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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기운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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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스님을 추모하며 - 김남국┃예술감독 2015년 02월 396호
법전스님 마지막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해인사를 다시 찾았다. 편집국장스님으로부터 촬영 의뢰를 받고 걱정이 앞섰다. 연화대에서 많은 인파를 헤치고 어떻게 좋은 위치에서 촬영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장비를 써야 효율적으로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를 궁리했다. 지난번 도견스님 다비식 촬영을 경험 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기회는 단 한 번, 어떠한 불길과 연기도 반복되지 않고 더군다나 햇빛이 도와주지 않으면 영상은 무기력하게 보여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팀은 다비식이 있기 며칠 전 만장이 지나가는 동선을 체크하고 연화대에서 촬영계획을 세웠다. 영결식이 끝나기 전에 한 팀은 미리 연화대로 뛰어가 자리를 잡고 나는 만장행렬을 담으며 다비를 근접 촬영하기로 했다. 카메라를 두 팀으로 나누어 두 번째 팀은 카메라맨들이 즐겨 찾는 위치를 벗어나 연화대 오른쪽 능선 위에서 대중들의 모습과 위로 올라가는 연기를 잡기로 했다. 나는 기동성을 발휘하기 위해 삼각대 없이 핸드헬드로만 문중스님들과 큰 스님 다비를 근접 촬영 할 수 있도록 예행연습을 했다.

다비식 당일, 법구가 안치되어 있는 퇴설당에서부터 TV에서 많이 본 듯한 인사들의 조문을 촬영하고 미리 정해놓은 위치에서 영결식을 촬영했다. 쉽지 않았다. 중간 중간 규제하는 스님들은 나를 몰라보고 못 들어가게 막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하지만 촬영하는 사람에게 어떠한 변명도 있을 수 없었다. 영결식 중간 전광판에 내가 만든 추도영상이 나가기 시작했다. 규제했던 스님을 설득해 제가 만든 영상이고 문중스님들 의뢰로 촬영 중이니 꼭 들어 가야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갖갖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연화대로 들어가는 길목에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준비하는 많은 인파들이 보였다.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장면을 담기 위해 인파를 헤치고 여러 위치에서 피어오르는 다비가 뿜어내는 연기를 중심으로 햇빛을 최대한 이용하여 큰 스님의 마지막을 담았다.

새벽부터 얼마나 흘렀을까. 기진맥진해진 우리는 마을로 내려와 식사를 하고 장비를 충전하기 위해 해인사 숙소로 들어 왔다. 사실 우리는 이미 법전스님께서 원적하시기 이 주일 전부터 해인사에 대기하고 있었다. 촬영을 의뢰하신 편집국장스님께서 원적하시면 내려오라고 하셨지만 큰 스님의 원적을 멀리서 기다리는 것 보다는 가까이서 준비하고 싶은 마음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일찍부터 해인사에 머물렀다. 큰 스님이 누워 계시는 도림사에 들러 그분의 마지막 숨소리를 느끼고 수도암에서 자취를 익히기도 했다. 법전스님을 존경하는 상좌스님들의 진실 된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다 되어갈 즈음 나와 스텝들은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보통사람이 열시에 불 꺼진 절집에서 열흘 넘게 지내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나와 같이 밤에 일하는 것에 익숙한 창작가에겐 보통 곤욕이 아니었다. 불도 못 켜고 맘 놓고 얘기도 할 수 없는 절집의 밤. 스텐드조명을 사다 놓고 해인사의 밤을 이겨 보려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똑같은 배경을 번번이 촬영하는 것도 무기력을 더할 뿐 좋은 대안은 아니었다. 그 즈음 눈 소식이 전해졌다. 처음 도착해서 눈이 왔었지만 너무 새벽이고 잠깐이라 촬영에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었다. 이번에 한 번 기대해 보기로 했다. 예보보다 늦게 시작되긴 했지만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장비가 오작동 되고 손가락이 얼어붙을 정도로 힘든 촬영이었지만 스님들의 눈 치우는 장면을 조금도 놓칠 수가 없었다. 작년 해인사에서 도견스님 다비식을 촬영했던 다소 딱딱한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카메라를 보시며 웃음 짓는 스님들도 많이 보였고 넉살좋은 스님은 나에게 사진 한 장을 청하기도 했다.
힘들게 눈 배경을 촬영하고 이주일이 지날 즈음 나와 스텝들은 기진맥진 해져 일단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서울로 올라와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잠시 모든 시름을 잊고 있을 즈음 문자 하나가 들어왔다. ‘법전스님 원적’ 눈앞이 노랬다. 해인사로 들어가 촬영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전에 영결식 추도영상에 들어갈 영상을 편집해야하기 때문이었다. 병원을 나와 성북동 작업실에서 밤 새 편집을 하고 다시 해인사로 출발했다.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분향소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평소 검소하게 생활하신 은사스님의 뜻을 기리는 상좌스님들의 의중이 충분히 느껴졌다. 보경당을 지키는 문중스님들의 진지함과 영결식과 다비를 꼼꼼히 체크하시는 상좌스님들 특히 연화대에서 비구니스님들이 다비에 꽃을 장식하는 정성스러움과 활기찬 모습은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또한 마을식당에서 우리 촬영팀에게 스님들을 잘 찍어 달라고 뇌물 아닌 뇌물까지 주었던 훈훈함은 해인사스님들이 마을 분들을 얼마나 많이 배려하고 계신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힘들지만 보람 있었던 해인사에서의 이십사일, 밝아진 해인사에서 젊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