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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문화 중국소개를 위한 선종사찰 성지순례(8월 26일 ~ 9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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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종현 2014년 10월 392호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서 주최하는 한중불교교류행사의 일환으로 선종사찰순례가 기획되었다. 8박 9일 일정의 다소 긴 순례였는데 중국불교를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나로서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참가비도 반값만 내는 일이니 닫힌 마음이 훤히 열린다.

해인사 홍보국장으로 있으면서 2009년 중국의 대각선사大覺禪寺 방장스님(우리불교에서는 주지스님과 동일) 일행을 안내한 적이 있었다. 길게 머무는 것이 아니고 짧은 시간 관람만 하는 것이어서 기본적인 안내만 할 샘으로 대각선사 일행을 맞았다. 그런데 그 방문단의 규모나 방장스님의 인품, 참가한 방문단의 구성원에서 다소 놀랐었다. 한국불교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고 대부분 40대의 젊은 스님들, 그리고 방장스님이 나와 동갑인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안내해준 보답으로 대각선사 방장스님이 해인사 탐방에 대한 소회를 즉석에서 수성 펜으로 칠언절구 시를 써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처음 만난 중국불교의 이미지가 좋고 호기심이 가득했던 차에 이번 선종사찰 순례에 따라나선 것이다.
물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먼저였다.

귀한 손님이 오면 비가 온다
혼자 조용히 가려 했으나 알고 보니 해인사 암자 감원스님 세분도 동참했다. 그 덕에 인천공항까지 감원스님들이 잡아놓은 봉고차를 타고 편히 이동할 수 있었다. 종단협의회 사무처장 각우 스님께서 인솔단장이 되고 비구 13명 비구니 18명의 스님이 동참했다. 해제하고 나온 수좌, 사찰 주지스님, 대학원 스님등 35명이 동참했다. 오조사를 가기 위해 정주공항에 도착하니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항에는 30여명의 신도와 중국불교협회, 오조사스님들이 나와서 환영해주었다. 꽃다발과 플래카드 앞에서 사진 찍고 단장 각우 스님은 “우리 속담에 반가운 손님이 오면 비가 온다고 했는데 우리가 그런 손님이 되었으면 한다”고 짧은 인사를 건넸다. 공항 환영인파부터 파격이다. 우리는 손님접대를 어떻게 했었나를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하다.
사찰순례는 오조사 · 노조사 · 사조사 · 홍화선사 · 향산사 · 백마사 · 소림사로 이어진다.

오조사五祖寺 - 오조 홍인과 혜능의 전법도량, 혜능과 신수의 치열한 수법경쟁, 선불장
순례단 일행은 호북성에 있는 오조사에 짐을 풀고 4일간 머물면서 주변사찰을 순례하는 것으로 짜여졌다. 오조사는 오조 홍인 스님이 주석하시며 선종총림을 세운 절이며 육조 혜능의 출가사찰이기도 하다. 또한 신수와 혜능이라는 당대 최고의 선지식을 제자로 데리고 있으면서 함께 머문 사찰이다. 혜능 행자가 8개월을 기다리며 방아를 찧던 방앗간과 홍인 스님과의 문답속에서 마음으로 인가 받았던 회랑채가 선명하다.
지객스님의 안내로 오조사의 선원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다만 개원이후 비구니스님이 한번도 들어온 적이 없으니 비구들만 들어오란다. 호기심에 들어가니 몇몇 눈치 빠른 비구니스님들은 맘씨 좋아 보이는 오조사 지객스님을 제치고 슬쩍 들어와 않는다. 지금은 정진철이 아니라 비어있어 자유로이 살피며 자리에 않아볼 수 있었다. 우리선원에서 좌복을 깔고 않는 것과는 달리 버스터미널의 기다란 의자처럼 방벽을 타고 사방으로 늘려있는 나무의자에 않아 정진한다. 졸아 떨어지면 낭패다.
이후에 안 일이지만 3년 전 순례 왔을 때 선원에 일반불자까지 들어가서 참배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창건 이래 비구니스님이 안 들어갔다는 것은 안내하는 스님의 과장일 것 같고 아마도 방장 정자 스님이 오신 이후로 일반인과 비구니의 출입을 막은 것 같다.
오조사 방장 정자대화상正慈大和尙은 한국불교수행체험 통해 많은 교감을 이뤘으며 포교사찰을 건립하여 도시형 불교를 위해 대중에게 다가서기위해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하셨다.
2013년부터 오조사 방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정자 스님은 홍화선사弘化禪寺의 방장이자, 중국 불교협회의 부회장, 후베이성(湖北省)불교협회의회장등 다양한 활동으로 학자적 풍모를 풍기는 스님이다.
오조사는 농선일치農禪一致를 강조하며 대중들이 함께 일하고 수학하여 공양을 해결한다. 실제로 오조사 옆에는 어느 정도의 밭에 다양한 체소를 가꾸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규모는 크지 않다. 우리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규모정도의 밭이다.

노조사老祖寺
오조사와 같은 황매현에 있는 노조사를 참배했다. 시골길을 한참 달려 구부정한 비포장산길을 타고 산을 넘으니 커다란 인공호수를 낀 노조사가 드러난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한참 타고 간 터라 불쑥 나타난 붉은색의 노조사에 모든 스님들이 탄성을 지른다. 중국의 절들은 대개가 자색을 띈다. 온통 붉은빛이다. 노조사는 수많은 전란을 버티지 못하고 폐허로 있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다. 복원된 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기념품점은 가장 화려하고 넓다.
동진시기 인도에서 온 고승 보장 선사가 개산하였다. 보장선사는 당시 천세를 누렸다고 하여 천세보장선사라 하고 이후 절 이름을 노조사라고 지었다.

사조사四祖寺 - 선종 총림 그 첫 번째 도량, 옥구슬 영롱한 벽옥류
사조 도신 스님의 수행처이자 제자 오백여명을 거느리고 수행한 명실상부한 최초의 총림이다. 중국 선종사에서 초조, 이조, 삼조 스님이 여러 형편상 정착하지 못한 유랑생활을 했다면 도신 스님은 사찰에 정착하여 대중을 이루고 선법을 펼쳤다. 선종 총림 그 첫 번째 도량이 사조사이며 제자가 500여명이 넘었다고 한다.
도신 스님은 쌍봉산(파액산)에서 법을 펼치시며 동산법문을 개창하였는데 동산법문은 일과 선의 구분을 두지 않고 정진하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가르침이 핵심이다.
사조사는 오조사에 처음 도착하여 입제식을 할 때 사회를 받던 명기 스님이 방장으로 있다. 명기 스님도 40대 방장으로 인자하면서도 젊은 스님이며 마이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제1회 한중교류에서 송광사 수행체험을 했고 그때는 8시간 참선을 7일간 시켜 제대로 한국 선불교를 체험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사회변화에 걸맞은 불교의 사회적역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을 강조하셨다.

사조사에는 영윤교靈潤橋라는 오래된 무지개형 다리가 있는데 아래로는 벽옥류라는 맑은 물이 흐른다. 이곳도 해인사 홍류동 계곡처럼 운치가 있어 많은 시인, 묵객들이 바위에 시와 기록을 남겼는데 중국에 와서 석각石刻 글씨를 보니 너무 반가웠다. 한걸음으로 계곡 밑에 내려가 살펴보니 웅장한 글씨와 칠언, 오언절구의 시들이 즐비하게 나열 돼 있다. 돌아와 사진을 보며 글씨의 조형미에 감탄하며 그 내용을 찾다보니 사조사 홈페이지를 방문하게 됐고 친절히도 원문 전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홈페이지의 한자를 복사 못하게끔 장치가 되어있어 일일이 한자한자 찾아가며 원문을 기록했음을 밝힌다. 함께 갔던 선암 스님의 도움으로 시 한편의 번역문을 찾았다.

파액산전벽옥류破額山前碧玉流 파안산 앞 벽옥 같은 물 흘러
소인요주목난주騷人遙駐木蘭舟 아득히 시인묵객들의 배(목란주)가 머물다.
춘풍무한소상의春風無限瀟湘意 춘풍은 끝없이 소상강 생각 전하니
욕채빈화부자유欲采蘋花不自由 가래꽃 따려도 뜻대로 되지 않아라
大明嘉靖庚申胡效忠來游刻石대명가정경신호효충래유각석 류종원柳宗元

천泉
淸光緖元年청광서원년(1875~1908)
有本如是유본여시
楚梅南陽布衣초매남양포의 鄧文濱題등문빈제

벽옥류碧玉流

홍화선사弘化禪寺 - 화동의 꽃다발과 침향향기로 피로 풀어
홍화선사는 오조사 방장인 정자 스님이 주지로 있는 사찰이다. 순례단의 참배 일정이 자칫 지치고 힘들거라는 오조사 방장스님의 배려로 당신이 주지로 있는 홍화선사로 초청하여 사찰음식도 맛보고 쉬라는 의미로 일정에 추가되었다. 일주문부터 50여명의 신도들이 도열해 있고 화동의 꽃다발 선물로 환대를 받았다. 절의 구조는 다른 절과 비슷했지만 객실과 강당등이 유난히 많아 보였다. 식당 앞 다실에는 지역에서 자원봉사 나온 아리따운 아가씨 10여명이 나와 홍차를 뽑아 대접했고 한쪽에서는 침향을 피워 여행에 지친 피로감을 잊게 했다. 젊은 선녀가 뽑아주는 차와 침향에 취해갈 즈음 점심공양이 준비되었다. 호북성 최고의 주방장을 사찰로 초청해 한국스님들 입맛에 맞는 음식을 내왔다. 중국 특유의 기름 냄새가 안 났고 자주 보던 콩고기도 없었다. 넉넉한 일정으로 먹고 마시고 사진찍고…
오후에는 도심포교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한 오조사 방장 정자 스님의 도심포교당 불사현장을 찾았다. 우리나라 코엑스 정도 규모의 국제회의장 같은 거대한 불사현장이 드러났다. 형장감독의 설명과 무사고를 기원하는 단장스님의 덕담으로 일정을 마무리 했다. 한국스님들의 방문기도로 아무런 사고 없이 포교당이 걸립되어 도심포교의 이정표가 서길 기대해본다.

백마사白馬寺 - 중국 최초의 사찰
백마사는 인도의 고승 섭마등, 축법란 스님이 경전을 가지고와 세운 절로 서기 67년에 세워진 중국 최초의 사찰이며 지금은 세계불교의 집성지로 계획을 세워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우리 일행이 방문했을 때는 미얀마와 인도의 사찰이 완공되어 순례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객스님의 안내로는 한국사찰의 부지도 지정해 놓았으니 종단이 나서든 반월이 나서든 백마사에 짓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중국 최초의 사찰인 것에 격을 맞추어 세계불교를 유치하려는 중국불교의 거대한 야망을 볼 수 있었다. 지객스님의 섬세한 안내에 “말씀도 잘하시고 얼굴도 너무 잘생기셨다”고 인사를 하자 손사레를 흔들며 백마사에서 얼굴로는 중간도 못간다며 겸손해 했다. 백마사 방장스님을 뵙고는 비로소 그 말이 겸손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영빈관에서 뵌 방장스님은 40대의 젊은 스님으로 지객실에 들어올 때 일행들이 탄성을 지를 정도로 훤칠한 외모를 자랑했다. 방장스님의 인사와 선물증정등의 일정을 마치고 저녁공양으로 백마사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백마사 방장스님 : 신흥사 수행체험, 사회적 역할 강조, 출가자가 줄고 타종교인이 늘고 있는 추세라 걱정, 중국불교 세계화에 총력
백마사는 농선일치를 가풍으로 내세우며 대중스님들이 직접 종사를 짓는다고 했다. 한국수행체험단이 도착하기 며칠전에 밀 수확을 대대적으로 했다며 밀을 빠 만든 만두를 맘껏 드시라하고는 한국스님들도 농사를 짓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다. 우리야 배추운력, 김장운력, 감자운력, 문풍지 … 하물며 축구운력까지 하는 터라 밀수확 좀 했다고 말하시는 방장스님 말씀엔 우리는 앵벌이수준으로 운력한다고 목까지 나왔으나 참았다. 우리나 중국이나 선농일치의 가풍은 일치하는 것 같다. 가만 생각해 보니 오조사에서 나흘간 머무르는 동안 아침에 스님들이 빛자루질 하는 것을 못 봤다. 우린 매일 하는데…

소림사少林寺 - 선종의 발원지이자 중흥지
순례일정의 마지막으로 용문석굴을 들러보고 소림사에 이르렀다. 소림사는 수없이 많이 영화와 TV에서 보아 와 그냥 무술 하는 사찰정도의 인식만이 있다. 명성답게 소림사 주변에는 세계적인 무술학교들이 수십개가 도열해 있다. 소림사 지객스님의 안내로 소림사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소림사는 495년 인도에서 온 발타 선사가 창건했다. 이후 달마 대사가 찾아와 소림굴에서 9년 면벽 수행한 후 혜가 대사에게 법을 전한 선종역사의 현장으로 선종을 이루신 선종의 발원지이자 중흥지이다.
스님들의 체력단련실인 체육관을 찾았다. 방장스님의 지시로 한국순례단을 축하하는 무술시범을 즉석에서 보였다. 20여명의 젊은 스님들이 많이 알려진 소림무술의 절도 있고 화려한 시범을 보였다. 내짓는 함성과 화려한 몸짓에 연신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이중에는 조선족 출신 스님도 있어 한글로 알기 쉽게 설명도 해주었다. 남이 보지 못하는 특별한 곳을 보니 모두가 만족한 기분이다. 안내를 맡은 얌전해 보이는 지객스님도 스님들이 무술연습을 했던 달마전에서는 절도 있는 발동작으로 나도 무술 연마 좀 했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냈다. 그러고 보니 호리하고 날쌔게 생기신 게 나름의 기운이 엿보였다. 이후 방장스님을 접견하고 장백산 아래 조선족 마을에 제2의 소림사를 창건한다는 설명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소림사 방장스님 : 백두산 하방쪽에 정부의 허가를 받아 소림사 분원을 설치할 계획 확정, 백두산 주변 조선족들이 마음의 안정과 다양한 직장을 제공하여 지역 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
소림사는 자손총림으로 문중에 의해 사찰에서의 수행과 경영을 해결한다. 1992년 한국을 방문했던 방장스님은 세계불교의 모든 스님들이 일불제자임을 강조하고 소림무술로 많이 알려진 소림사지만 선원수행을 근본으로 하는 수행사찰임을 강조하셨다.
소림사는 전국에 20여개의 말사가 있고 대중이 사미포함 400여명으로 선원대중은 40여명이라 한다. 수행초기에는 7향(일곱시간), 익숙해지면 9향, 4월 이후에는 12향으로 49일 정진을 한다. 하 · 동안거 90일 정진하는 우리와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시간을 배정하고 일정기간 모여 참선한다는 것은 같다.
또한 모든 소임을 스님들이 보는 실질적 총림이다. 밖으로 많이 알려지다시피 소림사는 무술연마가 전부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선종의 발원지로 수행과 공동체생활을 근본으로 하는 수행총림의 모습이다. 소림사는 다른 사찰과는 다르게 농사를 짓지 않고 입장료와 신도 시주로 사찰을 운영한다고 한다.
자손총림 : 문중개념으로 스승과 제자로 이루어진 문중에서 사찰을 운영한다.
시방총림 : 공찰개념으로 전국에서 다양한 스님들이 모여 정진하고 운영하는 총림

예불과 공양
오조사에서 있는 3일간 우리는 한국불교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크게 신심을 냈다.
새벽예불과 중국식 아침 발우공양을 자청해서 두 번이나 했다. 중국은 아침예불에서 발우공양으로 이어진다. 예불은 경전독경과 아미타불정근, 관세음보살 정근으로 이어져 60여분간 진행된다. 부처님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 서로 마주보고 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불은 대만과 같이 아름다운 운율을 타고 선창 집전스님과 대중들이 이어 부르는 형식이다. 집전스님의 염불소리만 들어도 신심이 절로 났다.
발우공양은 두 개의 발우로 진행하는…우리식으로 보면 약식 공양이다. 어시발우에는 공양, 1분자에는 찬이 들어가며 시봉하는 스님들이 밥과 찬을 들고 이동하면 뷔페식으로 각각의 발우에 담으면 된다. 낮선 중국의 발우공양도 우리와 같은 형식의 공양이다. 방장스님의 말이 기억난다. 우리는 일불제자니까.

큰 솥의 국을 간보는 데는 숟가락 하나면 충분하다
8박9일의 긴 시간 동안 중국의 선종사찰을 돌아보며 거대한 중국불교를 수행체험하였다.
절의 방장스님마다 일불제자와 선농일치의 가풍을 강조했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회와 국가에 이바지하는 길을 늘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젊은 스님들이 중심이 되어 대만, 한국의 불교를 접목하려는 노력과 1970년 이전 맥이 완전히 끊겼던 불교의 흔적과 가르침을 찾고자 하는 노력들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방장스님을 비롯한 지객스님, 대중스님, 자원봉사자들 한분 한분의 친절함이 번성해가는 중국불교의 내면을 대변하는 것 같아 반가웠고 쓰러진 사찰복원과 도심포교의 청사진을 준비하는 현장에선 희망찬 미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큰 솥의 국을 간보는 데는 숟가락 하나면 충분하다고 한다. 몇 안되는 사찰을 방문했지만 번창해가는 중국불교를 충분히 느낄수 있었다. 방장스님들의 일관된 말씀처럼 일불제자로서 한중불교의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으로 이미 세계화된 남방불교와 함께 그 옛날 한중일이 중심이 된 북방불교의 큰 틀을 세워 불교가 세계로 나아가는데 양국불교가 큰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아울러 최초의 중국 사찰 백마사에 한국절이 조속히 건립되어 한국식 수행과 기도가 중국에서 울려 퍼지길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