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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불교역사순례(서안불교성지순례-해인사승가대학총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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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성원┃약천사주지, 39회동문 2014년 10월 392호
여행은 늘‘어디로 갈 것이냐’로 그 시작을 삼는다. 언제부터인가‘어디를 가느냐’는 언제 가느냐,
누구랑 가느냐 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해인승가대학동문회에서 주최한 제2회 동문 불교성지순례의 길이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해 주었다. 개인적으로 서안지역의 순례는 4번째였다. 하지만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다시 가보고 싶었다.
바쁘신 일정 가운데도 참가하시어 대중을 이끌어주신 덕숭총림 방장 설정 큰스님과 동문회장 정우 스님, 송광사 주지이신 무상 스님, 불편한 몸을 이끄시고 대중과 함께 해주신 무관 스님 등 이름만 들어도 환희심이 일어나는 큰스님들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순례지의 감동을 넘어서는 것 같았다.
여정의 대부분은 비가 내렸다. 가이드가 말했듯 연간 평균 강수량이 500mm인 갈한지역인 서안에 큰스님들이 오셔서 도시가 축복 받은 것 같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 같다.

북경대학에서 불교학 박사학위를 받고 북경에서 해인선원을 열어 홍법에 힘쓰고 있는 37회 동문 일혜 스님도 수차례 다녀간 이곳을 동문스님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참여하여 서안불교와 한국, 신라불교의 관계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문헌에 남아있는 신라의 구법승만도 200명이 넘는다고 했다. 장안에는 신라방까지 있었을 정도로 교류가 빈번했다.
수많은 유적지 중 당 현종과 양귀비가 불륜의 사랑을 남기고간 화청지華淸池와 그 이야기를 담은 장한가長恨歌를 다시 관광객들을 위해 극화해서 화청지에서 연출한 공연은 규모와 화려함에서 중국적 감동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살아서 중국을 통일하고, 영원불멸의 삶을 꿈꾸며 병마총을 조성한
진시황제의 병마갱도를 보면서 생사의 허망함을 누군들 느끼지 않겠는가?
현장 스님께서 인도 구법여정을 마치고 귀국하여 역경사업을 펼치신 대안탑大雁塔이 있는 대자은사大慈恩寺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불교성지 길이 시작되었다.
철감 국사 부도형식의 초기 모습이 느껴지는 단아했지만 조금은 관리가 허술해 보인 구마라집 스님의 부도가 모셔진 초당사草堂寺는 마침 수륙천도재가 한창이었다. 법당에서 스님이 직접 디지털피아노를 반주하며 염불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율종남산종律宗南山宗 도선道宣 율사律師께서 수학 하신 정업사正業寺는 우중에 30분을 가파른 산으로 올라야 했다. 율종조정律宗祖庭이지만 사찰의 규모는 작고 현재 불사가 한창이었다. 더 올라가면 선원이 있다는 주지스님의 안내에 흔쾌히 더 오르기로 하신 방장스님 덕분에 재가불자들이 수행하는 선실과 산속의 유일한 사치인 통유리 창으로 풍경을 가득 담아둔 차실에서 무이암 차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지상사至相寺는 큰길에서 다시 작은 차로 30분정도를 올라서 도착했다. 의상 스님께서 8년간 수학하신곳인데, 사찰은 단아했고, 주지스님께서 직접 맞아주시고 60화엄, 80화엄을 2본을 담은 10질의 경전을 보시해 주셨다. 이동의 불편으로 잔꾀를 부리는 우리들의 마음을 아셨는지 수덕사 방장스님께서 호의에 감사하며 흔쾌히 받으셨다. 어려운 운반의 과정을 격으면서 현장 법사 일행의 힘겨운 경전이동 여정을 생각하니 괜시리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기증받은 경책은 해인사승가대학과 전국 8대 총림과 봉선사에 한부씩 보내기로 하여 더욱 보람되었다.

흥교사興敎寺는 현장 법사의 부도가 모셔졌다는 사실보다 신라 구법승 원측 법사의 부도가 모셔져있다는 사실에 더 끌리는 곳이다. 21m의 당삼장탑唐三藏塔 좌우 나란히 1/3규모의 원측사탑圓測師塔과 규기사탑窺基師塔이 모셔져있었다.
원측 스님의 탑은 바로 이곳에 모셔지지 않았고, 북송 때 이곳으로 모셨다고 했다. 타국인 신라의 스님이 현장 스님의 상수제자로 받아들이는 일이 당시에도 중생심에서 쉽지 않았나보다.

현재 중국불교와 서안을 대표하는 사찰은 87년 서안 지진으로 기운 탑을 보수하다 지하에서 출현한 법문사 부처님 진신지골사리眞身指骨舍利로 인해 현재148m 높이로 합장하는 모습의 대형 사리탑을 세워 그위용을 자랑하는데 법문사 불지사리탑의 규모와 모습은 그야말로 중국 불교의 유구한 역사와 장대한 미래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다음날 비와 안개 가득한 화산등정은 다음에 꼭 다시 한 번 오겠다는 다짐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바쁜 일정으로 단 한번 서안 시내를 돌아보지 못하다가 마지막 날 늦은 시간 몇몇 스님들과 밤나들이 나갔는데 장안성곽 한 켠에 화려하게 조명이 비춰진 종루와 법고의 위용만으로도 옛 천년 세계의 수도였던 장안의 위용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마지막 공항으로 가면서 누구나 서안에 오면 꼭 들리는 비림은 언제나 똑 같은 모습이었다.
오늘도 판매용 달마도강도達磨渡江圖와 달마면벽도達磨面壁圖를 탁본하는 사람에게는 이 모든 것
이 힘겨운 노동일수도 있을 것 같다. 기나긴 역사를 고이 간직한 서안을 뒤로하는 일보다, 동문수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존경심이 더해지는 선배스님들과 다음에 또 만나자는 바람에 날리는 기약과 함께 헤어짐이 더욱 허전하다.

천년의 역사와 천만리 머나먼 길을 뒤로한 채 3시간도 되지 않아 현실의 세계로 우리들을 데려와 버린 선진화된 현대 물질문명 앞에 우리들의 감성은 늘 낯선 모습으로 남아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