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이 마지막 달을 지나며 저물어가고 있다. 온갖 색상의 단풍으로 황홀한 풍광을 연출하던 나뭇잎들도 낙엽 되어 서둘러 떠나고 공중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남아 차가운 공기에 몸을 맡긴다.가야산과 매화산을 등반하고 해인사를 찾은 등산객들은 끝이 뾰족한 등산지팡이를 양손에 그대로 들고 다니면서 다리가 아프거나 힘들어서가 아니라 별 의미도 없이 땅을 찍으면서 걸어간다. 창끝처럼 뾰족한 지팡이로 필요도 없이 그냥 꾹꾹 찍어대니 땅인들 아프지 않겠는가? 등산객 무리들이 지나간 자리에서는 땅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빙판위도 아닌데 땅을 짚고 다닐 지팡이를 왜 저렇게 끝이 뾰족하게 만들었는지 땅으로서는 등산스틱의 수난시대라 할 만하다.
법당에서 스님들과 불자들이 기도하는 중에도 그 부근에서 큰 소리로 전화를 하거나 받으며 웃고 떠드는 사람이 있고, 관광안내원들은 마이크를 크게 틀어 설명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엄숙하고 경건해야 할 천년 전통 사찰에서 좀 더 예의를 지키고 행동을 삼가 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다.
첨단 과학시대, 미디어 시대, 소위 글로벌 시대가 도래 하여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지구촌이 한 가족처럼 가까운 교류를 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우리의 질서 문화는 그렇게 훌륭해 보이지를 않는다. 우리가 예사로 생각하고 거리에 버리는 담배꽁초도 선진국에서는 무거운 과태료가 부괴되며 엄중하게 취급 되지만 우리사회 법의 판단 기준은 어찌된 샘인지 이런 무질서와 세상을 흐려놓는 일의 처벌은 너무 관대하다.
학사대와 독성각 앞은 사람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일반 3거리를 연상케 하며 해인사에서 관광객들이 서로 교류하는 길목처럼 붐비는 곳이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에게 많이 받는 질문은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 팔만대장경이 어디 있느냐. 계단 없이 내려 갈 수 있는 길이 없느냐 하는 말이다. 천년을 이어오는 전통이지만 해인사의 108돌계단은 그 간격이 너무 높아 다리 아프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힘들게 되어 있다. 지금 돌계단의 절반 높이만 되어도 한결 수월할 것 같다. 이곳에 화장실 안내판을 설치하여 관광객들의 편의를 최대한 돌봐 주고, 노인들과 무릎이 아프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길을 만들어 주는 조치가 꼭 필요한 것 같다.
학사대 안내판은 나무 뒤쪽에 세워져 있다. 안내판을 먼저보고 관람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무를 먼저 보고 안내문을 봐야 하는 상태다. 그러다 보니 안내판이 있는 줄을 모르는 관광객들은 밑에서 나무를 쳐다보면서 잣나무다 소나무다 하는 식으로 우왕좌왕한다. 안내판의 위치를 나무 전면 돌담 밑으로 재배치하여 고운선생의 아름다운 전설로 빛나는 소중한 해인사의 문화유산이 일반인들에게 더욱 잘 알려지도록 하는 개선조치가 요망된다.
질서란 바로 남에 대한 배려이며 공공의식이다. 배려와 공공의식이란 양보와 절제이다. 우리는 아직도 배려와 공공의 질서의식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2014. 11. 13. 장경판전 근무자 윤 한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