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 스님이 교육부장 소임을 맡은 지 두 달 여, 스님은 오늘도 업무로 인해 쉴 틈이 없다. 종단의 교육에 관한 소임이니만큼 그 밑바탕을 탄탄히 하고 멀리 내다보아야 하니 어느 하나도 허투루 할 수가 없다. 스님은 스물여덟의 나이에 출가했다. 스님의 어머니는 당시 구례 쌍계사 신도회장이었다. 어머니는 몸이 아프면 병원이 아닌 쌍계사 법당에 가서 절을 하면 씻은 듯이 병이 나았다. 늘 법당에서 삼천 배를 올릴 정도로 신심이 깊으니 고산 스님과 인연이 깊었는데, 그때 마침 고산 스님은 신심 깊은 보살의 아들을 상좌로 받는 원력을 세우셨던 터다. 고향에 잠시 내려왔더니 어머니께서 돈 오천 원을 쥐어주더니 고산 스님께 무조건 가보라고 하셨다. 저녁에 가서 인사를 드리니 당연히 출가할 거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그렇게 자연스레 출가 인연을 맺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혜암 스님을 뵈러 가자고 하여 양복을 차려 입었다.
\"혜암 스님께서 제게 물으셨어요. 어떤 한 사람이 있는데 내일 죽는다. 그런데 그가 살아온 생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다가 재물을 다 두고 내일 죽는 것. 둘째는, 마음공부를 하다가 내일 죽지만 그 마음을 다음 생에 가져가는 것. 둘 중에서 어떤 삶을 살겠느냐 하시더라고요.\"
일주일 뒤에 고무신을 신고 다시 스님을 찾아가 해인사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했다. 출가 인연은 고산 스님과 맺었는데 그렇게 혜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그렇게 신심 깊은 어머니의 자녀 중에 세 형제가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되었다. 한 아들은 송광사에, 또 한 아들은 구례 수미정사에, 그리고 또 한 아들인 진각 스님은 교육원에서 일하며 합천의 연호사 주지로 있다.
진각 스님이 연호사에 주지로 머문 지 십년이 되었다. 처음에 연호사에 왔을 때는 법당도 작고 오래된 나무창살 문 하나뿐이라 바람도 심했다. 유서 깊은 절이나 법회하기도 어려울 만큼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절이었다. 스님은 이곳에서 불사를 하며 서서히 체계를 잡아갔다.
\"1년 동안 기도만 하면서 기다렸어요. 기도의 공덕이 있는 것 같아요. 금방금방 되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원력에 맞는 기회들이 오더라고요. 열심히 기도하고 신도들과 소통하고 지역사회 개발도 같이 하니까 농촌 사찰인데도 큰 어려움은 못 느꼈어요.\"
2011년에는 연호사 불교대학 강좌를 열어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여러 스님들을 초빙해서 신도들이 알기 쉽게 불교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했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큰 호응을 얻으며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불교대학을 통해서 기복 불교를 벗고 생활의 변화를 가져오는 마음공부를 시키고 있다. 그러자 신도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멀리에서도 찾아온단다.
매일 법당에 찾아와 열심히 기도를 하는 귀농 부부가 있었다. 농사를 짓는다고는 하나 형편은 어렵기만 했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도움이 되고 싶었으나 일손을 돕는 것뿐, 근본적인 도움을 줄 수 없어 답답하던 중이었다. 합천 교육지원청에 무상급식 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친환경농업을 하고 있던 그 부부가 스님을 위원장으로 추천했다. 그러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친환경 학교 급식문제가 대두되었고 합천군청에 예산을 받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했다. 그렇게 해서 17억 원을 지원받게 되어 2011년부터 전국에서 최초로 친환경 식재료를 사용한 무상급식이 이루어졌다.
\"무상급식 문제만이 아니라 농민들을 살리는 차원까지 생각했어요. 친환경 식재료를 쓰니 그것을 먹는 아이들도 건강하고 농민들도 안정적인 공급이 있으니 마음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모두가 좋아진 거예요.\"
진각 스님은 그렇게 지역사회 활동을 열심히 하며 공무원 불자회도 만들었다. 그러고는 시민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합천 공감\'을 만들어, 전직 현직 교장을 비롯해 지역신문사 사장 등 합천의 각개각층의 사람들을 조합해 시민연대를 만들어 합천 지역의 발전을 도모해 왔다. 그리고 현재 \'합천댐 효 나눔 복지센터\'의 관장을 맡아 7년째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의 연속이다.
\"인간관계를 잘하는 게 수행이더라고요. 그런 생각으로 연호사 주지를 했죠. 주지라고 해서 폼 잡고 있는 게 아니라 함께 소통하면서 가야하는 것이지요. 남을 돕는 것이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더라고요. 복을 쌓는 게 바로 저축을 하는 일이지요.\"
그러다보니 일이 많아 몸은 피곤해도 마음이 힘든 적이 없단다. 즐겁게 일을 하고 다 같이 좋아지니 그만큼 기쁜 일이 없다며 스님은 웃으신다. 그래서 스님은 신도들에게 늘 말씀하신다.
\"내가 행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행복이 오는 것이지요. 원하기만 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렇게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좋아지게 되어 있어요.\"
스님은 신도들이 어떤 어려움을 갖고 찾아와도 반드시 좋아지게 해주겠다는 확신을 심어준단다. 그러면 이미 문제의 반은 해결이 된단다. 캄캄했던 마음이 풀어지니까. 그러면서 참회기도를 하니 풀리지 않는 문제란 없단다.
진각 스님은 어디에 있든 열심히 하는 스님이고 싶다. 열심히 일한 만큼 나중에 나이 들어서 뒤돌아보았을 때 후회되지 않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스님이고 싶단다.
\"그곳에 가면 그곳에 맞는 사람, 또 저곳에 가면 저곳에 맞는 사람이고 싶어요. 어딜 가든 나한테 맞추게 하는 것은 누구든 할 수 있어요. 부처님도 대기설법을 하셨잖아요. 가르침을 받는 자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그에 알맞은 가르침을 주셨듯, 저도 상황에 맞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누가 찾아와도 스님은 함께 문제를 풀어간다. 그렇게 같이 그 사람의 문제를 풀어주다보면 함께 즐거워진단다. 그러니 스님은 먹고 사는 데에 문제가 전혀 없단다. 딸기 농사를 짓는 농부는 딸기를 가져다주고 토마토 농사를 짓는 농부는 토마토를 가져다주고 쌀도 주고 고추도 주고 감자도 주니 때때마다 그저 즐겁단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소통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문아명자면삼도 聞我名者免三途 견아형자득해탈 見我形者得解脫이라고 했어요. 내 이름을 듣는 이는 삼악도를 면하고 나의 형상 보는 이는 해탈을 얻는다. 주변의 좋은 이들과 더불어서 항시 열심히 살면, 하루하루 쌓여서 그리 되지 않겠습니까. 원력이 있다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사는 거예요.\"
스님은 오늘도 업무를 보느라 바쁘시다. 그러고는 또 어디로 걸음을 옮기시고 또 전화를 받으시고 또 누군가가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신다. 그런데 그게 참 이상한 게 그 모습이 그저 바빠 보이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스님의 등판을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 보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