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봄 즈음하여 장 코르미에가 쓴 <체 게바라 평전>이 대학의 캠퍼스 안에서 종종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책이 유난히 눈에 띈 것은 아무래도 강렬한 붉은 색의 두터운 양장본 책 겉면 위에 어디 멀리를 내다보고 있는 듯한 멋진 외양을 한 체 게바라의 얼굴이 인상적으로 그려진 탓이었던 듯 합니다. 대학시절 독서에 한창 열을 올렸던 저였지만 이상하게도 저는 이 책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봄은 도시락을 챙겨서 어디 소풍이라도 가고 싶을 만큼 따뜻하기도 했고, 캠퍼스 안은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젊은이들이 가지는 이십대의 고민과 사색들이 함께 어우러진 그런 안온한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 일상이 평화롭게 자리한 시대에 그토록 강렬한 붉은색의 책을 손에 쥐고 캠퍼스를 휘젓는 몇몇 친구들을 보며, 혁명이란 어떻게 보면 모든 이들이 꿈꾸는 고급화되고 낭만적인 일탈처럼 보였다는 편견 때문에라도 그 당시에 저는 체게바라를 만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2014년 8월의 한여름에 들어간 쿠바. 시가, 헤밍웨이와 함께 함께 쿠바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체 게바라. 그러나 이번 만행에서도 체 게바라는 저에게 큰 관심사항은 아니었습니다. 체 게바라 평전을 여태껏 읽어보지도 않았고 그의 티쳐츠를 산 것도 아니었으며, 그가 게릴라로 활동한 흔적이 남아있는 도시들을 탐방한 것도 아닙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쿠바의 이미지란 2001년에 상영된 빔 벤더슨의 다큐멘터리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과 함께 이 영화를 보고 쿠바를 실제 여행했던 친구 성감독의 후일담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기왕에 쿠 바에 오니 이를 좀 더 알아야겠다는 의무감에서라도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한번 더 보았고, 숙소 거실의 흔들의자에 앉아서 아침나절에 <노인과 바다>를 완독했으며, 인터넷에서 체게바라의 일대기 요약본을 읽어나갔습니다.
체 게바라의 삶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체. 그는 어렸을 때 얻은 극심한 폐렴 때문에 평생 천식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스물 셋의 나이에 체는 친구 알베르토와 함께 남미를 여행하며 빈곤과 기아, 억압에 허덕이고 있는 남미의 민중의 실상을 목도하고 난 뒤 혁명가로 살기로 결심합니다. 피델 카스트로와 만나며 그는 쿠바 해방 운동을 함께 했습니다. 1958년 체는 자신이 지휘하던 게릴라를 이끌고 쿠바의 산타클라라에서 승리하는 등의 성과를 이루어 1959년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 혁명에 성공합니다. 이후 그는 쿠바 내에서 산업부 장관 및 국립은행 총재 등의 요직을 거치며 안정적 삶을 영위할 수도 있었지만, 1965년 ‘쿠바에서 나의 일은 모두 끝났다’는 말을 남기고 아프리카 콩고로, 남미 볼리비아로 또 다른 혁명을 위해 나섭니다. 그러나 콩고나 볼리비아에서의 혁명은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그는 1967년 미군의 지원을 받는 볼리비아 독재정권의 정부군에 체포되어, 그의 나이 39세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한 인물에 대한 정의는 실질적 업적이 이뤄진 당대보다는 후대의 평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향이 강한데, 체가 특히 그렇습니다. 체가 시대와 역사의 조명을 받은 것은 그가 죽고난 뒤 쿠바 카스트로 정권에 의해서입니다. 쿠바 내에서 체의 자서전이 총 15종으로 출간된 이래로 그는 혁명적 인간의 완성형으로 전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가 혁명군을 이끌며 남긴 말들은 어록이 되어 지금에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고,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체를 가리켜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는 극찬을 하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체와 관련되어 발행된 서적이 총 60여권이나 된다고 하니 이는 한국 역사의 여러 독립투사 자서전을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14년 전과는 다소 다르더라도 제가 여전히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과연 체의 삶을, 그의 뜻을, 그의 실천을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 구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과격한 혁명의 기운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쿠바. 미국의 국가마저도 아바나의 길거리 펍에서 흥겹게 울려퍼지고 있는 지금의 형국에 체 게바라는 빨간 티셔츠나 냉장고 자석위의 사진을 통해 지금은 가뭇없는 혁명 시대의 낭만적 상징과 동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비록 체의 자서전마저도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제게는 그가 현실에서 보여준 치열한 정신과 실천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보입니다. 체의 흔적을 찾아오는 여러 젊은이들에게 그럼 체가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습니까, 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청년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물론 체의 혁명 정신이 곧장 우리 개개인의 삶에 어떤 실체적인 결과로 드러나야만 한다는 것이 섣부른 기대며 욕심일 수 있기에, 우리는 부단히 그의 정신에 감화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그다지 잘못된 대답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저는 체가 온전히 받아들여지려면 그의 투철한 혁명 정신이 우리의 삶에 실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팔뚝 위에 체의 얼굴을 문신으로 새기는 것이나, 사회 정의를 위한 여러 단체들의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클릭하는 것은 온전한 의미의 실천이 되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우선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면밀히 파악하여 어떻게 하면 자신을 둘러싼 그 어떤 것에서 혹은 그 어떤 부조리한 상황에서 진정한 해방을 이루어낼 수 있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뒤에 비록 체와 같이 목숨마저도 내던질 수 있는 투철한 정신만큼은 아니더라도 ‘혁명은 다 익어 떨어지는 사과가 아니다. 떨어뜨리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마따나 현실에서의 실천은 당위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괜한 염려일수도 있겠지만 저에게 그럼 스님은 어떤 혁명적 삶을 살고 계십니까, 라는 질문이 들어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아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저 역시도 해방과 혁명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저의 해방은 저를 비롯한 모든 중생이 모든 번뇌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되는 것이고, 저의 혁명은 본래 ‘혁명’이 완수된 마음자리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머리를 깎고 괴색의 옷을 입고 수행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에게 있어 본래 혁명과 해방의 길인 것입니다.
굳이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그렇기 때문에 체 게바라는 체 게바라고 원제는 원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