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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 주지 종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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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4년 11월 393호
종우 스님에겐 최근에야 핸드폰이 생겼다. 이십여 년 동안 불국선원에서 선원장으로 머물며 참선만 했으니 방에 있는 전화 한 대면 충분했단다. 그런데 이달부터 주지 소임을 맡게 되어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핸드폰을 갖게 됐다.
\"과학자들의 연구로 인해서 세상이 발전하니 모두가 박수 치며 좋다고 했는데 그것으로 인해서 지구가 병들어 가고 있어요.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다보니 정신은 점점 피폐해지고. 도덕이나 철학이나 종교가 더 필요한 시대인데 그것들은 자꾸 퇴보하고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에 혼이 빠져 있어요. 그러니 지구의 균형도 깨지고 자연의 조화도 깨지는 것이지요.\"
우리에겐 핸드폰이란 게 아예 없던 시절이 있다. 심지어는 동네에 전화가 한 대뿐이어서 그것으로 모두가 연락을 주고받던 시절이 있다. 그래도 그때는 지금보다 더 살만했던 것 같다. 비록 지금보다 편리하지는 않았어도 범죄도 자연재해도 많지 않았으며 모두가 어우러져 조화롭게 살 줄 알았으니.
물질만능의 이 시대에 종우 스님은 말씀하신다. 어떤 종교라고 할 것 없이 함께 병들어 가니 종교가 제 구실을 못 하고 있다고, 병들어 가는 이 사회를 선도할 능력을 가진 종교인들이 없다고.
\"성자들의 가르침은 밀려나고 이론만 범람하고 있어요. 불경이나 성경에 좋은 말씀들은 많지만 다들 실천하려는 의지가 없어요.\"
성직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사회인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실천이란 말씀이다. 본인이 실천해야 행복해지는 것이며 그럴 때에 그것이 행복의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청빈해야 할 것이란다.
\"모든 성자들의 가르침은 청빈하라는 거예요. 만약에 돈이 많아서 행복하다면 성자들도 돈을 벌려고 했겠지요. 그러나 수천 년 역사를 보면 성자와 도인의 공통점은 청빈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줘도 안 가져요. 물질적인 만족은 인간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알기도 어렵고 알아도 실천을 안 하니 문제인 것이지요. 나부터도 청빈과는 거리가 멀어요. 내가 부처님처럼 알몸으로 앉아 있는 건 아니니까. 아직은 미흡하지만 마음이 간절하기에 나는 실천할 거예요.\"
청빈하다는 것은 무조건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나무 밑에 혼자 앉아 있다고 해서 그것이 청빈은 아니란 말씀이다. 청빈하다는 것은 어디에 머물든 사리사욕이 없다는 말이다. 정치인이든 기업인이든 예술가든 종교인이든 제 자리에서 개인적인 욕심 한 점 없이 제 할 바를 다하는 것. 그렇게 청빈하기 위해서는 수행해야 한단다.
\"본래의 인간은 부처님과 같지만 사심과 탐욕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고통 속에서 살지요. 모든 재앙의 뿌리는 사심과 탐욕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그러니 참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참선을 하면서 살면 고통이 닥쳐도 그것이 탐욕으로부터 오는 것을 알기에 벗어날 수가 있단다. 가정에나 회사에나 그런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모두가 행복해진단다.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큰 행운이란다.
\"2500년 전에 나타나신 부처님이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엄청난 기쁨을 주고 있잖아요. 그분이 깨닫고 가르쳐주셔서 우리에겐 항상 희망이 있잖아요. 어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 해도 거기에서 벗어나 기쁨으로 가는 길이 있다는 걸 가르쳐주셨으니까. 그 가르침은 영원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 참선도 사심을 갖고 하면 백년을 해도 깨닫지 못한단다.
\"불성은 만들어 지는 게 아니에요. 탐욕이 사라지면 드러나는 것이지요. 태양이 구름에 가려져 있는 것처럼. 그런데 사심과 탐욕이라는 구름은 놔두고 태양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건 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나 탐욕이라는 구름을 걷는 게 도무지 쉬운 일이 아니다. 살면 살수록 도처에 장애가 있다. 가시밭길에 첩첩산중이다. 그러나 그것이 원래는 장애가 아닌 것을 내 스스로 마음을 내서 장애가 된 것이다. 그러니 수행을 하지 않으면 삶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란다.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짐승처럼 살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란다.
\"인간이 정신적인 수양을 외면하면 안 돼요. 그러나 그것도 사심으로 하면 안 돼요. 서양의 어떤 철학자가 그랬어요. \'한 가지도 갖지 않게 됐다. 하나도 갖지 않음에 난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니 나는 그 기쁨을 양식으로 삼노라\'. 그 사람은 불교에서 말하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에요.\"
종우 스님은 모든 성자들은 같은 말을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분들 가르침의 논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히 알면 결국은 다 같은 말이란 뜻이다. 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해석이 잘못되었을 뿐이란다.
\"너 자신을 깨닫고 믿으라고 한 것은 부처님만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어요. 그것은 예수님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란 얘기가 아니에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진실한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이지요.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어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자신을 보라는 것이지요. 결국 나를 발견하는 것이 모든 불행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란 얘기죠. 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스님은 스물세 살의 나이에 불교를 처음 접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탐구를 하며 대학에 다니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쓰신 수필집을 보게 되었다. 그 책을 읽은 그날 밤에 부처님을 따라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금강경, 유마경, 육조단경을 봤다. 다른 문학책이나 철학책을 봐도 그렇게 뛸 듯이 기쁜 적은 없었단다.
\"난 불교를 만나기 전부터 화두 참선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한 생각에 깊이 빠져 자나 깨나 누구와 대화를 하든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으니까. 인생이 무엇인지 탐구하던 게 화두가 된 것이지요.\"
군대에 다녀와서 서른한 살이 되던 해 가을에 무일푼으로 정읍의 고향집을 나섰다. 걸어서 송광사 거처 진주 하동 통도사 거쳐 불국사에 닿았다. 생각에 잠겨 먹지도 못하고 그렇게 한 달을 걸었으니 몸이 만신창이였다. 그 모습 그대로 지금 종우 스님이 앉아 있는 방의 끄트머리에 앉아 은사 스님이신 월산 스님을 처음 뵈었다. 스님을 뵙자마자 흥분해서 유마경 얘기를 마구 꺼내놓았다. 그러자 월산 스님은 다른 말은 일체 없이 객실에서 한두 달 쉬어가란 말씀만 하셨다. 그런 인연으로 종우 스님은 불국사에서 출가했다. 그리고 종우 스님을 받아주셨던 은사 스님은 97년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은사 스님이 계시던 방엔 거지꼴이던 한 청년이 스님이 되어 20년째 앉아 있다.
스님은 행자 생활을 끝내자마자 바로 불국선원에서 참선을 시작했다. 그러고는 여러 선원을 돌아다니다가 은사 스님의 청에 의해 87년도에 다시 돌아와 불국선원을 맡았다. 그 후로는 내내 이곳에서 참선만 했다.
\"선방에 오래 앉아 있는 건 자랑할 게 아니에요. 되레 부끄러운 것이지. 선방에 안 가고도 깨달은 이들이 많은데, 몇십 년 동안 선방에 앉아 있으니 낯을 못 들 정도로 창피한 일이지요.\"
스님은 수좌들한테 늘 말씀하신다. 집중할 수 있도록 번잡함을 벗어나 선방에 앉는 것일 뿐, 앉는 데에 치중하지 말라고. 선방을 특별한 것처럼 여기지 말라고. 그런 사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도는 커녕 기쁨도 얻을 수가 없다고, 삶의 노예일 뿐이라고.
\"도인은 천지를 가지는 것이기에 항상 부족함이 없고 장애됨이 없어요. 마음이 허공과 같아서 칼로 칠 수도 없고 뭐라고 칭찬 할 수도 없어요. 선방에 앉아서 최후에 도달해야 할 것은 그런 부처님의 세계인 것이지요.\"
종우 스님은 해제 결제 상관없이 늘 참선을 하신다. 주지 소임을 보는 것도 정진하는 데에 방해되지 않는단다. 오래도록 선원장을 하면서도 전혀 장애되는 것이 없었단다. 그것은 모든 일을 사심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서든 그저 수행자이기 때문이다.
\"바른 수행은 나와 곧 남을 위한 것입니다. 수행자로써의 구실을 잘해서 만약에 도인이 된다면 소털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얼마나 많은 기쁨과 편안함을 주겠어요. 그렇기에 수행이야말로 가장 타인을 위한 것이지요. 이것은 진실이에요.\"
그렇기에 종우 스님은 종교가 제 구실을 잘 해주기만 하면 그 힘은 대단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 파장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교가 그렇게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를 스님은 바란다. 그래서 수행자들이 모두 사심을 버리고 참선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옅은 한 마디를 뱉어내신다.
\"나도 이론만 잘 알고 실제로는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양심이 있어서 가만히 있습니다.\"
어느덧 선원에도 가을 저녁의 어스름이 깃든다. 붉은 감들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밑을, 스님은 어제도 전생에도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걸어가신다. 그러니 이 도량에서 정진 중인 수행자의 뒷모습만 보아도 그 허공과 같은 걸음만 보아도 우리에겐 얼마나 큰 기쁨의 양식인 것인지. 스님의 수행만큼이나 도량의 가을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