시는 어느 날 강변에 서 있었는데 맑고 투명한 강물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추니 수중의 물고기가 수영하는 것을 잊고 천천히 강바닥으로 가라앉았기 때문에 침어沈魚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한다. 오나라 왕 부차에 패한 월나라 왕 구천은 보복을 위해 당대 최고의 미인 서시에게 예능을 가르쳐 호색가인 오왕 부차에게 받쳤는데 부차는 구천의 계략대로 서시의 미모에 빠져 정치를 돌보지 않게 되었고 마침내 월나라에 패망하고 만다. 서시는 중국 역사상 양귀비, 왕소군, 초선과 더불어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힌다.

저녁에는 송성가무공연을 관람했다. 중국에는 지역마다 특성이 있는 예술 공연을 하는 극장이 도처에 있는데, 문화의 다양성과 역사성을 잘 보존 계승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셋째 날은 아침공양 후 영은사에 갔다. 영은사는 중국 선종禪宗 10대 사찰 중의 하나다. 아름다운 서호에서 북쪽으로 3km 떨어져 있는 북고봉의 남쪽 기슭에 있다. 동진시대 인도의 승려 혜리慧理가 창건했으며, 오나라 때는 9루, 18각, 72전에 3천여 명의 승려가 수행정진 하던 큰 절이었다.
입구 앞에 \'지척서천咫尺西天\'이란 글씨가 크게 쓰여 있는데, ‘극락이 지척에 있다’는 뜻이다. 입구 정문에 영은사靈隱寺란 강택민 전 주석의 글씨가 걸려 있다. 바로 앞에 비래봉이란 동굴이 나오는데 동굴 속에 338분의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모든 것이 신비에 가까울 정도로 잘 조각되어 있었으나, 문화대혁명 시기에 많이 파손되었단다.
영은사에는 운림선사雲林禪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그것은 청나라 강희황제가 친히 영은사를 쓰려다가 비 우雨자를 너무 크게 써 령靈자를 못 쓰고 운雲자로 쓰면서 운림선사로 했다는 일설이 있다. 대웅전에는 1956년에 주은래 총리의 지시로 조성한 석가모니불좌상이 있는데, 자그마치 19.6m나 되며, 대웅전의 높이는 33.6m에 이르는 웅장한 건물이다.
석가모니 불상 뒤편으로 많은 불상들이 모셔져 있는 오백나한당에는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불상이 있다. 다름 아닌 신라시대 김교각 스님인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김교각 스님은 신라의 성덕왕의 장남으로 태어나 왕위를 버리고 중국 안휘성 구화산으로 들어가 수도를 했다. 719년 그의 나이 24세였다. 99세까지 살아 그가 죽은 후 3년 동안 시신이 썩지 않아 등신불을 만들어 지장보살로 모셔져 있으며, 매년 음력 7월 30일 탄생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오백나한을 모시는 건물에 500명의 유명한 승려들이 잘 모셔져 있다. 김교각 스님의 상이 가장 가운데, 그리고 가장 크게 모셔져 있는 것을 보면 중국인들이 스님을 얼마나 존경했는가를 알 수 있다. 또 한명의 신라 왕자인 무상 선사가 455번 째 나한상이다. 대승투어 박규석사장님의 설명을 듣고 수연보살과 자운보살과 나는 김교각 스님과 무상 선사 앞에서 참배하고 너무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영은사를 뒤로하고 버스로 약1시간30분 달려 소주에 있는 중원에 도착했다. 호수가에 위치한 중원사는 웅장하고 아름다운건축의 미가 돋보였다.
마음의 고요를 찾는데 좋은 곳은 기원 6세기에 신축된 절 중원사重元寺이다. 소주의 한산사寒山寺와 같은 시기에 지어진 중원사는 1970년대에 파손되어 2007년에 재건했다. 물위에 세워진 수상 관음각觀音閣은 호수기슭의 메인 건물과 대칭되면서 수상불국의 특징을 보여준다.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수상관음각인 높이 46m의 관음각에 들어서면 거대한 관음상이 맞이해준다. 중원사에 봉안된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자태를 지니고 계셨다. 환한 미소 속에 그윽이 빠져들고 말았다.
관음상 곁의 계단을 올라가면 가까운 거리에서 관음상을 볼 수 있다. 높이 33m, 무게 88톤의 이 관음상은 구리로 주조되어 있는데 부위별로 주조해서 이곳에 이른 다음 용접을 통해 하나로 만들고 광을 냈으며 그와 동시에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수상관음각과 최대의 관음상외에도 중원사는 중국 최대의 대웅보전大雄寶殿과 가장 무거운 10톤 무게의 구리종, 지름 2.2m의 북 등 많은것이 최고를 자랑한다. 불당을 나와 정원에 서면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바람소리와 함께 가끔 처마에 걸려 있는 풍경소리가 그윽하게 들려온다.

한산사는 한산 스님과 습득 스님의 일화로 한국의 불자들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는 한산사는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다. 전각 뒷편 어디에선가 한산 스님과 습득 스님의 천진난만한 깔깔거리며 웃는 웃음소리 잡힐 듯 들릴 것 같다.
한산사를 뒤로하고 무석으로 이동하여 호텔에 들으니 오늘 하루의 피로감이 몸속 깊이 스며들어 깊은 잠속으로 나를 한없이 끌고 들어갔다.
넷째 날 아침 동양최대의 불상을 참배하러 간다는 작은 설렘으로 감정이 고조되었다. 샤오링산(소령산小灵山) 남쪽 기슭에 위치한 영산대불灵山大佛은 천여 년의 역사가 있는 상부사를 중심으로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보다 42m나 더 높다. 높이가 101.5m에 달하는 영산대불은 사천의 낙산대불보다 17m가 더 높아 중국 국내 최고의 불상이 되었다. 불상의 몸과 연화좌는 모두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영산대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동의 총량이 모두 7백여 톤에 달한다고 한다. 이 불상은 1997년 11월 15일부터 정식으로 세상에 소개되었고, 불상 아래 고사찰인 상부사를 중건하기도 했다. 영산대불은 자애로운 미소로 중생을 굽어 살피며 오른손의 자세는 고통을 사라지게 해주는 자세이고, 왼손의 자세는 즐거움을 베풀어주는 자세라고 한다. 불상의 전체 형태는 원만하며 침착하고 섬세한 것으로써 부처의 자비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날에 우리는 아기부처님 관불하는 모습도 보았다.
‘구룡관욕’은불교 전적의 기록에 의하면 불조 석가모니 부처님은 탄생하자마자 말도 하고 걸었다고 한다. 싯달타 태자는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각각 7걸음을 걸었고, 발을 내딛을 때마다 땅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왔다고 하는데,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손으로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였다. 이때 갑자기 화원에서 두 개의 네모난 연못이 나타나며 하늘에는 아홉 마리 용들이 날아와 싯달타 태자를 목욕시켰다고 한다. 무석의 영산대불에는 이 설화에 맞춰 \"구룡관욕\", \"화개견불\" 이벤트를 매일 오전 10시, 11시 30분, 오후 2시30분, 4시30분마다 음악에 맞춰 관욕 쇼를 한다. 한참 분수 쇼가 진행되다가 꼭 대기의 연꽃이 벌어지며 어린 석가모니불상이 나오고, 탄생불은 아래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한 바퀴를 돌고, 엄청난 물로 목욕을 한 뒤 연꽃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에 설치된 7.2m의 탄생상(어린 석가모니불상)은 6개의 동판으로 만들어진 연꽃잎을 제외하고는 모두 청동으로 주조된 것인데, 모두 180여 톤의 동이 사용되었다고 하며 도금에 사용된 황금만도 18kg에 달한다.
이번 성지순례 중에 가장 장엄한 모습으로 감탄과 환희심이 가슴 가득 충만하게 했다. 성지순례 하는 내내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고 머릿속에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 모두 불보살님의 가피를 입어 업장이 소멸되어 바라는 일들이 원만히 성취되리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린다.

다섯째 날 아침공양 후 상해공항으로 이동하여 올 때처럼 대구공항으로 가는 팀과 김해공항으로 가는 팀으로 나누워 대구팀은 8시45분에 김해팀은 9시05분에 각각 상해 공항을 출발했다. 우리는 김해공항에 11시35분에 도착하여 다시 버스로 옮겨 탄 후 진주로 왔다.
또 다른 날의 해인사 본 · 말사 성지순례를 통한 정화와 가피로 인도해주실 것을 기원 드리며, 이번 성지순례동안 좋은 법문을 해주시고 한편으론 격의 없이 이끌어주신 해인사 주지 선해 스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