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무원이 운영하는 통합정보사이트(indra.or.kr)의‘불교용어안내’에 들어가서 총림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vindhyavana, 빈다바나貧陀婆那라음역. 단림檀林이라고도 번역. 여러 승려들이 화합하여 함께 배우며 안거하는 곳. 많은 승려와 속인들이 모인 것을 나무가 우거진 수풀에 비유한 것. 지금의 선원禪苑·선림禪林·승당僧堂·전문도량專門道場 등 많은 승려들이 모여 수행하는 곳을 총칭.”제방의 사암이 모두 수행처이지만, 총림은 선교율을 갖춘 종합적인 수행·교육 도량이다. 총림에는 방장, 수좌, 유나, 선원장, 율주, 강주 및 염불원장을 둔다. 대중도많다. 함께 모여 사니 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이다. 총림의 최고어른은 방장인데, 방장은 총림을 대표하며 총림대중을 통리하고, 각종 법문과 납자 제접(감변, 화두간택,점검 등)을 통하여 대중을 지도하고 총림의 수행풍토를 진작시켜야 한다. 그런 만큼 방장은 선교율을 겸비한 승랍 40년 이상으로 20안거 이상을 성만한 본분종사로 한다. 총림법에서 이렇게 명문화하고 있다.
총림이라는 말이 아름다운데 한자로 쓰면‘叢林’이다. 모여 숲을 이룬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숲은 갖가지 나무와 풀들, 높은 둔덕과 낮은 계곡, 들짐승과 날짐승의 삶터다. 다툼이 있으되 숲을 해치지 않는다. 계절의 변화와 바람과 눈비가 모양을 바꾸어도 숲은 여전히 아름답다. 명칭이 현재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상형으로서의 지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숲이 언제나 고요한 것만은 아니다.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다. 태풍 뒤의 숲은 할퀸 자국을 그대로 드러낸다. 큰 비에 토사를 게워내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의 묘약은 다시 숲을 만든다.
해인총림이 스산하다. 법전 스님의 입적으로 공석 중인 방장스님을 모시려는 중인데, 다음 달 7일 방장후보를 추천하는 산중총회를 앞두고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다. 우려의 눈길이 해인사에 쏠리고 있다. <불교포커스>는“차기 방장 선출을 20일여 앞둔 해인총림이 상대 후보측에 대한 비방과 폭로전으로 산중 갈등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 양상은 방장 선출 후까지 파장이 이어질 수밖에 없어 반목이 심화되고 총림화합이 어려워지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해인사는 각각 서당대원 스님(원로의원)과 유나 원각 스님(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을 차기 방장으로 추대하려는 측으로 나뉘어 지지세를 모으고있는 중이다”라고 전했다.
양측은 기자회견으로 방장으로 추천하려는 분과 추천인 측에 참여하는 스님들의 문제점을 들춰내며 서로 할퀴어든다. 1967년 한국불교 최초로 설치된 해인총림이 반세기를 지내오는 동안 합의의 과정을 거쳐 한분을 추대했다. 방장을 모시는 중에 일찍이 이런 일은 없었다. 불교사회정책연구소 운영위원인 법응 스님은 언론기고문을 통해“해인삼매의 고요함이 아닌 번뇌의 파랑으로 출렁거린다”고 우려했다.“해인사의 존재 이유는, 안으로는 고요하고 고요한 해인삼매로 불일증휘 법륜상전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며, 밖으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연구해서 병든 세상을 치유할 처방과 예방책을 내고 실천하여 구세대
비의 본분을 잘 구현하는 데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근자 해인사가 방장을 새로 모시면서 고요함이 아닌 번뇌의 파랑으로 출렁거린다. 방장은 총림의 최고 권위이다. 사부대중의 큰 스승을 모시는 과정이 이렇게 번잡스러워서야 해인사의 위상이 어떻게 될까?”
태풍이 할퀴고 간 숲은 시간과 숲이 지닌 복원력으로 되살아난다. 자연은 그렇다. 사람 사이의 일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기 마련이다. 사람은 자연과 달리 정서와 감정이 있기에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자동기계처럼 복원되지 않는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는 옛말이 있어 위로를 삼긴 하겠지만, 늘 그렇지만은 않다.
발전의 동력원은 화합인데, 오래도록 반목과 거리두기를 하면 현재와 미래의 중생고는 그만큼 쌓여간다. 중생구제의 원력의 빛이 바래간다. 수좌계의 합의 노력도 현재로선 기대난망이다. 후보로 나선 두 스님에게 합의를 종용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예정했던 중재 회동도 취소했다는 소식이다. 동안거 해제일을 앞두고 재차 합의 요구를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긴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판세가 더욱 굳어진다면 누군들 요령부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해인총림의 위상이 너무 크기에 합의 추대 기대를 접기엔 허망하다. 마지막까지 합의 노력을 해주십사 청을 드린다.
차제에 방장의 주지 추천권을 없애야 한다는 제도 개선의 주장도 나온다. 물론 지금과 같은 일이 없다면야 법을 고칠 이유도 없겠지만, 귀를 기울여볼 만한 내용이다. 권위체로서의 방장이 주지를 추천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타당한 일이지만, 주지 다툼이 심하다면 대중의 선택에 맡겨 어른의 권위를 지켜드리자는 취지일 것이다. 기실 방장 추천을 두고 갈등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어느 스님이 방장을 하느냐에 따라 주지도 거의 결정된다. 주지 다툼이 최고어른을 모시는 일까지 그르친다는 일단의 진실이 담겨있음을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담마 스리난다 스님은 <불교 이야기>라는 책에서“혹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후계자로 지명되었다면, 그는 도그마와 지시·명령 그리고 맹신만 있는 조직화된 종교와 절·교회들만 만들어냈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제대로 계발되지 않은 사람들의 손에 주어졌을 때, 권위가 얼마나 남용되었는지 세계 역사를 잘 살펴서 연구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부처님은 후계자를지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후계자는 살아 있는 지금 우리들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종교적 권위는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가. 과열된 마음을 잠깐 이나마 살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다시 담마스리난다 스님의 견해를 옮겨본다.
“종교적 권위는 청정한 마음,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와 지혜를 갖추고 성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 또는 사람들이 행사해야 합니다. 그 권위는 세속적 욕망에 노예가 되었거나 세속의 물질적 이익 또는 권력을 갈망하면서 세속에만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행사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종교이고 그 성스러움과 진리는 남용되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