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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의 최고봉인 몽블랑 4,81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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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유기석 2014년 10월 392호
이 산을 오르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산악가이드가 저 같은 일반인을 정상까지 데려가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저한테 적어도 5,100m까지는 고산증이 없다는 걸 아는 저는 그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뚜르드 몽블랑 Tour Du Mont Blanc, TMB. 알피니즘이 시작된 곳.
전세계 모든 산악인들이 생애 꼭 한번은 완주하기를 희망하는 코스.
뚜르드 몽블랑은 아름다운 몽블랑산군을 한 바퀴 도는 약 160km 일주 코스 입니다.

우리는 프랑스 샤모니에서 출발해서 이탈리아와 스위스 국경을 넘나들며 때론 산장에서 숙식을 해결해가며 하루 7~8시간씩 걸었습니다.

TMB는 7~8월이 시즌인데 그 해 1~2월이면 이미 모든 산장의 방예약이 끝나기 때문에 이 코스를 염두에 두신 분들은 미리미리 예약을 서둘러야 합니다. 우리도 작년에 기회를 놓친 경험이 있어서 금년엔 서둘렀는데도 대기자 명단에 올려졌고 5월 중순에야 겨우final confirm을 받았습니다.

우리 인생이 인생이게 하는 여러 가지 것들…… 그것들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는데 이런 트래킹만한 방편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내와 저는 이태 전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가서 첫날 걷기 전에 약속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이 길을 걸으며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현안들에 대해 결론을 내자고 말입니다. 그러나 깜짝 놀란 것이, 우리는 서로 그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트래킹 마치던 날에서야 그 약속을 떠올렸다는 사실입니다. 대자연 앞에서 영겁의 시간 앞에서 나는,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절에서는 앉아서 하는 참선을 좌선이라 하고 이곳 저곳을 걸으며 하는 참선을 행선이라고 한다지요. 트래킹이 저에겐 행선입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랄까, 정신을 정화하는 의식 같은 그런 행사입니다. 50도 중반을 넘긴 이 나이에도 여전히 미욱한 저한테 트래킹은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날 2014년7월27일>
우리는 어제 김포 베이징 제네바 구간을 비행기로 이동해서 버스로 국경을 넘어 프랑스 땅 샤모니 시내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아침 식사 후 호텔 로비에서 우리 트래킹의 가이드인 잘생긴 프랑스 청년 세바스티앙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10분 정도 차로 이동하여 Les Houches(1,010m)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이번 트래킹의 출발지인 Bellevue(1,794m)에 도착했습니다.

날씨는 더 없이 좋았고 지천에 널린 이름도 모르는 총천연색 야생화들과 어우러진 알프스의 경치는 동화책에서 본 그대로여서 트래커의 마음은 하마 붕 떴습니다. 그야말로 알프스에는 소녀 하이디 빼곤 다 있었습니다.

오늘은 해발 고도로 660m를 올린 후 다시 850m 낮추는 코스였고 총 걸은 시간은 찍힌 사진 기준으로 약 8시간 입니다. 여기 몽블랑 지역은 10월부터 5월까지 눈이 온다고 합니다. 여름 트래킹 시즌 보다는 겨울 스키 시즌에 더 유명해서 스키 좀 탄다고 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로부터 몰려든다고 합니다. 세바스티앙도 여름엔 트래킹 가이드를 하지만 스키 시즌엔 스키 강사라고 합니다. 스키 타는 사람들이 저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이태리와 스위스는 헬리콥터를 허용하는데 프랑스만 불허해서 스키 장비 다 메고 올라가야 한다고 합니다.

해발 2,200m에서 점심. 점심은 바게트 빵과 그 속에 넣을 소시지 헴 야채 등인데 그날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각자 자기 몫을 비닐 팩에 담아서 가방에 넣어 갑니다.

가이드가 오늘은 날이 좋지만 내일 오전에 시작되는 비가 오후엔 폭풍우로 바뀔 수 있고
산 위에서는 눈이 올 수도 있으며, 모레는 종일 비가 예보되어 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둘째 날 2014년7월28일>
오늘 우리는 로마 군이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로 쳐들어올 때 사용하였던 루트를 프랑스에서 이태리 쪽으로 거꾸로 걸어갑니다. 길은 몽블랑산군의 최남단 계곡을 향하여 굽이굽이 이어지는데 전체적으로는 해발 고도 1,500m를 올린 후 900m를 낮추게 됩니다.

해발 2,443m에 있는 산장에서 비를 피해가며 점심 먹을 때 이미 만보계가 20,020보를 찍었을 정도로 긴 구간으로 찍힌 사진 상으로는 8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TMB트래킹은 평균 해발 고도 2,500m의 산을 트래킹하게 되므로 급작스런 온도 변화에 유의하여 이에 대한 산행장비 및 복장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도 바람막이 재킷, 우비, 방한복 등을 항상 배낭에 넣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꺼내 입고 벗고를 반복했습니다.

<셋째 날 2014년7월29일>
몽블랑산군의 남쪽을 돌아 이태리와의 국경으로 향하는 이 구간은 해발고도로 750m를 높인 후 950m를 내려가는데, 이 구간에선 숨이멎을 듯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암석들과 눈과 얼음으로 덮인 몽블랑의 남쪽 봉우리들을 감상할 수 있다고 나와 있어서 기대가 매우 컸습니다.

그러나 이날 우리는 트래커라기 보다는soldier 였습니다. 어느 전쟁 영화에서처럼 빗속에판초우의를 쓰고 그저 명령에 따라 목적지까지 무조건 걸어가야 하는 군인에 다름이 없었습니다. 산 전체를 감싼 구름과 10시께부터 하루 종일 내리는 비 때문에 가장 힘든 날이었습니다. 11:36분에 비를 피해 작은 산장에 들어갔는데 그 곳의 해발이 2,198m 바깥기온이 5도였습니다. 오히려 눈이 오지 않는 게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오늘 최고 해발 고도는 2,443m

이번 트래킹의 3대 공신을 꼽으라면 제1은 밀짚모자 제2는 드라이기 그리고 제3은 우비로 하겠습니다. 비도 종일 내리니 스패치를 갖추지 못한 우리는 우비를 통해 떨이지는 빗물이 신발 뒤꿈치로 들어와서 결국 등산화 내부가 빗물에 흠뻑 젖었고 숙소에서 밤새도록 드라이기로 말려야 했습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비와 안개 속의 회색 빛 산장 건물들. 2층 침대가 두 개씩 있는 방16개에 각 층마다 샤워실과 남녀 화장실이 하나씩 있는 2층짜리 건물 두 동과 공동식당 건물, 그리고 군대 막사 같은 구조의 침상을 가진 단층 건물 한 동. 이게 산장의 전부지만 트래커들로 가득하여 샤워부스 앞에선 줄을 서야 했습니다.

<넷째 날 2014년7월30일>
오늘 우리는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국경지대를 지나며 알프스의 푸른 초원과 야생화, 눈덮인 봉우리가 멋지게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보면서 철(iron)이라는 뜻을 가진 Ferret 고개를 넘어 평화로운 스위스의 마을까지 갑니다. 이 부근에 철광산이 많아서 그렇게 불렸다고 합니다. 풍광이 정말 좋을 듯한 곳에서 한국의 밀레 촬영팀을 만났습니다. 벌써 사흘째 같은 장소에서 날이 좋아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산의 날씨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이드가 아침 저녁으로 우리 코스의 날씨를 브리핑했지만 잘 맞지 않았고, 오늘도 예보와는 달리 하루 종일 비와 해와 바람이 교차했고 상황에 맞춰 비옷과 방풍복을 입었다 벗었다 했습니다. 그 바람에 2시간반 걸린다는 2,537m Col Gran Ferret 고개 정상까지 한 시간 이상 더 걸렸습니다.

이 곳에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국경 표지석이 있습니다. 이 표지석을 지나 이제 우리는 스위스로 갑니다. 한 시간을 내려가 Elena 휴게소에서 점심도 먹고 따스한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데웠습니다. 오늘의 목적지 La Fouly에 도착한 시간이 17:00
08:30분에 출발했으니까 오늘 걸은 시간은 8시간 반.

<다섯째 날 2014년7월31일>
지난 이틀 동안 하늘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더냐고 묻듯 날씨가 매우 좋은 아침을 맞았습니다. 우리가 오늘의 출발지인 Champex의 빙하 호수에 도착했을 땐 호수에 비친 파란 하늘을 보고 오늘 정말 좋은 경치를 보겠구나 했죠. 그러나 하루 종일 비는 오지 않았지만 구름이 문제였습니다.

오늘 점심 먹을 곳인 Bovine으로 가기 위해 호수 옆을 지나 Rhone Valley를 거의 세시간을 올라가는데 거긴 야생 블루베리 천지였습니다. 올라가는 내내 그거 따먹고 힘을 냈습니다. 2,230m 산 위에서 저 아래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마티니를 내려다 볼 줄 알았는데 하늘문지기가 구름으로 요술을 부리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멀리멀리 융프라우가 희끗희끗 보이기도 했지만 그게 다였습니다.

내일은 이 나라 스위스의 건국기념일이라고 합니다. 여기 풍습은 주로 불로 축하를 하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의 대보름 풍습인 달집태우기 같은 걸 하는데, 우리가 하늘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에델바이스 분재 앞에서 차를 마셨던 쉼터에도, 밭 한가운데 나무 더미를 높이 쌓아두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어두워지면 불을 붙인다고 합니다. 이날 우리가 묵었던 숙소 주변 마을에선 밤 10시쯤부터 불꽃놀이도 하였습니다.

<여섯째 날 2014년8월01일>
오늘 트래킹 마지막 날 우리는 진짜 알프스를 보게 됩니다. 이 숨막히는 경치를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릅니다. 시작(07:52)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어 약 두 시간 반 걸리는 정상(10:14)까지 계속됩니다.

푸른 하늘과 흰구름 초록의 풀 그리고 산 위의 집이 어우러져 마치 컴퓨터 윈도우 부팅 화면 같은 장면을 보인 곳에서 사진 한 장을 건지고, 30여분을 더 올라가서 마침내 집 앞에 섰을 때의 어마어마한 광경이 주는 환희는 그 동안의 고생을 보상 받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Mont(산) Blanc(하얀)
일행이 6커플 12명이었는데 우리는 그들 보다 30분 정도 일찍 올라왔습니다. 번잡하지 않은 가운데 우리는 경치를 마음껏 감상하고 사진 찍고 그랬습니다. 이번 트래킹 동안 찍은 654장의 사진 가운데 한 장을 꼽으라면 저는 이 곳에서 찍은 스틱과 밀집모자 배낭 만을 찍은 이 한장을 꼽고 싶습니다. 파란 하늘과 구름, 몽블랑과 산군들, 빙하 그리고 계곡 아래 도시 샤모니! 한번은꼭 다시 오고 싶다는 바램이 들었습니다.

샤모니 시내로 내려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3,842m 올라가는데 구름 속에서 나타나는 케이블카는 신비롭기까지 했습니다.

<일곱째 날 2014년8월02일>
저녁 비행기라 하루 종일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같이 모여서 아침을 먹고 남들은 다 쇼핑하러 갔지만 우리만 빙하를 구경하러 갔습니다.

빙하氷河. 흐르는 얼음
산악 기차를 타고 30분 정도 올라가 해발 1,913m에 있는 기차 역에 내려서 또 한번 장엄한 광경에 놀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빙하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빙하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계곡으로 내려가는데 장비를 맨 남녀가 올라오고 있어서 어디서 오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빙하 뒤 큰 산을 넘어왔다고 하더군요.

아시는 바와 같이 스티븐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이라는 영화는 공룡의 피를 빨아먹은 모기가 동토의 얼음 속에서 발견되고 그 모기가 빨아먹은 피 속에서 공룡의 DNA를 추출하여 공룡을 복원시킨다는 것이 설정입니다.

흙과 돌로 덮여있는 저 빙하 아래가 이런 모습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 얼음은 태고의 순수한 물일 테고 저 얼음 속 공기방울 속에는 수백만 년 전의 공기가 들어 있을 것입니다. 얼음을 손으로 녹여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거의 돌출된 작은 돌 몇개를 주워서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알프스에서 가장 두꺼운 빙하가 800m라고 하는데 저 빙하도 계곡의 모양새로 보아 그 두께가 상당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혹여 미끄러지기라도 해서 저 빙하의 크레바스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리고 오금이 저려왔습니다.

이렇게 몽블랑 트래킹이 끝났습니다. 이 세상이 세상이게 하는 여러 가지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또 한발 신념 쪽으로 다가섰습니다. 트래킹 내내 도사 조용헌의 책 <사주명리학 이야기> 안에 나오는 산에 대한 얘기가 머리 속에 있었고, 수만 년 아니 어쩌면 수 십만년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이 얼음을 앞에 두곤 엉뚱하고도 불경스럽게 ’부모미생전’이라는 말이 머리 속에 퍼뜩 했습니다. 만약 이 얼음이 3만년 전에 생성되었고 30년을 한 세대로 친다면 지금의 나에게 유전자를 물려주신 1천번째 조상님은 크로마뇽인이었을까요?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저 매 순간 순간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 낼 뿐!
나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