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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프랑스 농부의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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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해인 편집실 2014년 12월 394호
한 해의 끝자락입니다. 얼마 전까지 붉고 윤나던 감나무 잎은 추락했습니다. 하늘 배경에 선명한 선을 그려놓았습니다. 쌀쌀해졌습니다. 흐린 날엔 먼 데가 보이지 않는데, 가끔은 눈을 낮추어 가까운 것들을 살펴보라는, 조고각하照顧脚下하라는 자연의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날씨가 쌀쌀한
것은 따뜻함을 그리워하라는 뜻일 겝니다. 그리하여 겨울은 겸허의 계절입니다.
시작은 어땠지? 새해였던 열한 달 전의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올해를 시작했던 즈음의 각오는 분명 새로웠고 다부졌을 텐데, 시간만 속절없이 흘려보내지 않았나 하는 마음에 허허롭습니다. 며칠 전 읽었던 늙은 프랑스 농부의 얘기가 떠올라 밑줄 그은 책장을 다시 펼쳐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가난하다고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가난하다는 기준이 뭘까요? 그리고‘가난’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인식하는‘부’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낙농업자의‘시간표’에 얽매여 생활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트럭비, 운송비, 세금 등을 내기 위해 서너 마리의 소를 더 길러야 했을 것입니다. 즉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가족은 마음이 내킬 때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합니다.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습니다. 시간의 제약도 받지 않지요. 그게 내각 생각하는‘부’입니다.”<폴 베델 구술, 농부로 사는 즐거움, 112~113쪽>
이런 행복론을 지녔기에“땅은 살아 있습니다. 씨앗을 땅에 묻을 때, 씨앗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땅에 묻히는 순간, 땅이 씨앗에 영양을 주어-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지만-씨앗을 부활시킵니다”라는 순환과 연기의 아름다운 발견을 얻는 것인가 봅니다.
문득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도 떠오릅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 어느 날 많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어떤 것을 바른 생활(正命)이라 하는가? 무리하게 구하지 않고, 분수를 알아 만족할 줄 알며, 남을 속이는 삿된 직업으로 생활하지 않고 다만 법답게 재물을 구하되 법답지 않은 것은 따르지 않는 것을 바른 생활이라 말한다.”<중아함경 제7:분별사성제경, 성열 엮음, 부처님 말씀, 564쪽>
부처님께서는 기술을 익혀 꿀벌처럼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도 전하고 계십니다.“마땅히 먼저 기술을 익혀라. 그래야만 재물을 모을 수 있다. 재물을 얻어 풍요하거든 잘 지켜 보호하라. 재물을 쓰되 사치하지 말고 마땅히 줄 수 있는 사람을 가려라. 남을 속이거나 저돌적인 사람은 아무리
애걸해도 빌려주지 말라. 재물을 모으되 벌이 여러 꽃에서 꿀을 모으듯 작은 것을 소홀히 하지 말라. 먹고 사는 살림에 만족함을 눈뜨고, 자기 직업에 게으르지 말며, 틈틈이 모으고 쌓아 가난하고 어려울 때를 대비하라. 밭 갈고 장사하며 목장 만들어 짐승 먹이고, 마땅히 탑을 쌓아 세우고 절을 짓고 방사房舍를 지어라. 이렇게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은 바다가 강물을 받아들이듯 재물이 줄지 않고 늘어나리라.”<부처님말씀, 559쪽>
장자의 아들인 선생善生이라는 사람에게 주는 가르침인데, 프랑스 농부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다만 탑을 쌓고 절을 세우지는 않았는데, 그가 불교를 알았다면 마땅히 탑을 쌓고 절을 세웠을 것이며, 수행자를 공양하고, 분명히 착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았을 것입니다.
프랑스 농부의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한 해의 끝자락에서 보는 우리 종단의 모습은 누추합니다.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지난 10월에 열린 종단개혁 20주년 기념 3차세미나에서 기조발제를 통해 종단을 진단하고 위기의 상황이라고 했습니다.“지금의 종단의 현실은‘무소유 공동체’냐,‘사유화 각자도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결단의 분기점에 서 있다.”“손을 놓고 있으면5년 이내에도 종단이 붕괴될 수도 있다고본다.”
한 교계언론은“현응 스님은 공찰의 소득을 일부 스님과 사찰만이 독점하는 종단 현실을 꼬집고‘사회에서는 폭동이나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보았다. 종단 내에서는 종단풍토상‘종단을 무시하거나 종단과 관계없이 개인적인 대책을 세워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심한 경우‘종단 해체를 요구하거나 탈종하여 개별 사찰과 개별 스님 차원으로 살아가려 할 것’이라고 점쳤다. 다소 극단적으로 보이는 현응 스님의 지적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오늘 조계종단의 현실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현응 스님의 진단을 무겁게 받아들였다.[불교포커스, 조계종 5년 이내 종단 붕괴될 수 있다, 2014. 10.2]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설사 허공을 땅으로 만들고 땅을 허공으로 만들 수 있다 해도 이미 뿌려놓은 인연의 씨앗은 썩어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나니 인연이 무르익는 날에는 반드시 받아야 하리.”[증일아 함경 제26, 부처님 말씀, 321쪽]
지금의 공동체 해체 위기는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일까요. 역사적으로 정화의 후유증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가까이는 94년 종단개혁의 미완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물질만능의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휩쓸렸다는 진단도 있습니다. 총무원이라는 행정서비스기제가 권력화되어 권력투쟁의 측면으로만 흐르다 보니 정치가 기승을 부려 어려움에 처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각각의 주장과 분석이 진실의 한 끝자락을 붙들고 있다고 봅니다.
새 인연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먼저,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땐 생각하고, 둘 셋이 모이면 얘기해야 합니다. 동심원이 퍼지도록 자꾸 얘기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총무원이 100인 위원회를 구성해 대중공사를 열겠다는 계획은 적절해보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참회가 선행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내기 어렵습니다. 지금의 초라함을 가져온 인적 원인의 제공자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찌 공감을 얻어낼 수 있겠습니까.완장도 풀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와 질시의 늪에 빠지고 맙니다. 100인의 구성, 이런 식으로 하면 제방의 입 다물었던 소리들은 더욱 침묵하게 됩니다.
프랑스 농부만 아름다움이겠습니까. 글로써 나타난 것이니 도드라진 것일 뿐이지요. 한 해를 살아온 자신이 대견하고, 함께한 이웃이 어찌 정겹지 않겠는지요. 올 한해가 저물기 전에 해야 할 일 중 꼭 잊어선 안 되는 것은 고마움을 전하는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