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터진 날이 4월 16일이었으니 6개월이 지났다.종교지도자들의 성명이 발표된 지 다섯달이 지났다. 관련자 재판이 진행되고 있고, 특별법 제정을 놓고 정치권은 여전히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중에 종교지도자들의 성명서를 다시 읽어보니 백배 공감하지 않을수 없다. 가슴 뭉클하다. 그런데, 저런 내용의 성명서를 종교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발표한 적이 있었지라며, 오랜 기억을 더듬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얼마 전‘세월호 앞에서 종교는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이야기 나눔이 있었다. 계간 <불교평론>이 매달‘열린논단’을 여는데, 10월의 주제를 이렇게 정하고, 종교학자인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를 초청했던 것이다. 불교계가 꼭 짚어야 할 주제라는 점과 평생을 종교학을 연구하고 강의한 노장의 강의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노장이라 하여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달리 말하지 않았다.“세월호 침몰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 규명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일차적으로 그 원인이 바로 우리 속에 있는 욕망, 욕심, 더 구체적으로 물질 제일주의, 성장 제일주의 같은 것이라고 하는데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입니다.…
결국 생명, 안전 같은 것에 대한 관심보다 무리를해서라도 수입을 극대화하려고 하는 욕심, 배금주의에서 나온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서 오 교수는“이런 사실을 볼 때 한국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기독교와 불교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한국 불교든 기독교든 몇몇 뜻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다가 지금까지 국민들의 정신건강이라든가 안녕이라는 대의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자기 교회, 자기 사찰의 성장에만 몰두해온 것이 사실입니다”라고 성장신화에 빠져 종교가 종교를 외면하는 종교계의 현실을 질타했다.
한국의 종교는 어떻게 해야 다시 종교로 돌아올 수 있나. 그것보다 먼저 돌아올 의지는 있는 것인가. 지금 종교의 주류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앞물이 뒷물에 밀려 떠밀려가듯이 흘러갈 것이 틀림없다. 세월호 참사를 지나오며 종교계에 앞물을 밀어내는 뒷물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역사의 법칙이다. 기독교의 초자연적 유일신관, 불교의 인과응보적 업설은 도전받고 있다는 것이 오 교수의 진단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종래까지 기독교가 일반적으로 유지해온 초자연적 유신론에서 제공하는 신관神觀으로는 대답이 곤란해집니다.”
“인과응보 같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이런 업사상이 과연 세월호에 희생된 어린 학생들의 비극을 설명하는 데 적절한 대답이 될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희생자의 가족이나 그것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나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오 교수는 특히 기독교의 초자연적 유신론과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인격체로서의 신을 변호하는‘신정론神正論’을‘불량품 신관’이라고 호되게 몰아쳤다.
오 교수는 새로운 흐름이 달라이 라마, 당나라 때의 종밀 스님, 암베드카르, 그리고 기독교계에서는 류영모와 유신론의 종말을 선언하고 범재신론凡在神論 주창자들에서 이미 나타났으며, 최근 주목받고 있다고 밝혔다. 달라이 라마에 대해서는“심리학, 신경과학, 임상과학 같은 분야의 연구 성과를 활
용하여 새로운 윤리적 근거로‘영성(Spirituality)’을 제시한다”면서“인간이라면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 한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 한 가지가 상호의존적 원칙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자연히우리 자신의 안녕이 다른 이들의 안녕과 직결됨을 직시할 수 있게 되고, 이렇게 될 때 결국 윤리적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영모에 대해서는“쌍둥이처럼 붙어다니던 동생이 19세의 젊은 나이로 죽는 것을 보고, 기복적인 기독교와 기독
교가 종래까지 무비판적으로 받들던 그런 신을 버렸다. 그의 신관이 바뀐 것이다. 이제 그의 신은 이른바‘없이 계신 이’가 된것”이라고 소개했다.
오 교수는‘세월호 앞에서 종교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표층종교에서 심층종교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심층종교는 그의 오랜 연구의 결과물로 늘 강조하는 주제인데, 표층종교와 심층종교는 5가지 기준에서 구분된다. 지금의 나, 이기적인 나, 불교용어로 하면 탐진치로 찌든 나를 위하여 애쓰는 종교는 표층종교다. 새로운 나, 참나,큰 나를 찾으려는, 즉 내 속에 있는 불성 또는신성을 찾으려 노력하는 종교가 심층종교다.
표층종교가‘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하다면, 심층종교는‘이해’나‘깨달음’을 강조한다. 표층종교가 절대자와 나를 분리된 두개의 독립된 개체로 보는데 반해, 심층종교는 그 절대자를 신이나 상징적으로 의인화했을 경우 그 신이 내 속에 계신다고 한다.
표층종교가 경전의 표층적인 뜻에 매달리는 종교라면, 심층종교는 경전의 속내, 더 깊은 뜻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표층종교가 대체적으로 자기 종교만이 오로지 유일한 진리라고 하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다면,심층종교는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세월호 앞에서 불교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할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