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어둠과 빛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유마의 방 - 박종훈 2014년 11월 393호
다섯 살 때였다. 버스 정거장에서 내려 고모님댁으로 가는 동안 고모님께서 가르쳐 주신 구구단을 다 외웠다고 고모님의 자랑이 대단하였고 나도 우쭐거렸다. 어릴때부터 나름 똑똑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가족을 실망시키는 일은 별로 없었다. 시골 학교였지만
초등학교 때 1등을 놓친 적도 없었다. 그리고 큰 도시였던 마산의 중학교에 다닐 때도 1등을 하거나 그 언저리를 맴돌았으니 공부를 잘 하였고, 나름대로 영리하다는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그런데 명문이었던 마산고등학교에 진학한 직후 나의 자랑은 곧바로 수치스러움으로 바뀌고 말았다. 첫 시험에서 나는 꼴찌에 가까운, 부끄러운 성적표를 받고 만 것이다. 돌이켜보면 모두 내로라하는 학생들만 모인 곳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지만 그 때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고, 공부를 멀리 하는 것으로 그 부끄러움에서 벗어나려 했다. 나는 공부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그 무렵 친구를 따라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듬해 불교학생회를 만들었지만 그 때도 제법 많은 학생들이 몰려와 법회도 보고, 경전도 읽고, 독경도 하면서 절 생활에 익숙해 갔다. 주지 스님께서 나를 각별히 아껴 주셨기에 상좌나 다름없이 곁에 머무르면서 새로운 세계에 푹 빠졌다. 절에 다니는 바람에 공부가 멀어진 것도 아니고, 성적에 대한 절망의 보상으로 절을 다닌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절 생활은 평화롭고 즐거웠으며, 공부로 남들의 부러움을 샀던 내가 형편없이 추락한 것에 대해서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비록 첫 성적이 그랬다고 해도 금방 만회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학교 공부보다 더 수승한 공부가 따로 있다는 데서 말미암은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이기도 했지만, 정말 한 소식만 하면 되는 엄청난 도리를 어렴풋이 짐작해 가며 불교에 조금씩 침잠해 갔다.
그리고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교실에 책을 그대로 두고 그 한 소식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났다. 나로서는 입산 출가였지만, 가족들에게는 가출이었던 그 일, 두 달 만에 돌아오고 말았지만 내 인생에 끼친 영향은 결코 적지 않은 일대 사건이었다. 행자 노릇을 하며 염불과 독경도 부지런히 하였고, 틈을 내어 참선 흉내도 내면서 이른바 수행자의 삶을 힘들게 이어 갔다. 그 때 나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번뇌가 없을 수 없었다. 깨달음을 얻는 것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 사이의 갈등으로 적막한 산내 암자의 밤들을 하얗게 밝혔다.
‘고뇌의 이 불길 속에서 오히려 무르익어감이여, 내 삶은 더없이 충만하여라. / 고뇌의 이 긴 밤을 지나면 그 영혼에 새벽빛 밝아 오리라.’
법구경의 말씀처럼 내 어둠을 걷고 환한 빛이 찾아올 것이라며 아려 오는 마음을 달랬다. 비록 돌아오고 말았지만, 마음속에 꺼지지 않을 등불 하나는 달게 되었다.
그 등불의 빛은 빛깔을 달리 하며 내가 가야 할 길을 비추어 주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바로 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했을 때, 학교에는 잘못된 관행이 너무 많았다.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릇된 견해에 빠져 있는 것이니 그는 결국 어둠의 길을 가게 된다’는 말씀을 상기하며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 길은 만만치 않았다. 내가 전교조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금 전교조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곱지만은 않지만, 그 때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많은 지지도 받았다. 바른 교육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이다.
20년을 보낸 학교를 뛰쳐나와 교육위원 출마를 결심했을 때 나는 또 등불을 보았다. 학교에서 도서관 담당 교사로 일하는 동안, 도서관과 도서관에서의 수업이 학생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고, 적어도 우리 경남의 모든 학교가 변하면 좋겠다는 꿈을 안고 무작정 학교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8년 동안 열심히 뛰어다녔고, 학교가 달라지는 데 일조하기도 했지만, 교육위원으로서의 한계를 다시 느꼈다. 교육감이 되지 않고는 이 일을 제대로 이루어내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출마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좋게 말하여 자유인이 되었다. 속된 말로 표현하면 백수가 되었다. 살던 집을 팔아 빚잔치를 하고, 시골에 오두막을 지어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모자라 낙선된 것이지만 이 참담한 생활을 참아내기 어려웠다. 장작을 패는 일로 마음 속 비애와 분노를 다스리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끝없는 번뇌가 이어졌다. 마음공부를 해 보았던 내가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관조하면 내 마음속 등불은 꺼져 버린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날을 보낼 때 나는 가물거리는 불빛을 보았다. 그 불을 꺼트리고 있는 바람은 내가 일렁인 바람임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사랑으로 분노를 다스려라 / 선으로 악을 다스려라
자선으로 탐욕을 다스려라 / 그리고 진실을 통해 거짓을 다스려라

내 생활에는 어둠이 드리웠지만 마음은 결코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환희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명예를 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떳떳했다. 가난했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나를 비추는 등불에 심지를 돋우어 남을 비춰 주어야 했다. 그렇게 내 영혼에 새벽빛이 밝아옴을 볼 수 있었다.

모두가 놀라는 결과가 나타났다. 내가 교육감으로 당선된 것이다. 지지한 분들도 놀랐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놀랐다. 나도 놀랐다. 간절한 기도의 힘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기도가 소원에서 원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더 큰 원력을 세워야 한다. 그것은 보살행이다. 풀죽은 교실을 살리고 시들어 가는 교육을 살려야 한다. 내가 어둠 속에서 빛을 잃지 않았듯 학교의 등불을 타오르게 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가피를 회향하는 길이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 나는 쉬지 않고 지혜와 자비심을 닦아야 하리라. 산내 암자의 결코 짧지 않았던 그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