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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의 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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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스님의 세계 만행 29 - 원제스님 2014년 11월 393호
미국 만행 한달간 미국의 주요한 몇몇 도시들을 다녀보았지만, 게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워싱턴 D.C.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거주하는 백악관을 비롯해 여러 연방정부기관들과 대사관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고, 스미스소니언 협회에서 건립한 박물관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미국의 수도지요. 포토맥 강을 중간에 끼고 피에르 랑팡의 설계로 건설된 이 계획도시엔 링컨 기념관과 국회 의사당을 양끝으로 해서 백악관과 여러 박물관, 기념관들이 수목들과 함께 어우러져 도시 자체가 하나의 잘 가꾸어진 정원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해질녘이 되면 이 공원같은 도시 시내를 조깅하는 사람들이나 개를 끌고서 여유롭게 산책하는 사람들을 곧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강과 나무, 수풀들이 인간 문명의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어 평화로움을 스며내는 이 도시를 거닐면서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이 워싱턴 D.C.가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아무래도 제 개인적인 경험과도 관련된 이유가 큽니다. 출가 전까지 외국이라곤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제가 미국이라는 사회와 미국인을 부분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미군 부대에서였습니다. 저는 미군에서 카투사로 26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쳤는데 이러한 경험이 자연스레 미군에 대한 좀더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아무래도 미군과 관련된 뉴스에 좀 더 시선이 가고, 행여나 미군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좀 더 관심있게 보는 것은 실제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훈련한 경험과 기억 때문입니다.
미군과 밀접한 군사적 동맹관계를 유지한 한국이 직접적으로 그들의 도움을 받은 것은 물론 한국전쟁이었습니다.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 앞에는 바로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가 있습니다. 1985년, 실제 한국전에 참전했던 제25보병사단 출신 인사들이 기념비 건립을 위한 모임을 만들고, 1992년 기공식을 갖고 이듬해 4월 공사에 착공한 기념비입니다. 이 기념비에서 단연 눈길을 끈 것은 V자형으로 늘어선 19명의 군인 동상이었습니다. 육군·해군·해병·공군을 망라해 백인·흑인·히스패닉계 미국인이 인종별로 다양하게 구성된 이 동상들을 보면 마음이 자연 숙연해집니다. ‘FREEDOM IS NOT FREE’라는 문구와 함께 ‘우리 조국은 만나지도 알지도 못한 사람들의 나라를 수호하라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 이행한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글귀는 어지간해서는 동요치 않는 제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추운 겨울 한밤에 강원도의 어느 깊은 산속에 떨어져 극렬히 추운 밤을 보내고 난 뒤에 맞이한 그 시퍼런 새벽이 정말로 아름다웠다는, 이 기념소를 가이드해주는 한 백발 노병의 회고를 들었을 때에는 사실 눈물이 날 지경이기도 했고요. 저는 다시 한번 긴장과 함께 피곤이 역력해 보이는 그들의 동상 얼굴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뜨기 전, 한국의 자유를 지키다가 희생된 호국 장병들에게 감사와 함께 그들의 평안을 바라는 묵념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미국의 국방성인 펜타곤이었습니다. 사실 예전에 저에게도 펜타곤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는 했습니다. 미군에는 군의 기본 상식과 자신의 병과에 관련된 지식, 제식 등등을 평가하는 보드Board라는 경연대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대대에서 각 중대의 대표원들이 모여서 보드 경연을 하고, 그 대대에서 우승한 인원은 여단 대회에 나가고 여단에서 우승하면 사단, 군단까지 나가게 됩니다. 그리하여 미 8군에서 우승을 하게 된다면 미 8군 대표로서 펜타곤을 방문해 미국 국방부 장관 앞에서 보드 경연을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군생활에 특별한 열의를 보이지 않았던 저는 첫 경연에서 꼴찌를 면할 정도로만 보드를 마쳤습니다. 사실 보드 대회에서 우승하려면 30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의 보드 문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워야만 했습니다. 한글로 해도 쉬원찮은 판에 영어로 된 수많은 문장들을 그대로 외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반강제적으로 한번은 나가야 되는 보드 경연이었기에 그리 열의가 없었던 겁니다. 물론 저는 보드에서 떨어졌고 그때의 펜타곤은 먼나라 어떤 영화에서나 보던 곳으로 아득한 곳으로 그려질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펜타곤을 직접 방문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펜타곤 자체에서 운영하는 투어를 통해서입니다. 워싱턴 D.C.에 도착하기 한달 전에 저는 이미 투어 신청을 마쳤고, 투어 일주일 전 즈음하여 펜타곤으로부터 신분조사를 통과하여 투어에 참여해도 된다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펜타곤은 미국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연방정부기관이기에 까다로운 보안절차를 거치고 난 뒤에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방문객 센터에는 11시에 투어를 신청한 50여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 미국인이었고 저 하나만 한국인이었습니다. 투어를 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투어를 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나은 설명을 하기 위해서 투어를 진행하는 군인이 시종일관 뒷걸음질 하면서 사람들을 바라보며 안내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느 이동 지점이 되면 정확한 자리에서 회전을 해서 많은 훈련과 연습을 거쳤겠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투어를 통해서 안내하는 군인은 펜타곤의 역사와 건물에 대한 여러 사실들을 설명해줍니다. 그러면서 명예의 훈장 전당에도 들르고, 2차 세계대전 아시아 측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맥아더 장군의 기념관도 방문합니다. 아이들이 군인들에게 보내는 위문 편지와 그림들이 장식된 장소에도 들러보고, 해군의 본부 지역을 가서는 해군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총 8명의 미국 대통령 사진 앞도 지나갑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방문한 곳은 바로 911 테러 추모관이었습니다. 2001년 뉴욕의 세계 무역센터가 납치된 항공기로 인한 테러에 의해 붕괴될 때, 펜타곤도 항공기 테러를 당했습니다. 펜타곤 측에서 125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비행기에 탑승한 64명 전원이 사망하여, 모두 189명의 사상자가 생긴 테러였습니다. 추모관에서 테러로 희생된 한명 한명의 간략한 일대기가 쓰여진 커다란 책을 넘겨보고 난 뒤에, 저는 또다시 이들을 위해서 묵념을 합니다. 한국전쟁이나 911테러는 사실상 복잡한 국제 정치 관계의 여러 측면들을 내포한 사건인 것이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희생된 하나하나의 영혼들이 너무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