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일을 다 한 나뭇잎이 사라진 자리, 별이 걸린다. 까만 밤하늘에 서늘하도록 맑은 별빛이 겨울을 되새긴다. 한 그루 나무에게도 사철의 살림살이가 있듯이 해인사도 크고 작은 행사를 치르며 또 한해가 지난다. 사철을 살아내는대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일손을 거쳐야 한다. 굵직한 불사가 다가오면 다니기 쉬운 계단이 생겨나고 무대가 만들어졌다가도 연기처럼 사라진다. 드러나진 않지만 그들이 행적과 일군 결과물이 눈에 띄는 영선營繕부가 있다. 그림자 같지만 그 묵직한 존재감. 해인사 모든 일은 박기석 팀장님으로 통한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평생을 사하촌寺下村에서 살았고, 생의 절반 이상은 해인사에서 보냈다. 아니 온힘을 다해 지내왔다. 해인사 구석구석에는 그의 삶이 녹아들었으리라. 때론 ‘어려운 사람’‘신경질적
인 사람’‘고집스러운 사람’으로 굳어지긴 했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안다. ‘참 성실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말이다. 해인사에서 보낸 25년의 시간은 햇볕에 그을린 얼굴, 희끗하게 늘어가는 흰 머리카락과 굵어지는 주름들을 남기긴 했지만 말보다는 행동으로 온힘을 다해 해인사를 품고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터뷰의 요청은 수차례 퇴짜를 맞았지만 여러 분들의 도움을 빌린 물밑작업으로 드디어 해인선우의 수면에 떠올랐다. 황소고집과 드러나길 싫어하
는 면모 그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해인선우에 문을 열어주시기까지 꼬박 반년이 걸렸지만 말이다. 영선팀장님을 만나려면 일터로 가야 한다.
대중울력
영선부원은 다섯 분이 계시지만 굵직한 불사와 행사 준비에는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한다. 사월초파일 등달기 같은 일을 진행할 때 인원을 모으는 일도 영선부의 또 다른 일이다. 그래서 타부서의 지원을 받게 된다. 보람이라면, 하나같이 자신의 일처럼 열심히 동참
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라 했다. 고맙다. 그래서 대중울력의 참여도에 따라 마음이 더 가거나 덜 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일하며 부대끼며 그렇게 사람을 알아가게 된다.
“쿵쿵쿵!” 거칠고 큰 의성어들과 친근한 영선업무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손과 발, 아니 온몸으로 감내한다. 11월 해인사의 월동준비가 진행된다. 해인사 템플스테이 주차장에서 그들의 일이 진행된다. 장장 3일간4천 5백여 포기의 김장울력이 이뤄질 곳이다. 탄탄한
대본처럼 다음날 일의 순서와 일정에 들어맞게 준비를 마친다. 뚝딱뚝딱 세 칸으로 조립된 일명 배추 풀장도 만들어졌다. 한켠에서 수확한 배추를 다듬어 수각장으로 나르고, 수각장에서는 배추들을 씻고 절이는 과정을 거친다. 이틀간은 해인사 스님들의 손을 빌린다.
손에 꼽히는 해인사의 진풍경 중 하나다. 무대 위의 조명이나 음향처럼 그 사이사이 일을 움직이게 만드는대 영선부만의 일이 있다. 수확한 배추를 밭에서 옮겨오는 일이나, 소금포대를 나르고, 물을 끌어오고, 차가워진 몸을 녹여 줄 장작불을 유지하는 일 등은 눈에 띄진 않지만 매끄럽게 나아가게 하는 윤활유와 같은 일들이다. 그 일의 중심에는 박기석 팀장님이 있었다.
저도 알고 보면 착한 사람이에요
해인사에서 박기석 팀장은 ‘신경질 잘 내는 사람’이란다. 하지만 해인선우를 빌려 이런 오해를 벗고 싶다고 하셨다. 순수한 업무를 위해서였다. 영선부의 일은 실수가 있으면 즉각 차질이 생긴다. 잘 끝내야만 다른 부서가 다음의 일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때론 버럭 호통을 치기도 하고, 하는 수 없이 언성이 높아져서 스님들에게나 타부서
와도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울력 때 만나거나 회식의 자리를 빌려서 의도하지 않은 묵은 오해들을 풀기도 하지만 묵히지 않고 그때그때 잘 풀어졌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해인사 맥가이버
스님들, 직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이 온다.
그래서 가보면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이어서 못해내는 일들도 있다. 그래도 일이 생기면 일단 “박기석이데려와”“박팀장님에게 연락해 봐”라고 한다. 하지만 박기석 팀장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요청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곤혹스럽다. 영농과 큰 불사가 겹치거나 선원이나 부서 간의 작업요청이 동시에 오면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수밖에 없다. 몸은 하나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혹여 즉각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할 땐 오해보다는 이해를 부탁드린다. 해인사 맥가이버에게는 오늘도 살이 찔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눈이 내리면 영선부는 또 출동한다. 스님이 다니시는 길을 정비하고 제설작업에 힘을 다한다. 겨우내 해인사에는 많은 눈이
기다린다. 그러니 자기 부서 앞은 그 부서 스스로가 눈을 치워주면 좋겠다 하신다.
잔뜩 찌푸린 하늘의 인상을 살피며 그들의 제설작업 사전 준비는 진행될 것이다.
계절의 변화를 또한 온몸으로 느끼는 일이 또한 영선부의 업무일 것이다.
25년간을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면 끊임없이 몸을 낮추고 마음을 낮추는 것이라 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내리고 낮췄던 한편으로 수행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빛이 되어 해인사를 밝힌다. 또다시 봄이 오면 해인사에 등불이 밝혀질 것이다. 누군가의 손길에서 피어나리라. 그렇게 해인사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으로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