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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만필漫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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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박달수 2014년 12월 394호
땀 젖은 경작일지 길게 누워 굽이진 행로 저 멀리 소실점에 봄을 심은 부지런이 첫 장 가득 메워 있고 붉은 염원 열음한 가을로 근농교본勤農敎本 초간본을 마무리해 심은 만큼 거두고 가꾼 만큼 크는 수확 끊임없는 노동의 행진, 풍성하게 영그는 들판 가을의 율법이다. 노동이 신성하고 가치로운 것으로 자리매김시킨 가을의 완성. 가을의 언어여 감사를 노래하자. 백장百丈선사의 미소가 가을을 채운다.
가을은 풍요로 광은 넘쳐나지만 수많은 생령들이 최후를 고하고 떠나 쓸쓸히 남는 자리, 가을의 아이러니다. 풍요가 기쁨이 아니고 생명이 기쁨인 것을. 그래서 N.프라야도 가을을 비극이라 했나 보다. 풍요와 비극의 함수 관계, 이건 끝내 풀리지 않는 루트Root. 가을의 어록이고 실낱같은 생명줄에 의지한 마지막 잎새의 절박이 가을의 일상이다.
가을은 깃발 내린 항복 선언을 낙엽으로 쏟는다. 산들도 포고를 낮춘 자세로 자아 성찰에 들어간다. 삶의 경건을 위해 우리 함께 이 가을에 참회하자. 도로인생개자공徒勞人生皆自空이요 생사열반아역공生死涅槃我亦空인데 이 가을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죽비로 탁! 방하착放下着 나를 내려 놓아버려라.
오늘은 아내가 나를 잊었으니(금일부망아今日婦忘我) 내일이면 내가 나를 잊을 차례(명일오망오明日吾忘吾) 그 뒤로는 하늘과 땅 사이에(각후천지내却後天地內) 가까운 이들도 먼 이들도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것을(료무친여소了無親與疎) 고려말 백운거사 이규보李奎報의 영망詠忘의 미련 부분이다. 그래 존재의 핵은 무無라 하지 않았는가. 빨리 미련일랑 버리고 가을처럼 훨훨 떠나 묵상의 기도처만 남겨 주자.
끓임 없이 순환하는 계절의 생리대로 근육질 여름이 떠난 자리, 뽀송한 체질에 깔끔한 성격의 가을이 서둘러 우리 속으로 오더니 벌써 허허한 충만을 위한 군살 빼기로 가볍게 떠나는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떠남의 아쉬움 어쩔 줄 몰라 아픔의 생채기로 오열의 낯붉힘인가, 깨침의 환희로 속내 감춘 내연內燃의 열화일가, 가을은 변신의 고수답게 꽃물 입힌 단풍을 무대에 올렸다.
단풍이라면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서녘으로 바라보는 조망, 선가禪家의 권속으로 묵묵히 묵상하며 원당암을 품은 봉래봉蓬萊峰이 으뜸이고 가야산 잠겨 있던 물이 해인사 범종소리 타고 굽이굽이 흘러 홍류동천 이룬 큰 화폭에 단풍 띄워 시를 쓰는 것이 단연 압권이다. 절 찾아 무심을 걷는 노승 등에 노을이 업혀 조는 풍광을 곁들이면 무릉도원의 영상이다.
빨강, 노랑, 다갈색 가을의 뎃생은 달빛 젖은 밤이다.

진양조 달이 뜨면 만 평 달빛 초가마을이
아래 위뜸 오붓한 이웃 삶의 무늬 닮은 하나
아자창 달빛 젖은 단란 하늘 백성 누린 터.
졸 시 〈조국은 엄마의 땅〉 첫 수

우리네 시골 마을은 콩 한 쪽도 나누어 먹고 마을 어른이 이놈들! 하면 동네 아이들이 머리를 조아리던 예의 바른 삶을 살았다. 비록 가난하게 살지라도 오손도손 방문 돌저귀 아구 맞듯 서로 단란하게 살아왔던 것이다.
또 가을의 서정을 한껏 더 해 주는 것으로는 달밤, 여백없이 꼭 차 있는 밤의 정밀靜謐 위에 흐르는 선율, 귀뚜라미의 단조곡이다. 이조말 청빈한 선비 박효관朴孝寬도 ‘님 그린 상사몽이 실솔蟋蟀의 넋이 되어 /추야장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었다가/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 볼까 하노라’고 노래했다. 이 귀뚜라미 울음을 중국의 양연수楊延秀는 슬픈 듯, 원망하듯, 분한 듯, 탄식하듯, 가을밤의 청장淸長을 울어 예는 소리로 또 미국의 소로우는 교미기가 지나면 속절없이 사라지는 사랑의 선율이 아니라 신의 영광을 찬양하며 그것을 즐기고 있는 소리라고 말했으니 예나 지금, 동서가 다르지 않게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는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귀뚜라미 울음 따라 울 수밖에 없는 나의 가을밤.

코스모스 색동 웃음이
지금도 그 길 수 놓으리

경우 바른 전주최씨
어머님 얼굴 떠 올리고

그 외진
각개전투 훈련장
선학으로 오신 어머니.

모성의 여울 살에
군율도 흐르는 섬

먼 남도 아름찬 길에
일요일 면회 시간 놓쳐 하얗게 밤을 새고 어딘들 못 찾으랴
산이 휘인 굽잇길 돌아 고향 물소리랑 먹거리 이고 오신 어머니.
그리 먹이고도 호르라기 소리 따라 가는 내 등을 향해
뭇 부처님께 빌었을 어머니. 혹이 된 이 막내

푸른 하늘이 눈 시렸다.
눈물 속 굴절되어 오는 어머니 그 모습

마흔여 나이테 감겨도
풍화모른 화석이여.

60대 초반에 쓴 작품이다. 이 가을이면 부르는 사모곡思母曲이고 앓는 아픔이다. 1950년대 말에는 기차도 연착이 예사고 버스도 고장이 잦은 때라 어찌할 수 없이 면회날짜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왜정말 정확히 1945년 7월 큰 형님께서 징집되어 훈련을 마치고 전쟁터로 출정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면회가 허용된다는 통보를 받고 부산 적기에 있던 8880부대까지 해인사에서 걷다 타다 면회를 하고 오신 분이니 똑똑하신 분이라도 불가항력이었다.
이 가을 낙엽귀근의 의미를 새기면서 나도 이제 홀가분하게 떠날 채비를 할 때다. 칠십구재七十九載, 내 걸어온 길. 시간의 등뼈가 휘어지게 제법 길게 누웠다. 굽이마다 정자 한 채 있음직한데 전무하다. 그저 세월의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온 것이다. 돌이켜 보면 좀더 적극적으로 좀더 진지하게 왜 살지 못했나 후회가 막심하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짓이다. 인생은 어떠한 값으로도 구입될 수 없는 나만의 창조이고 모범답이 없는 나만의 절대가 아니던가. 인간의 삶은 철저하게 혼자 가는 길이어서 외롭고 쓸쓸함은 물론 자칫 그러치기 쉬운 위험한 길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사람은 일회성의 존재, 유한성의 존재로 단독자이면서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에 책임 귀속의 연대성을 가지는 연대자이기도 하여 산다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는 법이다. 인간은 미래를 꿈꾸며 살지만 미래는 늘 불확실한 항해임을 깨닫게 된다. “만사종래춘소설萬事從來春消雪 수지개중자유일단난마멸萬事從來春消雪 誰知個中自有一段難磨滅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봄눈 녹듯 사라지는 법이지만 그 중에서도 한 부분만은 그 뉘라서 깎아 없애랴.” 초의 선사의 이 차시를 텍스트로 하고 보면 존재의 무한한 긍지와 살아 있음의 기쁨을 느끼며 나다움의 미학으로 범부로서는 이런 자긍심으로 삶을 꾸려 봄직하다.
이 가을 끝자락이 지금 내 살아 갈 지점 같다. 내일을 모르는 인생인데 착각일까? 하긴 테크레파시Techlepathy 시대가 도래한다니 나 같은 구닥다리는 빨리 물러가야 할 때다. 물러가도 아름답게 말이다. 도를 닦지 않아 열반적정涅槃寂靜의 대환희와 대자유를 누릴 수는 없겠지만 선자 화상船子和尙께서 일께우신 무심無心 무욕無慾 무위無爲 무의無意로 살아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감사만 남기고 가을이 또한 축복만 남기고 떠나듯 그렇게 떠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