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서 나를 알아차릴 때부터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의심하고 또 고뇌한다.
부처님께서는 초기경전에 간략하게 “나는 오온五蘊이다”라고 단정지으셨다. 이 하나라도 빠진 상태에서는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으며 화합하여 만들어진 실체이기에 불교에서는 오온五蘊이 공空하다. 즉 인간의 실체는 空하다고 하는 것이다.
첫 번째로 물질적 요소인 색온色蘊이다.
나라고 만들어진 형체와 정신세계는 인연들의 화합으로 인하여 땅의 기운인 지地, 물의 기운인 수水, 불의 기운인 화火, 바람의 기운인 풍風이 결합하여 “나”라는 실체를 만들어낸다. 몸뚱이는 영원하지 않기에 죽으면 이 네 가지 기운이 흩어짐으로 인하여 몸뚱이의 실체는 없어진다.
두 번째 정신적인 요소인 수온受蘊이다.
수受란 받아들이는 느낌의 무더기이다. “바로 이것이다”라는 느낌이 없이 여러 가지의 느낌의 인연들이 만나기에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는 것이다. 흔히들 “나는 느낌이 없다”, “감각이 없다.”란 말을 쓰지만 어느 강한 느낌으로 인하여 다른 느낌이 약하여질 뿐이다. 느낌은 있지만 느낌 자체에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는 것이다.
세 번째는 마음의 작용으로 나타내는 모습의 상온想蘊이다.
경계와 조건에 의한 인연의 모임으로 형상들을 떠올린다. 어떤 모양, 모습 등 본래 실체가 있어서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물체를 두고 “이것은 이것이다”라고 하면 나는 “이것은 이것이구나”라고 인식시키지만 실제로 본래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에 모양과 모습을 단정함은 실체가 없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행위와 작용의 무더기인 행온行蘊이다.
지금의 행위를 지금이라고 할 때에는 이미 과거로 흘러가듯이 금강경에 “과거, 현재, 미래의 마음도 가히 얻을 수 없다”고 했다. 무명無明으로 인하여 행이 일어나기에 행行의 실체 또한 없으며, 무상無常하다고 느껴야 한다. 실체가 없이 空하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일으킨 행위에 대한 과보는 선업과 악업으로 나누어서 또 다른 나라는 형상이 이루어지면 작용을 일으키기에 바르게 살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다섯 번째는 아는 것, 알음알이의 덩어리 식온識薀이다. 앎이란! 여섯 감각기관이 여섯 가지 감각대상을 만난다. 눈은 색을, 귀는 소리를, 코는 향기를, 혀는 맛을, 몸뚱이는 촉감을, 뜻은 법이라는 인연들을 만나는 것이 실제인 양 내가 잘났다는 생각을 지어서 인간을 구별짓기도 한다. 고려시대 야운스님은 식온으로 만들어지는 내라는 집착된 생각인 아상과 내가 잘났다고 하는 인상을 없애면 닦을 것도 없다고 하였다. 평상심이 평등심이기에 식온의 실체가 또한 없다.
이렇듯 오온은, 나라는 것은 인연의 화합으로 오온을 의지해서 존재가 이루어졌기에 고정불변한 독립된 실체가 없다. 반야심경의 오온개공五蘊皆空을 불자들은 염불하고 空의 실체를 알아차려야 한다. 경전에서 색色은 거품덩어리이고 수受는 거품방울이며 상想은 신기루요 행行은 속이 없는 바나나 줄기이며 식識은 허깨비와 같아서 무아無我 즉 내가 없다고 했다.
부처님께서도 모든 고통을 해결하기 위하여 수행하셨다. 인간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에 집착하여 끊임없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실체가 없는 오온이 공한 줄을 알면 욕망은 없어지고 고통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형성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영원하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