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실에 들어온지 며칠되지 않은 새내기 편집장이다. 그러하기에 ‘편집실의 한달’이란 주제에 걸맞는 글을 쓸 자신도 내용도 마당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 청탁을 물리치지 못했던 이유는 단 하나, 나 역시 누군가에게 원고를 청탁해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었다. 매달 누군가에게 글을 청탁하는 자의 수고로움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에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이 ‘차마’라는 단어에는 인간의 냄새, 흙냄새, 시골집 구들방의 큼큼한 냄새, 노부모의 갈라진 뒷꿈치 냄새가 난다.
며칠 되지 않은 새내기 편집장의 한달 대신 하루 여정을 기록해 본다.
새벽 예불을 마치면 5시쯤 된다. 아침 공양시간 6시 까지는 금쪽같은 한 시간이 남았다. 출가전 이 시간에는 행여 노모가 추위에 깨실까봐 살금살금 방을 빠져 나와 싸늘한 방을 데우기 위해 장작을 날라 군불을 지폈다. 어린 시절, 추운 겨울날 두평이 채 되지 않은 흙방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형제들 몇이 다닥닥 붙어 웅크리고 잤다.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늙으신 아버지는 행여 자식들이 깰까봐 불도 켜지 않고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정지간에 가 큰 가마솥에 쇠죽을 끓이시고, 어머니가 쓰실 물을 뜨겁게 데우셨다. 그 당시 고향 마을은 너나없이 난방 연료가 나무였기에 장작이 귀했다. 그래서 장작대신 마른 콩대, 깻잎대, 볏단, 마른 억새풀, 솔잎 등으로 차갑게 식은 구들을 데우곤 했다. 장작은 명절, 잔치날 등 특별한 날에만 쓸 수 있는 귀한 연료였다. 타다닥 콩대 튀는 소리가 나면 새벽 추위에 어설피 깨었던 어린 나는 다시 행복한 잠속으로 끼무룩 빠져들곤 했다. 콩대 타는 냄새는 아버지의 냄새였다. 아버지의 몸에서는 평생 마른 검불 냄새와 거름 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새벽 바람을 몰고 콩대 냄새와 함께 방에 들어오시면, 어머니는 작은 가마솥 밥을 짓기 위해 방을 나가셨다. 어머니 옷에서는 늘 구정물 냄새가 났다. 늙은 부모는 당신들의 육신이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꼬물거리며 자식들을 위해 마지막 진액 한 방울까지 쏟아내셨다. 콩대 타는 소리, 구정물 냄새가 팔남매를 키워낸 힘의 근원이었다. 아버지는 아흔살 봄날 아침, 함박꽃이 활짝 필 무렵, 어머니는 능이버섯이 유난히 흐드러지게 올라왔던 늦가을 여든 여덟살에 산속 당신들이 머무셨던 방에서 막내 손을 잡고 이승을 하직하셨다. 대웅전에 들어가 단 한번 삼배의 예도 표해 보지 못했던 막내는 어머니 돌아가신 백일째 되는 날, 절집에 들어와 머리를 깍았다.
새벽 5시 편집실 불을 켜자마자,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른다. 메일을 확인하여 청탁한 원고가 왔나 확인한다. 그런 다음 수첩을 펼치고 하루 일정을 기록한다. 원고 청탁, 원고 수정, 사진 촬영 할 것, 탐방 스님 책 읽을 것...등 그날의 일정을 꼼꼼히 기록하고 확인한다.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들을 따뜻이 데우기 위해 군불을 지핀 시간, 나는 계간 ‘청암’지를 데우기 위해 꼬물꼬물거린다. 살아 있는 생명은 누구든 꼬물거린다. 꼬물거림은 생명의 증거다. 꼬물거릴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을 때,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꼬물거리는 것 그것이 이 생에 목숨받은 자들의 운명이자 사명이다. 어머니는 중풍에다, 한평생 너무 일만하여 관절이 다 녹아내려 뼈가 없어 하반신을 전혀 움직일 수 없어, 침대에 누워 기저귀에 대소변을 보신 채 8년을 사셨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계신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고 무료할 까 싶어 하루는 침대에 걸터 앉아 여쭈었다.
“엄마! 안 힘들어! 이리 누워만 있는거”
“으응, 하나도 안 힘들어, 나는 평생 일해서 지금 쉬고 있는 중이야. 괴안아 니 볼 일 봐”
어머니의 천진한 대답에 코끝이 시큰거려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끔벅끔벅거렸다. 나는 과연 내 인생 전체를 걸고 한낫 수사가 아닌 진실로 온 몸이 뼛가루가 될 정도로 무언가에 몰입해 본 적이 있는가?
아침 공양을 마치고 도량 청소를 하고 방학이 되어 수업이 없기에 7시가 조금 넘으면 다시 편집실에 들어온다. 잡지와 신문를 뒤적이다 도착한 원고를 꼼꼼히 읽는다. 원고와 하나가 될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갓 도착한 뜨끈뜨끈한 원고를 읽는 기분은, 마치 김이 몽글몽글 솟아나는 갓 지은 밥을 먹는 기분과 흡사하다. 어제 도착한 원고는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봄날 오후 따뜻한 햇살같은 원고였다. 읽고 또 읽었다. 무슨 복에 이런 좋은 글을 읽나 싶어 고마웠다. 저녁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 훈기가 사라지지 않아 슬며시 웃으며 잠들었다.
막내와 8년을 함께 한 어머니를 어느 날 휠체어 앉혀 목욕 시키는 데 목을 가누지 못하셨다. 그렇게 어머니 육신의 물기와 기운은 하나하나 스멀스멀 빠져 나갔다. “니 혼자 두고 어찌 가노. 나는 너와 함께 갈려고 버틸 만큼 버텄다. 그런데......” 어머니의 말에 방을 뛰어나와 마당에 서서 누구도 보지 않건만 고개 돌려 닭똥같은 눈물을 훔쳐내고 훔쳐내었다. 지수화풍地水火風이 어머니 몸속에서 차례차례 빠져 나가는 과정을 슬로우 비디오 보듯 지켜 보는 일은 숨이 턱턱 막힐 만큼 고통스러웠다. 어머니 임종 기간 열흘 동안 내 손에는 법륜 스님의 ‘반야심경’ 해설서가 들려 있었다. 어떤 경로로 그 책이 내 손에 들어 왔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와 나는 신부님을 불러 임종성사를 했다. 생애 처음으로 반야심경을 완독한 나는 이승의 마지막 길을 힘겹게 통과하고 있는 어머니 머리맡에 무릎 꿇었다. 무엇에 이끌리듯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엄마! 이제 걱정하지 말고 편히 가. 나, 빛을 보았어요. 이젠 외롭지 않을 것 같아.” 이틀 후 어머니는 숨을 거두셨다.
벼락같이 내리친 반야심경 덕택에 나는 지금 청암사 편집실에 앉아 있다. 처음 일 이년 동안은 가끔 ‘내가 왜 여기 있나?’ 스스로 반문할 정도로 나의 출가는 급작스럽고 생뚱맞았다. 어쨌든, 길을 찾아 여기까지 왔고 나는 ‘지금 여기’ 편집실이라는 길 위에 서 있다. 어머니 아버지 당신들 인생처럼 담박하고 우직하게 계간 <청암>지에 몰두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오후 4시, 여전히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