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운 단풍잎이 하나 둘씩 물들어 가는 가을, 그러니까 18년 전 이맘때 쯤 난 한국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김포 공항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새 희망에 부풀어 있던 내 마음처럼 예쁜 꽃들과 화려한 남산의 야경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때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으며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와 시골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문화적 차이와 언어 소통의 문제에 부딪쳐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마치 내가 유치원생보다도 못한 아기 같다는 생각으로 무력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한글도 모르니 참 답답했고 가고 싶은 곳도 잘 찾아 다닐 수가 없어 우울한 나날을 보내며 첫애를 낳고 두 살 터울로 작은 애를 낳아 기르면서 한국 아줌마가 되어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시골 생활을 접고 도시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인근 도시에 작은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다문화 학부모 교육, 한국어 교육 등을 열심히 배우다가 청소년 수련관에서 처음으로 강의를 맡아 중국어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한국말도 능숙하지 않는 상태인데도 강의를 잘한다는 평을 받았고 중국어를 배우겠다는 학생은 점점 늘어나 기분이 좋았으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 후 대학교 평생교육원 등에서 중국어 강의를 맡아 하게 되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나의 한국 생활을 차츰 안정이 되어 갔습니다.
전남함평 손불초등학교 방과 후 교육으로 중국어 수업도 맡게 되었습니다. 학교 한마음 축제에서 중국어‘제비’라는 노래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어 함께 손을 잡고 중국인 복장을 하고 즐겁게 행사에 참여 한 적도 있었는데, 그 때 아이들의 적극적인 태도에 놀랐습니다. 시골아이들이지만 연습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여 나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시골 학교라서 아이들의 수가 20여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순수한 그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가슴이 참 따뜻했으며 그 아이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도 그 때의 추억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학구열이 대단합니다. 나도 어느새 한국의 어머니를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뒷바라지 하는 모습처럼 저도 열심히 공부하며 두 아들을 잘 키우고 싶은 생각에 여기 저기 직장에 이력서를 내고 근무도 해 봤지만 아직도 의사소통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원활한 직장생활이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자격을 얻어 좀 더 좋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에 한국 방송 통신 대학에 편입하여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여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2014년 대학원 졸업 후 사회복지사 자격으로 장기노인 요양센터에 취직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아침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노인들의 건강관리 업무를 맡아 혈압체크며 혈당체크 등을 하며 노인들의 말벗이 되어 하루하루 즐겁게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나보다 약한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정신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르신들은 손만 잡아줘도 너무 좋아하니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고 사회복지사로서 참 뿌듯했습니다.
한국의 날씨는 사계절이 있어 변화가 많지만 시절마다 변하는 자연은 참 아름답고 살기 좋습니다. 그리고 전통과 예절을 지키는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요즘 아이들이 예의범절을 모른다고들 하지만 어른들 앞에서는 술이나 담배를 피우지 않고 추석, 명절에는 온 가족 친지가 모여 한 조상의 뿌리를 찾아 즐기는 모습이 대단합니다.
특히 처음으로 맞이한 설날 많은 음식과 한복을 차려입고 차례 상 앞에서 절을 하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한국 주부들은 명절 증후군이 있을 정도로 힘이 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는 하지만 성묘를 하고 집집마다 웃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발전되고 아름다운 한국을 낳게 한 근원일 것입니다.
한국 땅에 살고 있는 한국 아줌마로서 한 가지 작은 소망이 있다면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문화가정에 도움을 주고 싶고,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도울 수 있는 당당한 사회복지사로서 삶을 살아가면서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