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는 사상의 다양화가 용인된 것이 원인이 돼 다원적多元的으로 발생했다. 대승불교의 기원을 단일 그룹이나 단일부파에서 찾는 것은 불합리하다. ”율장연구와 아비달마 불교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일본 하나조노(花園)대학 사사키 시즈카(佐佐木閑) 교수는 이같이 주장하고, 따라서 처음부터 단일기원을 상정하고 대승불교의 기원문제를 연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해인사승가대학 초청으로 해인사를 찾은 사사키 교수는 10월 4일 오전 7시 보경당에서 해인사승가대학 원철 학장스님, 율원장 서봉 스님을 비롯, 승가대학 학인스님, 율원 스님 등 1백여명의 대중스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승불교의 기원에 관한 제문제’를 주제로 강연했다. 사회는 해인사승가대학 종묵 교수사스님, 통역은 해인사 강원출신으로 하나조노대학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법장 스님이 맡았다. 이날 강연에서 사사키 교수는 “대승경전이 부처님의 직설이라는 설과 대승불교가 재가자 집단 혹은 대중부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는 단일기원론은 이미 학계에서 설득력을 잃었다”면서 “대승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에 불교승단 내부로부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 대승불교는 중국 후한시대에 실크로드를 통해 전래된 이후 1700여년 동안 대승경전이 부처님께서 직접 설한 불설佛說이라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이런 흔들림 없는 믿음은 그러나 18세기 중엽 일본의 한 천재 불교학자에 의해 최초로 부정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대장경의 판목인쇄에 종사했던 도미나가 나카모토(富永仲基, 1715~1746)는 32세에 요절했지만, 대승불교권에 엄청난 회오리를 몰고 올 파격적 내용의 주장을 그의 저서인 《출정후어出定後語》에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핵심 주장은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이다. “대승경전은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경전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만들어진 위경僞經”이라는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의 불교에 대한 다양한 연구성과가 들어오고, 남방의 상좌부불교를 직접 접하게 되면서 일본학자들 사이에 도미나가의 주장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이에 따라 ‘대승경전 비불설’은 학계에서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되지 않게 되었지만 더 복잡한 문제를 대승불교권에 남겨 놓았다. 역사적 진실과 지금까지 믿어온 신앙체계에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면서 큰 혼란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기원과 대승경전 성립문제는 불교학자들 사이에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게 됐다.
사실 도미나가의 대승비불설이 제기되기 전에는 적어도 대승불교권인 동아시아에서는 이런 논의 자체가 있을 수 없었다. 대승경전에 대해 부처님의 직설直說이라는 데 의문을 갖는 사람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미나가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진 이후에 대승불교의 기원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지금까지 크게 봐서 세 가지 입장이 제기돼 왔다. 1968년 히라카와설의 등장을 기준으로 해서 이전의 ‘대중부 기원설’과 히라카와 교수의 ‘재가자 기원설’ 그리고 히라카와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1985년쯤 서구와 일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된 ‘불교 승단 내부의 비구 관여설’이 그것이다.
도쿄(東京)대 교수를 역임한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 1915~2002)는 1968년 ‘초기 대승불교의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대승불교 대중부 기원설’을 부정하고 철저한 논증을 통해 전혀 새로운 견해를 내세웠다. 이른바 ‘재가자 기원설’이 그것이다. 그는 “일반 재가자들이 불탑에 모여 생활하면서 대승경전을 만들고 대승불교 운동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히라카와 교수의 이러한 입장은 일본에서는 통설이 되었고 해외학계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대승불교의 성립에는 처음부터 승가 속에서 지내던 비구들이 크게 관여하였다”면서 히라카와 교수의 ‘불탑재가자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사사키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대승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의 불교 승단 내부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히라카와설이 주장하는 재가자집단을 기원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고 역설하고 이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사키 교수는 그러나 “히라카와설은 95%가 맞는 이론”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다만 “대승불교를 만든 사람들은 전부 재가자이다”라는 견해는 분명히 잘못됐다고 못을 박았다.
사사키 교수는 율장의 변화과정을 추적해본 결과 대승불교는 아쇼카왕 시절 파승破僧에 대한 개념에 변화가 생기면서 출현했다고 밝혔다. 즉 이전까지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다른 수행을 하면 파승을 했으나 이때부터 포살 참석여부로 파승이 결정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단내부에 다른 가르침이 용인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부파가 생겨났다는 얘기다. 대승경전은 이런 분위기에서 씌어졌고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대승불교 운동으로 발전했다는 설명이다.
대승불교의 기원에 대한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해명돼야 할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대승경전이 어떤 경로를 통해 누구에 의해 제작되었는지에 대한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사사키 교수는 향후 보다 진전된 연구를 위해서는 히라카와 교수의 연구성과를 면밀히 재검토하고, 대승경전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며, 불설-비불설론에 대한 연구 및 대승발생과 동시대에 제작된 자료 즉 설일체유부의 아비달마와 팔리어 주석문헌의 연구가 긴요하다고 제안했다.
사사키 교수는 특히 학자나 종교인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면서 우리가 말하는 것은 진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 신앙과 괴리된 부분이 있다고 해서 합리적이지 않은 부분을 종교적 이유로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앙이나 교단 옹호를 위해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종교학적인 불교학’은 불교학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했다.
한편 사사키 교수를 비롯한 일행 7명은 개천절인 10월 3일 해인사승가대학 종묵교수사스님의 따뜻한 영접을 받으며 오후 1시 30분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오후 4시30분 해인사에 도착한 사사키 교수 일행은 우선 대적광전에 들러 참배하고 곧바로 장경각으로 이동, 700여년의 세월을 버텨온 팔만대장경을 참관했다. 특히 팔만대장경보존연구원의 배려로 대열반경이 판각된 목판 한 개를 꺼내들고 불교학자로서 감회가 남다른 듯 꼼꼼히 살펴본 뒤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전체 일정은 원창 학감 스님이 맡아 진행했다. 사전에 작성된 매뉴얼에 따른 세심하고 꼼꼼한 배려로 사사키 교수 일행은 작은 불편함도 느낄 수 없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튿날 사사키 교수는 오전 7시 보경당에서 ‘대승불교의 기원에 관한 제문제’를 주제로 강연한 뒤 해인사 선해 주지스님을 접견하고 담소를 나누었다. 이날 접견에는 향적 대한불교 조계종 종회의장 스님, 해인사승가대학 원철 학장스님, 해인율원 율원장 서봉스님 등이 배석했다. 이 자리에서 선해 주지스님이 “해인사에서 와서 불편한 점은 없었느냐”고 묻자 사사키 교수는 “불편하기보다 산의 정기를 받아 마음 속까지 깨끗해지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어서 대단히 좋다” 답했다. 주지스님 접견 후 사사키 교수 일행은 해인사 승가대학 교수사스님들과 차담을 나누면서 석별의 정을 나눈 뒤 다음 행선지인 운문사로 향했다.
■ 사사키 교수는 누구인가?(2)
사사키 시즈카(佐佐木閑)교수는 1956년생으로 교토(京都)대에서 공업화학을 전공했다. 전공을 바꿔 다시 교토대 문학부 철학과에서 불교학을 공부한 그는 동 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사사키 교수는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불교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하나조노(花園) 대학 교수로서 문학연구과 과장으로 재직중이다. 1992년 일본 인도학 불교학회상과 2003년 스즈키 학술재단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출가란 무엇인가> <인도 불교 변이론-왜 불교는 다양한가?> <생물학자와 불교학자, 7개의 대론> <매일매일이 수행-현대인을 위한 불교의 100가지 이야기> <붓다와 아인슈타인> 등이 있다. 번역서로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의<대승불교 개론>등이 있으며 그 외 다수의 논문들이 있다.
사사키 교수의 이번 해인사 방문은 2번째다. 10년 전인 지난 2004년 해인사를 찾은 적이 있다. 그때는 율원에서 3일간 율장을 강의했다. 이번 해인사를 다시 찾은 소감을 묻자 사사키 교수는 “10년전에 비해 약간 달라진 모습이지만 전체적인 가람 분위기는 변한 것이 없어 너무 좋다”고 밝혔다. 앞으로 관심 있는 분야와 연구계획을 묻자 “옛날부터 지금까지 율장에 관심이 많았다”고 전제하고 “앞으로 꿈이 있다면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율장을 깊이 있게 연구해 보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