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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 상하이(老上海)’ 노스텔지어, 상하이 신티엔띠(新天地)와 둬룬루(多倫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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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오해련┃중국 상해 거주 2014년 11월 393호
왕자웨이의 영화 <화양연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연배우인 장만위가 입은 화려한 치파오에 눈길이 갔을 것입니다. 상하이 출신으로 홍콩에 이주하여 사무직 여성으로 살아가는 여주인공은 시종일관 침묵하며 가정사의 불행을 견뎌내고 있는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화려한 무늬로 수놓인 치파오가 주인공 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원래 만주족의 전통 복장이었던 치파오는 1920년대 상하이에서 현대 재봉기술을 응용하여 타이트한 원피스로 개량되었고, 이후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유행하며 현대 중국 여성들의 대표적인 복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치파오는 현대 도시 문명의 빛으로 반짝이던 1930년대 상하이, 즉 ‘라오 상하이(老上海)’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일종의 아이콘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1930년대 상하이의 번영, 신중국 수립 이후 상하이의 몰락, 현대 상하이의 비약적 발전. 이러한 상하이의 역사와 치파오, 라오 상하이 노스텔지어는 역사적 맥락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1949년 신중국이 수립된 후 상하이는 번영하던 모습을 상실하고 수도 베이징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입장에서는 서구식 상업과 퇴폐의 상징인 상하이가 신중국의 이념과는 맞지 않은 공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상하이 출신의 상업 및 문화적 엘리트들은 홍콩으로 이주하였고 치파오 역시 상하이의 몰락과 함께 대륙에서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치파오는 사실 만주족 의상에서 변형된 것이나, 국민혁명이 청조 체제를 전복한 결과 등장한 의복으로, 중국 현대화 과정의 산물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즉 청조 귀족 여성의 의상이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여성의 ‘국민복’으로 개조된 것이며, 중국현대사의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중국을 상징하는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중국의 성립 이후 치파오는 인민복으로 대체되어 대륙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치파오가 겪은 이러한 역정은 현대에 들어서 ‘라오 상하이’를 연상시키는 중요한 상징으로서 자리 잡으며, 상하이인들에게 화려했던 추억을 환기시킵니다.
상하이의 소품가게나 기념품가게에서는 1930년대를 추억하는 일명 ‘라오 상하이(老上海)’ 풍의 엽서, 생활소품, 포스터가 넘쳐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와 문학계에서도 ‘라오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라오 상하이‘ 노스텔지어는 현대 상하이의 실제 공간에 구현되기도 합니다. 1930년대 서민들의 거주지였던 석고문의 내부를 바꾸어 고급 소비 공간으로 탄생한 신티엔띠(新天地), 그리고 1930년대 상하이를 재현해놓은 둬룬루(多倫路)가 바로 그것입니다. 상하이인들이 이런 공간을 통해 복원하려는 모습은 국제적인 메트로폴리스로서 유럽의 문화 도시 파리와 경쟁하던 3, 40년대 ’번영‘한 상하이의 모습일 것입니다.
2001년 생겨난 신티엔띠는 중국적인 전통 건축물에 서양식 레스토랑, 바, 커피숍이 들어선 상업지구입니다. 우아하고 고급스런 느낌을 간직한 이곳은 수많은 외국인들과 부유한 중국인들, 치파오 차림으로 데이트를 즐기는 상하이 여성들로 북적이고 있어 마치 번영했던 ‘라오 상하이’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전 일본의 조계지였던 둬룬루는 상하이의 작은 길로,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을 기리는 공원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길이는 겨우 0.8km 정도에 불과하고 너비도 좁아 지도에서 찾기도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은 중국 근대 문학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공간입니다. 이곳에는 중국 예술대학, 예술연극단 등이 위치하여 저명한 문학가들의 중요한 문화적 장소가 되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명 문화 인사들의 고택과 성당 등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이 길을 구성하고 있어 “상하이의 백 년은 둬룬이라는 작은 길에서 볼 수 있다.”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과거 공간을 탈바꿈하며 태어난 신티엔띠와 둬룬루는 상하이인들에게 ‘라오 상하이’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만, 과거를 그대로 복제하기 보다는 새롭게 창조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라는 시간을 낭만적인 공간으로 탄생시키고 여기에 심미적 가치까지 부여한 것입니다. 신중국 시기 동안 상하이에서 금기되었던 화려한 ‘라오 상하이’는, 현대에 와서 순수의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사실 서구의 식민지 역사로 얼룩졌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라오 상하이’는 포스터 속 치파오를 입은 여성의 미소처럼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것으로 추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