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학이다. 하안거 동안 힘들었지만 방학을 위안으로 삼고 참아왔다. 설렌다. 밖에 나가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머릿속에 하고 싶은 것 천지였다. 점심 공양 후 나갈 채비를 하고 스님들과 인사를 나눈 뒤 해인사 경내를 빠져나왔다.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지 세상이 신기해보이기도 하고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나왔다는게 좋았다. 가끔 젊은 보살님들이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눈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러면 안 되는데 내가 아직은 출가 수행자로서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빨리 수행을 잘 닦아서 보살님들이 지나가도 눈동자가 흔들림 없는 수행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방학엔 은사스님 절에 가기 전에 잠시 도반스님들끼리 거창포교당에 들렀다. 들러서 우리가 부산자갈치 시장에서 탁발해서 모은돈을 주지스님에게 좋은데 쓰시라고 전달해주고왔다.
그렇게 버스타고 택시타고 저녁이 되어서 우리 절(운부암)에 도착하니 벌써 9시가 넘어있었다. 다음날 아침 해인사 치문반에서 함께 생활 중인 나의 사형, 봉림 스님과 함께 은사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다녀왔습니다, 스님.” 은사스님께서는 우리가 해인강원의 하안거를 무사히 마치고 오니 내심 좋아하시는 눈치였다. 그렇게 앉아서 그동안 못 다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성적표를 보여드렸다. 은사스님께 따끔하게 혼이 났다. 성적이 이게 뭐냐며 호통하셨고 나는 할 말이 없어 가만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머리 길어서도 공부 안하고 머리를 깎아도 공부를 안 하니 반성을 좀 해야될 것 같다.
혼이 나고 좀 쉬었다가 운력을 시작했다. 우리 절은 은사스님께서 운력을 좋아하셔서 운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나도 행자시절부터 운력을 많이 해서 지금은 경전 공부보다 운력을 수행으로 삼고 싶은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운력이 끝나고 차담을 먹으며 사형스님들과 행자님들과 함께 얘기를 나눴다. 사형스님과 얘기하면 너무 좋다. 배울 점도 많고 말씀도 잘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마음 속 고민을 털어놓게 되고 그에 대한 답변도 잘해주신다. 그리고 드디어 생긴 우리 사제 행자님도 봤다. 나이는 16살이라 나보다 더 어려 조금은 친숙했다. ‘나도 이제 막내에서 벗어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좋았지만 한편으론 이제 사형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에 모범을 보여야 하니 조금은 부담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5년째 우리 절에서 행자생활을 하고 있는 행자님도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나를 보고 웃으며 ‘잘 다녀왔습니까’ 하는데……. 우리 행자님은 정말 착하고 순수한 것 같다. 은사스님 절에 온 걸 정말 잘한 것 같다. 그렇게 매일 운력하고 좀 쉬고 운력하고 쉬고 특별한 일 없이 방학을 보낸 것 같다.
딱 한번 속가 할머니를 뵈러 나간 적이 있었다. 집안 사정이 있어 할머니를 이번에 처음 본다. 스님이 된 나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실 지 조마조마 했다. 눈이 조금 어두우셔서 나를 잘 알아보시진 못했지만 내 손을 만지며 한참을 우셨다. 조금 멍했다. 할머니는 나를 많이 보고 싶어 하셨지만 나는 기억이 없어 할머니를 봐도 할머니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절에 오니 계속 속가 생각이 나서 운력을 조금 ‘빡세게’ 했다. 조금이나마 진정이 되었다. 잡념을 뿌리째 뽑는 것은 힘든 것 같다. 솔직히 방학 때 어디 만행이나 여행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운력을 통해 복과 공덕을 지을 수 있어 그것으로 족하다.
이제 곧 방학이 끝난다. 짐을 다 싸고 갈 준비를 한다. 은사스님께 인사드리고 사형스님, 행자님들과 인사하고 해인사로 들어간다. 발걸음이 무겁지만 해인사에 들어온 이상 내 집이라 생각하고 살아야겠다. 그리고 해인강원하면 내 이름이 나올 수 있게끔 전설이 될 수 있도록 내가 한발 더 앞장서 생활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