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이 켜켜이 쌓이면, 물길처럼 나무 사이사이를 돌고 돌아 오가는 사람의 마음이 내려앉은 길이 된다. 고집과 땀 그리고 눈물도 녹아 있을 그 여정의 시작은 마음에서부터였으리라. 차편도 없던 시절 해인사에서 김천 수도암으로 향하는 길은 오로지 마음을 벗 삼아 걸었을 것이다. 그렇게 산을 넘고 고개를 넘어서 오셨다는 스님들을 본 적이 있었다. 김천의 수도암 아랫마을 수도리에서 나고 자란 소년은 해인사로 수학여행을 간다했다. 설렌 마음으로 기다렸던 그날은 비가 내렸고 늦게 도착한 탓에 텅 빈 교실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네 명의 친구와 걸어서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기억 속의 스님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해인사와의 첫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8시간
들었던 길을 생각해내고, 걷다가 헤매면 마을에 내려가 묻고 물어서 8시간 만에 도착한 해인사. 소년의 결심 하나만으로는 결코 쉽지 않을 여정이었을 것이다. 목표를 향해 바른 길을 찾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야만 나갈 수 있다는 것. 한 배, 한 배 또 한 배….그렇게 나아가야만 삼천배라는 항아리를 채울 수 있다. 견고한 발심에서 시작하여 땀으로 일구어 낼 수 있는 시간이다. 해인사수련동문회는 매해 1월이면 삼천배 수행을 결행決行한다. 올해도 잘 치러져 정안 거사님은 큰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 든다 하셨다. 항상 변함없이 삼천배를 하시는 정안 거사님에게 법우님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힘들지 않으시냐고. 그럼 정안 거사님은“힘들죠. 저도 늙어가고 있는 걸요”라고 말하신다지만 책임감이 제일 큰 원동력이 된다고 하신다. 어마무시한 전설 같은 삼천배를 하면 초창기에는 환희심에 벅차서 눈물도 흘리는 법우님들도 계셨는데 십삼여년을 하다 보니 이젠 무덤덤하게 잘 하신단다. 유년기의 그 8시간과도 닮아 있는 현재다.
정안 거사님에게 해인사는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청년기에는 평생의 도반이자 반려자를 가야산에서 만났고, 장년기에는 불교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의 발심을 해인사여름수련회에서 찾았다. 이를 계기로 해인사수련동문회에 가입하고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집전부터 행사 진행을 하며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처음 불교에 대해 길을 이끌어 주셨던 분이 97년 당시 대구불교방송국 총괄국장 소임을 보셨던 장적 스님이시고 그 인연을 이어가도록 많은 가르침과 조언을 해주신 분은 대구 읍내동 불광사 관암 스님이시다. 집 근처에 있던 불광사에 우연히 갔다가 법당 출입문에 적
혀 있던‘이 문을 드나드는 자 필히 108배를 할 것’이라는 문구를 보고 불광사 신도가 되었다. 그 후 스님께서 월간해인 편집장 소임을 보실 때 가족이 모두 불명을 받고 은사스님으로 모시게 되었다한다.
\"신심 나게 하면 돼”
해인사수련동문회의 회장으로서 고민이 점점 늘어간다. 회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구상해보지만 1박 2일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법회를 이끌어가야 하다 보니 기대만큼 부합되지 못하는 것 같다. 또한 법회에서 뵙기 어려운 법우님들이 늘어가고, 신입 법우님의 참여 또한 점점 줄어간다는 점들이 안타깝다고 토로한다. 해인사수련동문회 취지는 재가신자의 자발적인 수행모임단체이며 해인사 불사 때에는 자원봉사 활동 도 한다. 그런데 지난해부터는 불사가 평일에 있어서 자원봉사의 참여도가 낮아져 내심 걱정이 된다. 법회에는 참여인원이 평균 오십여 명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는 한 달에 한 번 해인사에 오게 되면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는데 많은 회원님들과 공유하지 못해 또한 아쉽다 하셨다.
하지만 해인사수련동문회 활동을 하면서 보람된 일들도 있었다. 해인사에 해인사수련동문회가 뜻 깊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모색하다가, 2003년 당시 보장회장님과 회원들이 힘을 모아 보경당 후불탱화를 조성했다. 그리고 그동안 중국 구화산, 인도, 티베트까지 성지순례를 다녀오면서 회원들과의 단합도 다지게 되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당시 해인사수련 동문회 10주년 기념 음악회가 있었다. 불자 가수들을 모시고 단단히 준비한 행사였다. 그런데 행사 중간에 당시 포교국장 스님이 백짓장같이 창백한 얼굴로 뛰어 들어와 중지시키셨다. 동안거 중이던 선원에서 항의가 들어왔다고 했다. 고대했던 행사는 무산되었고 지난해 12월에서야 하는 수 없이 앰프 없는 조촐한 작은 음악회를 가졌었다. 법우님들이 서울에서, 더 멀리 제주도에서도 오신다. 일정이 끝난 후 그런 분들이 웃으시며 “다음 법회에서 또 만납시다”라고 말씀하실 때는 참 기분이 좋으시단다. 또 오고 싶은 해인사수련동문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달 한 달을 더할수록 정안 거사님도 은사 스님께서 신심나는 법화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을 되새기며 고민하실 것이다.
그리고 빼놓지 않고 감사함을 전한다. 해인사수련동문회의 초대 회장님부터 네 분의 전임 회장님에 대해 “앞서 회장님들께서 해인사수련동문회의 기반을 잘 다져주신 그 자리를 제가 이어받았기 때문에 다음 후임분에게도 잘 전해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인사동문수련회를 항상 살펴주시는 포교국장 여해 스님과 매 법회마다 대비로전에서 두 시간 광명기도를 할 수 있게 허락해주신 주지 스님 덕분에 해인사수련동문회가 잘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해인사수련동문회는 삼천배 수행으로 1월을 보내고, 2월은 회원 분들의 개인사로 느슨해지다가, 비로소 3월이 되면 해인사수련동문회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다고 하셨다.“정진을 할 때는 우물에 눈을 퍼담듯이 하라”는 은사 스님의 말씀을 마음의 나침반으로 삼아 정안 거사님은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얼었던 흙, 메마르고 단단해졌던 나뭇가지에서 그 틈새를 비집고 보드라운 것이 일어난다. 그렇게 피워내며 한 해 한 해 나이테를 더해 속을 채워가는 나무는 변함없다. 잎사귀를 피워 올리고 꽃 진 자리에 열매 맺을, 그 춘삼월이 어김없이 돌아와 가야산에 둥지를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