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만행의 끝 이와 같이 저는 보았습니다.
티베트 스님들이 형형색색의 가는 모래를 심혈을 기울여 흘려내며 그려내는 만다라. 만다라의 크기나 불공을 올리는 시간에 따라 몇 달이 걸릴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미세하고 오랜 시간의 정성으로 완성해낸 가는 만다라는 그 자체로 장엄합니다. 부처님 깨달음을 형상화했기도 하려니와, 우주의 사각 틀 안에 둥근 수레바퀴를 갖추고 온 법계에 두루하신 부처님의 모습을 그렇게 오랜 기간 일심 수행으로 그려낸 것이기도 하기에 참 경외로운 불공이지요. 그런데 이토록 장엄한 모래의 만다라조차도 부처님께 봉헌하고 난 뒤에는 빗자루에 쓸려서 없어지고 맙니다. 오랜 시간동안 지극정성의 불공을 들인 숭고한 법계도이기도 하지만, 형상을 가진 그 모든 것은 무너지게 되어있다는 성주괴공의 진리 앞에서 만다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렇게 비질의 거친 뒤의 만다라는 별 볼일 없는 한줌의 모래로 변모하는 것입니다. 흐르는 강물 위에 흩뿌려지는 그 모래 한줌을 보면서 제게 문득 이런 생각을 들더랍니다. 나의 세계 만행도 저리 되어야 하겠구나, 하고요.
끝을 이야기 하는 자리에는 늘상 이렇게 시작이 언급되기 마련인가 봅니다. 저의 세계 만행 시작은 참 보잘 것 없었습니다. 돌아다니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해외라곤 출가 직전에 인도로 혼자서 부처님 4대 성지순례를 다녀온 게 전부였던 제가 세계 일주를 계획한 건, 그냥 문득 생각이 나서였습니다. 일생에 한번은 세계 일주를 해야겠다는 그 오래전의 다짐이 2년 전 봄에 별안간 떠오른 것이었지요. 딴에는 제 수행을 점검해보겠다는 의도도 곁들어졌고 또 마음의 세계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살펴보고픈 호기심도 일었습니다. 세계 일주를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차마 예상치 못한 갖은 역순 경계도 다양하게 접했습니다. 2012년 9월 10일, 우주 중심에 있는 수미산의 현현이라 언급되는 카일라스산 순례를 시작으로 해서, 2014년 10월 18일,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적인 도시인 뉴욕을 마지막으로 25개월 남짓한 세계 만행은 끝을 보게 되었습니다. 긴 여정이었고 오랜 걸음이었습니다.
지금껏 세계 도처를 여행한 스님들이 많았겠지만, 온전한 형태의 세계 일주에다가 잡지에 연재를 하고 블로그에다 기록을 남기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이 더러 쏠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한 일간지에서의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 이를 마치고 나니, 세계 일주를 책으로 엮어내자는 출판사들의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나중에는 모 방송국에서도 다큐멘터리 촬영 요청이 들어온 걸 보면 어지간한 관심거리는 정도는 되는가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스님의 세계 일주라는 희소성 탓이었겠지요. 이런 요청들에 대해 저는 여러 사항들을 심사숙고한 뒤에 거절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즐기는 여행처럼 보일 수 있었을 이 세계 일주를 제가 만행이라고 고집해 부른 것은, 그 2년 남짓한 시간동안 일어났던 그 보잘 것 없던 일련의 경계들을 언제고 수행을 중심에 두고 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장엄했던 모래 만다라도 불투명한 색깔의 한줌 흙더미로 변해 강물 속으로 사라지고야 마는데, 그렇게 부실했던 수행 경험의 기록들이 하얀 종이옷을 입고 세상에 다시 드러난다는 게 제겐 당체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책이나 영상으로 제 세계 만행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행여나 쏠릴지도 모를 사람들의 관심이 내심 부담스럽기도 했고요. 만일 그리 된다면, 금생에 내 공부는 끝이 나겠구나, 라는 두려운 짐작이 들었던 겁니다. 세계 일주를 마쳤으니 이제 뭐라고 내야 하지 않겠냐던 어떤 구참 스님이 선원에서 수행해봐야 남는 게 없다하셨는데, 네, 약간 돌려 생각하면 맞는 말씀입니다. 본래 남음이 없어야 바른 수행일 테니 말입니다. 모래 만다라처럼 말이지요.
출가 이후 언젠가부터 저는 저에게 곧잘 되뇌이는 말이 있습니다. 그건 쓸모없이 살다 쓸모없이 죽으리라는 것입니다. 저는 수행 경계가 뛰어난 선승도 아니고 그렇다고 용맹스럽게 정진해나가는 수좌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품행이 어긋나거나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정도의 일은 벌인 것도 아닙니다. 비록 미진한 성취를 이뤄갈 것이지만 저는 수행하는 삶이 좋아서 이 길을 택한 것이고 앞으로도 이 길을 계속 걸어갈 것입니다. 예전에 은사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중국 선의 황금기 시대에 대선지식 회상에 천여 대중이 모여 살던 때에도 공부인은 단 한명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비유하시길, 큰 산이 있으면 그 산에는 오직 한 마리의 호랑이가 있을 뿐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산에 오직 한 마리의 호랑이만 산다는 것만이 유일한 뜻은 아닙니다. 큰 산에는 호랑이도 있고 곰도 있고 사슴도 있고 쥐도, 뱀도 있습니다. 하나의 산은 이처럼 수많은 동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커다란 생태계이고 그 나름의 균형을 갖춘 살림처입니다. 제 근기를 살피건대, 그간 월간 해인에 글을 연재하고 블로그에 글을 쓴 저는 아무래도 말 많고 간교한 여우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세계 만행을 하며 어쩌다 이렇게 말이며 글이란 허물을 많이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님 이전에 사람이기에, 사람이라면 인연 따라 그만의 허물도 애써 털어내지 않고 어느 정도는 짊어지고 가는 것도 그런대로의 삶이다 싶은 생각이 들어 그간 기록을 남긴 블로그도 그냥 놔두기로 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수도암 선원에서 한 달 여를 정진하며 지낸 탓인지 애초엔 나머지 만행기를 정리해야겠단 생각이 있었지만 그 생각이 사라져 그냥 놔두고 있습니다. 2년이란 긴 만행을 마치고 난 뒤 한국땅을 밟는 그 순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렇다할만한 마음의 변화가 없던 걸 보니 오랜 시간 밖을 걸어 다녔으되 그리 바깥을 돌아다닌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이렇게 선원에서 정진하다가 다시 괴색의 빗장문을 열고 동안거를 들어갈 것입니다. 그냥 이렇게요. 그럼 마지막 인사는 간단히 하겠습니다. 적당히 건강하시고 적당히 행복하세요. 이만하면 됐지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