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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카리 아트와 불교공동체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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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해인 편집실 2015년 02월 396호
지난 1월 12일자 한겨레신문에 ‘위험한 계급’이란 제목의 김회승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글이 실렸다. 김 위원은 이 글에서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는 용어를 설명하며 글을 시작하고 있다. 즉, 불안정한(precarious)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무산계급)를 합친 조어다.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시장 재편이 기술 발전과 맞물리며 나타난 새로운 계급이라는 것인데, 이 용어에 주목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설명 때문이다.

“올해 초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차학술총회에서 가이 스탠딩 영국 런던대 교수는 ‘(프레카리아트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위험한 계급’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중산층이 몰락한 자리를 ’불안정한 노동에 조직화되지도 않고 정체성도 없는‘ 이들 프레카리아트가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젊은 프레카리아트가 급증하기 시작해 일부 국가에선 전체 인구의 25%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스탠딩 교수는 이들 새로운 계급이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진단한다. 이들은 기존의 정치세력을 거부하고 시민·노동 의식이 빈약하며 조그만 이익에 쉽게 좌우된다. 끊임없는 구직과 직업 훈련으로 방황하지만 시간과 돈이 부족해 진정한 사회관계를 맺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 정치적 태도는 균질하지 않다. 재분배를 요구하며 투쟁하기도 하고, 포퓰리즘이나 파시즘에 끌려다니기도 한다. 유럽에서 극우·극좌 정당이 득세하고 자생적인 테러가 나타나는 이유 또한 여기에서 찾는다.”

프로카리아트라는 용어와 이 위험한 현상에 눈길이 머문 이유는 불교의 현실을 살피는 데에도 힌트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7, 8년 전 들었던 얘기인데, 충청도 작은 도시에 이른바 객승들의 집단 거주처가 있다고 한다. 허름한 연립주택에 30여 명의 스님들이 한 가구에 한 명에서 세 명 정도 산다. 그들은 항상 모자를 쓰는데,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다. 서로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인사를 나누지는 않음은 물론이다. 이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유랑객승? 이들은 왜 사찰에 살지 않고 거기에 사는 걸까? 지금 이런 물음에 답을 내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사는 스님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사는 스님들이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조계종이 작성한 한 자료(교구본사 2013년 결산액 관련 분담금 요율에 따른 분담금 현황)에 따르면, 2013년 조계종의 사찰 수는 2301개다. 스님 수는 1만5천여 명. 두 수치를 바탕으로 한 사찰 당 평균 거주인원을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6.5명이다. 교구본사처럼 큰 사찰의 경우, 특히 강원이 있는 경우는 1백 명 안팎의 스님들이 사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찰은 한 두명이다.

조계종의 스님 중 사찰에 거주하지 않은 스님들도 꽤 있을 것이다. 작년에 들은 얘기다. 산철에 스님들이 사찰에 있지 않고 토굴이라는 개인 처소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소도시의 아파트나 농가주택을 사거나 세를 들어 사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그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결계록에는 거주처를 모모 사찰로 기재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하니 실상을 알기에 어려움이 있다.

종단(교단) 공동체의 붕괴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새삼스럽지 않다. 최근에는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공동체 붕괴론을 꺼냈다. “지금의 종단은 ‘무소유공동체’냐, ‘사유화각자도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결단의 분기점에 서있다. 손을 놓고 있으면 5년 이내에도 종단이 붕괴될 수 있다고 본다.” 사석에서 나온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10월 1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내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94년 종단개혁 20주년 3차 세미나 기조발제에서 던진, 매우 충격적인 선언이다. 현응 스님은 공찰의 소득을 일부 스님과 사찰만이 독점하는 가운데 공동체의 붕괴가 구조화되었고, 시급히 돌이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경고한 것이다. “사회에서는 폭동이나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며, \"종단을 무시하거나 종단과 관계없이 개인적인 대책을 세워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며, 적절한 대책을 실행하지 못하면 \"종단 해체를 요구하거나 탈종하여 개별 사찰과 개별 스님 차원으로 살아가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불교포커스, ‘조계종 5년 이내 붕괴될 수 있다’, 2014. 10. 2.]

공동체는 이념적‧사상적 지향을 같이 하며,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한 시공간이라는 물리적 조건을 함께 지니는 것을 말한다. 공동체는 그 속에 소속한 개인의 보호와 확장에 기여하기 위해 여러 기구를 둔다. 집행부인 총무원과 대의‧입법기구인 중앙종회가 대표적이다. 공동체의 붕괴란 이념적‧사상적 지향점의 소실과 공동의 시공간이 해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체 과정에서 물질적 조건을 확보하지 못한 개인은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과 현재와 미래의 생존의 불안 속에 던져진다. 각자도생하든지, 공동체를 복원하든지의 기로에 선다.

앞에서 인용한 ‘위험한 계급’이란 글에서는 프레카리아트가 유럽에서 극우·극좌 정당이 득세하고 자생적인 테러가 나타나고, 우리나라의 경우 프리랜서 노동의 일상화를 문제로 꼽았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걱정하는 것 중 하나는 대도시에 몰려든 농민공이라고 한다. 1억 명이 넘는다는 추산도 있다. 이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은, 생존이 최우선인 까닭에 자칫하면 도덕과 법 밖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는 데 있다. 며칠 전 중국인 300명이 IS에 가입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경유해 아랍으로 넘어갔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테러집단의 유혹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 개인의 삶도 피폐해지거니와 인류를 테러의 가능성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점에서 섬뜩한 일이다.

유랑객승의 출현은 불교 공동체의 해체를 걱정해야 하는 징표다. 어느 집단이든지 공동체에 머물면서 공동체의 규율에서 이탈하는 부류들이 상존한다. 그러므로 규모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징표가 일탈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운영의 문제라면,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 현응 스님은 위에 언급한 기조발제에서 \"더 이상 사찰로부터 유래되는 공공의 재원이 10%대의 소수승려에게 사유화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와서는 안 된다\"면서 \"우리 종단은 \'종단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나?\'라는 스님들의 질문에 대해 응답하고 부응해야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더 크고 놀라운 일은, 조계종 공동체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총무원장과 종회의장 등이 공동체 붕괴의 경고에 한마디도 없다는 사실이다. 현실인식 장치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