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님 처소 앞에서 앳된 처자가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돌아선다. 스님과의 담소가 즐거웠다는 듯 미소도 걸음도 마냥 쾌활하다. 그렇게 멀어지는 걸음을 보다 스님은 또다시 손님을 맞아 차를 우려내신다.
\"우리 밭에서 직접 무를 키워서 자르고 말리고 덖어서 만든 차입니다.\"
구수한 무차 맛이 기운을 온화하게 한다. 이 큰 절이 불현듯 아늑하고 살가워진다. 방금 이 방을 나간 처자가 궁금해 인연을 여쭙는다.
\"우리 신도분의 자제인데 앞길이 캄캄할 때 찾아오곤 해요. 오늘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간다고 인사하러 왔네요.\"
자주 못 본 사이라면 설면할 텐데 그런 표정이 아니었다. 오래도록 가까이서 만나온 사이라서 인사가 그리 친밀했구나 싶다. 설도 스님이 도갑사에 주지로 온지 세 해째 되었다. 젊은 스님이 주지로 오니 그 사이에 젊은 신도들이 부쩍 늘어난 것이 눈에 보이게 달라진 점이다. 인근 대도시인 목표나 광주의 젊은 신도들이 꼬리를 물며 하나둘 씩 찾아들고 있는데, 특히 사십대 중반에서 오십 대 중반의 신도들이 많다. 자식들은 사춘기고 자신들은 갱년기에다가 인생에서 가장 고민이 많을 때이니 삶의 길을 헤매다가 스님을 찾아오곤 하는 것이다. 설도 스님과 같은 세대이다 보니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고, 함께 길을 찾고 함께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란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자식들도 스스럼없이 스님을 찾고 배우자도 함께 온단다. 그러다보니 부부불자, 가족불자가 꽤나 많아졌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는 우선 부모가 교육을 받아야 올바른 길을 일러줄 수 있지요. 그래도 힘들면 아이들을 데려오라고 해요. 그래서 지금 절에 찾아오는 아이들이 열댓 명 돼요. 아이들이 고민도 이야기하고 부모에게 말 하지 못했던 것들도 이야기하면 저는 우선 잘 들어줘요. 요새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가 없잖아요. 그러고나서 조언을 해주지요.\"
절대 강요하는 법은 없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줘야 깊은 얘기를 꺼내놓기 때문이다. 스님은 그렇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고의 방향을 조금 돌려서 이야기해줄 뿐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제 스스로 알아서 스님을 찾아오곤 한단다.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게 부처님 법을 설명하고 가르칩니다. 생활불교가 중요해요.\"
스님이 처음 도갑사에 왔을 때는 신도의 대부분이 노보살이라서 기복불교의 성향이 강했다. 그것을 생활불교로 돌리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단다. 처음엔 젊은 주지가 와서 사주를 봐주지 않는다는 둥 이런저런 말들도 많았지만, 설도 스님은 뜻을 굽히지 않고 부처님의 정법을 가르치고 심어주었다.
\"사법에 현혹되면 함께 공부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자신한테는 똥이 잔뜩 묻어 있으면서 자식에게선 똥냄새 안 나게 해달라고 무조건 빌면 누가 들어주겠냐고, 그 정성으로 기도하시라고 해요. 하루하루 지은 죄를 참회하면 모든 게 좋은 기운으로 바뀌어서 안 좋은 일도 좋아진다고. 그것을 내가 직접 보여줘서 믿음을 갖게 합니다. 그러다보니 요행을 바랄 게 아니라 스스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신도들이 조금씩 알게 되더라고요.\"
부처님 법을 풀어서 실생활에 맞게 설명해주니 이제는 신도들이 더 알려고 다가선단다. 그렇게 해서 도갑사에서 서른 명이 넘는 포교사를 배출했고 지금도 포교사 시험을 보려고 공부하는 이들이 많단다.
\"정법으로 살다보니 오히려 더 많은 신도들이 와요. 그리고 그들이 부처님 말씀대로 생활하게 되면서 조금이나마 삶이 편안해지니 뿌듯하지요.\"
설도 스님은 신도들에게 늘 해주는 말이 있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인간관계인 만큼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말이다.
\"사람들이 자신은 못 보고 남 탓만 하지요. 하지만 발을 하나 빼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든 일은 나로 인해서 생깁니다.\"
반대로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란다. 상대가 나를 때렸을 땐 내가 상대를 화나게 했기 때문이란 말씀이다. 다 나로 인해 파생된 것인데, 제 잘못을 바로 보자니 부끄럽고 아파서 모른 척하고 그 핑계를 다른 데서 가져오니 괴로움이 더 커질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버리면 일은 아주 쉬워지고 마음은 편안해진단다. 그리고 화가 났을 때는 잠시 멈추면 큰 불씨가 아주 확연히 작아지는데, 화를 참지 않으면 작은 불씨도 큰 불길이 되어버리니 잠깐이라도 쉬어가란다.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지요. 그래서 저도 이렇게 머리 깎고 앉아서 공부하는 거잖아요. 같이 공부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화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조절 할 수 있는 힘을 키우자는 것이죠.\"
수없이 죄를 짓고 사는데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겠나. 그러니 설도 스님은 실생활에서 늘 참회하며 살라고 하신다. 밖에서 나쁜 행동은 다 하고 부처님 앞에 와서 기도한다고 무엇이 좋아지겠나 하신다.
\"사주는 타고난 것이지만 팔자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예요.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서 팔자는 따라오는 거예요. 복의 씨앗을 뿌리면 복의 업을 악의 씨앗을 뿌리면 악의 업을 거두는 거예요. 그게 바로 인과인 것이지요.\"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늘 실생활에서 부처님 말씀을 되새기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내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서 그때그때 참회하고 잘한 일은 스스로 칭찬해주면서 살면, 그게 삶의 원동력이 되지 않겠습니까.\"
설도 스님은 어려서부터 절집에서 자랐다. 어슴푸레한 첫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느 비구니스님 절에 살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다가 그곳에 다니러 온 한 스님을 따라 광주 향림사에 가서 천운 큰 스님을 뵈었다. 그 후로 계속해서 절집에 살며 학교도 다녔다. 방학 땐 늘 삭발하고 승복 입고 살았으니 삶 자체가 출가자의 삶이었다. 고등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다른 친구들도 집에서 새벽예불 드리며 절집에서처럼 사는 줄 알 정도였다. 열여덟 살에 정식 출가했으나 그저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는 형식적인 절차로만 느껴졌다. 출가 후 행자생활을 마치고 동국대학교를 졸업 하고 군대에 다녀와서는 해인사 율원에 들어갔다. 그 이후 선방에 갔다. 그때 설도 스님은 선방에서 만난 선배 스님을 만나 재발심을 했다. 다리도 불편한 분이 선방에 앉으면서 경전도 놓지 않았는데, 그 스님을 만나 큰 충격도 받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출가의 삶이 올바른 삶이 아니었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어요. 부처님 밥 먹는 게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내 삶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다 죄였던 거예요. 죄를 지으며 살아왔구나 싶으니 충격이 커서 밥도 못 먹었어요.\"
그렇게 충격을 받고 재발심을 해서 낮엔 정진하고 밤엔 경전을 보며 두 철을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 후 대흥사에서 포교국장 소임을 보고 다시 선방에 다니다가 대흥사 재무국장 소임을 살고 총무원 호법과장 소임을 본 후에 2012년에 도갑사 주지로 왔다.
\"지금 내 시절 인연이 소임을 살아야 하는 것이라면 거부하지 않아요. 이곳에서 나로 인해서 사람들이 한 마음 편히 쉰다면 그것도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겠어요. 같이 아파하고 같이 공부하는 것도 수행 아닌가 싶어요.\"
설도 스님은 어떤 상황이든 그 안에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러나 어디에서든 안주하려는 생각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진할 수 있는 힘을 축적해 언젠가는 불태우겠다는 게 스님의 뜻이다. 그래서 스님은 게으른 마음이 들 때마다 이 게송을 왼다.
별해탈경난득문 別解脫經難得聞 경어무량구지겁 經於無量俱胝劫
독송수지역여시 讀誦受持亦如是 여설행자갱난우 如設行者更難遇
한량없는 세월을 지나도록 별해탈경(비구의 250가지 계율 가운데 낱낱 계로부터 해탈을 얻게 되므로 별해탈경이라 함)은 얻어듣기 어렵다. 독송하고 수지하는 것도 이와 같이 어렵고, 설한 바와 같이 행하는 자는 만나기 더욱 어렵다는 뜻이다.
\"이 게송을 넓게 해석하면, 부처님의 법을 만나기도 어렵고 공부하기도 어렵고 그렇게 행하기도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생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만났으니 얼마나 큰 복이겠어요. 그러니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늘 경책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설도 스님이 도갑사에 와서 바랐던 것은, 모든 것이 꾸준히 걸어가고 꾸준히 흘러가는 것이었다. 법회를 열면 그것이 꾸준히 이어져가고 불자회를 만들면 그것이 꾸준히 이어져가고 템플스테이를 하면 누구라도 쉼 없이 찾아오고 그렇게 신도들이 꾸준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찰. 큰 너울이 요동치길 바라기보다 그렇게 잔잔히 늘 살아 숨 쉬는 사찰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정도 되어가고 있어서 설도 스님은 그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신도들이 주인의식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주인으로 살면서 오히려 더 큰 만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이 절의 주인이 아니에요. 신도들이 주인이지요. 저는 무언가를 조직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끌고 가는 것은 신도들의 몫이에요. 저는 그저 모든 것이 부처님 가르침 안에 있다는 것만 일러 줄 뿐이죠.\"
해가 기우는 오후, 스님과 도량을 거닌다. 스님의 걸음을 이리 저리 따르자니 스님은 또 이리 저리 보폭을 맞춰주신다. 이게 하루하루 함께 살아가는 법일 터. 스님 지나간 자리에 어느새 보드라운 명지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