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용하는 말言은 시간의 예술이라 한다. 하나하나의 단어를 뱉으면 순간 음성들은 대화를 연결하고 흩어진다. 이러한 말들은 사람의 입을 통해 시간을 함축하며 전체를 구성하고, 흘러가는 순간순간 충실하게 현재성을 드러낸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그때의 사건에 완전히 흡입되는 것이다. 언어를 통해 자신을 들어내고, 변화하면서, 사라진다. 인간의 사고와 의식이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연기緣起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음성을 생성하고 소리에 반응하며 행동으로 옮긴다. 즉 자신 안의 내면적 감성, 사고를 밖으로 표출하면서 다른 이들과 작용한다. 화자가 자신이 인지한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는 태도와 그 인지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는 언어행위가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우리 주변에는 허다하다. 사회 공동체 그리고 개인과 개인 간에 무분별적 언어 행위를 보면서 한번쯤은 ‘안’으로부터 점검해나가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전과 성장의 화려한 외피에 매몰되어 비가시적인 부분에 대한 섬세한 성찰이 없어서인지 대화라는 틀만 있을 뿐 침묵으로 걸러지지 않은 말로 인해 공해公害를 이루는 것 같다. 특히 민주주의의 형식적 정착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바른 훈습薰習’이 싹트지 못하고, 조직적으로 계합된 욕망 실현이 미덕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살다보면 사람이 거짓말을 하거나, 꾸미는 말로 상대방을 홀리게 하거나, 이간질 하거나, 나쁜 말로 사람들을 상처 주는 일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말을 이용한 폭력과 기만이 넘쳐난다. 개인들의 관계에서 행해지는 것은 당사자들 간의 불화와 다툼으로 이어지고, 공인公人에 의해 자행되는 거짓말들은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림으로써 엄청난 기회비용의 손실을 초래한다. 국가 기관과 공직자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유포되는 거짓된 말은 공적 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을 심화시키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요소들을 하나씩 붕괴시킨다. 예컨대 『지록위마』라는 사자성어의 주인공인 환관 조고가 그러했다. 사실이 아닌 말로 윗사람을 속여 권세를 휘두르고,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거짓된 조서詔書를 꾸며 진시황제의 장남인 부소扶蘇를 자결하게 만들면서 중국 역사상 최악의 환관이라 기록된다. 또한 독일 나치시대, 대중의 본능과 감정에 대해 놀랄 만큼 정확히 인식하고 있던 괴벨스는 자신의 언어로 대중을 지배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대중매체를 통한 그의 언어행위는 유대인에 대한 독일인들의 증오심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질서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평소에 뜻을 펴지 못한 야심가와 권력자들의 정제되지 못한 욕망이 발현發現되었고, 마치 그것이 국민의 요구인 것처럼 선전宣傳하고 있다. 자신의 야심과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거짓을 만들어내고 선악시비善惡是非를 뒤바뀌게 만들면서 사람들의 도덕수준을 땅에 떨어지게 한다. 게다가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근본도 없는 이단異端 단체나 사이비似而非 커뮤니티가 위선의 탈을 뒤집어쓰고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더욱 허탈한 것은 대통령의 침묵이다. 찬바람이 이는 겨울문턱 앞에서 자식을 가슴에 품은 부모들이 거리에서 농성籠城을 하고 있건만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중이다. 지방선거 전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을 약속한 발언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들을 찾아 어둡고 차가운 진실 속으로 파고들어가도 모자란 지금, 그녀는 마치 선별적으로 이 참사에 대한 기억들을 지우려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기만적 의도와 거짓 사실의 결합으로 국민들은 혼란과 고통 속으로 빠져들었고, 정치꾼과 공직자의 거짓말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국민의 몫으로 전가되었다. 탐욕을 합리화하기 위한 언어 행위, 타인의 고통을 수반하는 발설發說은 진실 된 말이 얼마나 소중한지 역설하고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오계五戒 중 “거짓말 하지 말라”라는 계목戒目이 있다. 단순히 속이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중생은 항상 진실해야 함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시켜 거짓말 하게 하거나, 수단을 써서 하거나, 거짓을 방관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 할 수 있다. 거짓은 상호간의 신뢰하는 마음을 단절시키고, 믿음의 종자를 끊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는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지 말아야 하며, 허망한 말 하지 않고, 약속을 어기지 말며, 신용을 버리지 말아야한다. 나아가 지식인들은 학문을 왜곡하지 않으며, 언론들은 사실을 숨기지 않고, 종교인들은 진실을 은폐, 외면하면 안 된다. 위정자들은 자신 말의 무게를 명확히 알아 신중해야한다. 참말 대신 거짓된 말이 횡행하는 사회에서는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대화가 단절된 공동체에서는 무엇이 공정한지 정의로운지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개인이나 사회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는 출발점은 사람이다. 진실 된 말을 하는 것도 사람이고, 거짓된 말을 하여 신뢰를 허무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 나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감시와 처벌, 통제가 아니라 자신의 무지無知를 참회하고 다른 이들의 말에 대한 경청과 공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참사람답게 자기 삶의 테두리 안에서부터 하나씩 고쳐 나가야 한다. 자기 속에 잠재되어 있는 참된 언어를 닦아 나가야한다. 말을 사용함에 인품이 드러나고, 그 인품은 말로 하여금 닦아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 된 말은 개인의 삶을 밝아지게 하고 삶이 밝아지면 이웃들에게도 그 따스함이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 사회에 향기로운 말들로 가득할 것이다. 작은 돌멩이가 모여 탑을 이루고, 작은 꽃들이 모여 화단을 이루듯, 진실한 말의 씨앗을 품어 우리가 꿈꾸는 정토淨土세상을 이루어 나가길 발원한다.
故 법정스님의 수필, “ 홀로 사는 즐거움”에 나온 문구를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