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날 일주문에서 등 달기 울력이 있다. 보살수계대법회를 앞둔 단장이다. 울력마다 참여하시도공인 남편을 따라 가야산골 단칸방에서 시작된 결혼생활이었다. 갓난쟁이 아이 둘을 두고서도 주어지거나 보이는 일은 무엇이든지 했다. 그 심성은 아마도 대를 이어 전해진 덕분이라 했다.
7남매의 셋째딸이었다. 낳고 보니 딸이어서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시는 할머님의 눈치를 보며 가시방석에 계셔야 했다. 그런 딸에게 3일 동안 젖도 물리지 않았다. 지금도 두고두고 마음 아파하시는 대목이다. 그 며칠 후 집에 스님께서 탁발을 오셨다. 어머님은 벙어리 냉가슴 앓았을 그 고민을 스님께 풀었다. 다음에는 아들을 꼭 낳아야 한다며 셋째의 작명을 부탁하셨다. 그래서받은 이름은 볕‘경’에 아름다울‘미’. 어머님의 소원은 다섯 번의 출산에서야 이뤄질 수 있었다. 해 떴는데 일어나지 않거나, 마당 잡초하나라도 보이면 불호령이 떨어졌던 할머님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쉽지 않았지만 견뎌내야 할 것 같았다. 어린마음이지만 이것도 못해내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돌아보니‘인내심’은 할머니께서 전해주신 귀중한 유산 같았다. 할머니도 그런 손녀가 기특하셨던지 시키지 않아도 혼자서 알아서 했다며 훗날에서야 말씀하셨다.
해야 할 일이 눈에 보이면 해야 했고, 남들이 싫어하는 일은 왠지 싫지 않아서 했다. 하루하루를 그런 마음으로 일구어 살아갔다. 동네 지인의 소개였다. 2002년여름 해인사 성보박물관이 개관 한지 한 달 후, 카페테리아의 일을 부탁받았다. 주어진 시간은 반나절. 즐기지도 않고 생소했던 커피를 다음 날이면 내릴 수 있어야 했다. 늦은 밤까지 커피공부는 이어졌다.
하기 싫은 마음보다는 주어진 일이니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외우고 썼다.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박물관 내에서도 일이 보여 좇아가다보니 영역도 넓어지게 되었다. 갑자기 그만두고 나간 자리를 메워 하다 보니 두 세 사람 몫을 해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2005년 겨울 불연각에서 해인사에서의 두 번째 일이 주어졌다. 세 번의 이직으로 지금까지 이어졌다.
할 일이 눈에 보이는 것은 비단 일뿐만이 아니었다. 사람과 동물에게까지 그 마음이 전해졌다. 타지
에서 온 직원들에게는 엄마 밥이 생각날 듯해서 집에서 준비해 온 반찬을 내주시거나 집으로 초대해 따듯한 밥 지어 대접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때 같이 일했던 직원들에게서도 아직도 연락이 오곤 한다. 해인사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인연이 중하니 잘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하신다. 사중에 사는 들고양이들의 울음소리도 예사로이 들리지 않아서 빵부스러기라도 갖다놓아주어야 마음이 편하다. 저 동물이 전생에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까지 닿으면 쉽게 지나칠 수 없다고 했다.
해인사에 바람이 있다고 하셨다. 직원회의 시간이 단 30분이라도 소중하게 쓰여 졌으면 하셨다. 몇
해 전 일주일마다 국장스님들께서 번갈아 법문도 해주셨다. 당시 호법국장 스님께서“향을 감싼 종이
에는 향의 향기가 나지만 생선을 싼 종이에는 비린내가 난다”는 이 법문이 한동안 마음 깊이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법문시간은 안타깝게도 몇 차례 지속되다가 그쳤다. 이후에도 뭔가 시작하다가 단발적으로 그쳐버리기를 반복했다. 또한 직원교육 명목으로 사찰의 기본적인 소양에 대한 교육 또한 이뤄지길 바란다. 간혹“절에서 일하면서 이것도 몰라요?”라고 되묻는 불자님과 방문객들에게 부끄러움과 함께 미안함이 앞선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억에 해인사가 한번 일해보고 싶은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일 있으면 하고 나서야 공양을 하시는 터라 함께 홍보관에 재직하시는 김윤희씨도 힘들어 하신다고 하셨다. 매사 원칙으로 일관하기는 쉽지 않으실 텐데도 일하는 동안이 즐겁고 그 시간을 좋아하신다며 빙긋 미소 지으신다. 일에서는 우직한 태도로 밀어부치시는 통에 가족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 수고로움의 결과는 있는 것 같다며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신다.
훤칠하고 반듯하게 장성한 아들과 딸이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자식은 잘 두었다며 칭찬들을때 보람이 크단다. 자녀들에게서 어머니의 그런 면모를 마음 깊이 존경하며 그 수혜를 받으며 자란 것처럼 느껴졌다. 일을 보고도 지나칠 수 없는 불편한 마음을 그러한 노력으로 마음을 편하게 바꿔서 인지 안색도 편안하고 맑아 보인다. 마지막까지도“있는 그대로 써 주세요!”라며 부탁 하신다.
드러나길 싫어하시는 성품에도 인터뷰 요청을 수락해 주신 것은 일에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붉디붉을 가야산. 간신히 매달린 잎에 바람이 훑고 지난다. 붉은 꽃비처럼 잎사귀들이 내린다. 나무
의 맨얼굴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쉼 없는 비질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