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생으로 얻은 무명無明(무지無知, 인연의 이치를 전혀 모름)으로 행行(행동)이 진행하여 그릇된 업이 발생한다. 그래서 바깥경계를 인식하는 것이 식識이다.
명색名色은 마음과 정신은 명名이며, 형체가 있는 몸은 색色이라 한다.
육처六處는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감각과 지각능력이며, 촉觸은 지각과 감각능력에 부딪혀서 성립되는 것이다. 육처의 느낌이다.
수受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과거의 업식 으로 현실을 받아들인다.
애愛는 싫으면 받아들이지 않고 나를 즐겁게만 하고 싶어 하는 강한 욕구이다.
취取는 내가 싫어하면 버리고 좋아함만 취하는 행위이며, 유有는 지금까지의 행위에 의해 쌓인 습관이 또 다른 나를 만드는 단계이다.
생生(태어남), 이렇게 만들어진 내가 미래의 새로운 삶으로 태어난다.
과거의 생활, 습관 등이 지능과 성격, 체질로 나를 만들어서 미래의 내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은 노사老死, 익혀온 습기로 인하여 윤회가 거듭되며, 연기의 법칙으로 나라는 존재는 태어나고 죽어감이 거듭된다. 업보중생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하기 때문이다.
무명을 바꾸면 정견正見(바로 봄)이 된다. 정견으로 보는 세상은 무명을 소멸시키고, 행이 소멸되며…결국에는 태어나고 늙고 죽는 고통도 사라진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좋은 도반(친구)을 얻으면 도의 절반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아니다. 도의 전부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듯이 인연의 소중함을 강조하셨다.
나로 인하여 생긴 인연들이기에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인 것이다’라고 이해를 하면 가장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기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왜?’라는 부정보다는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인연으로 엮어진 연기법의 공식을 풀어나가면 서로에 대한 원한, 원망, 분노등 내가 알 수 없었던 지나간 행적을 스스로 보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느끼면 바로 보게 될 것이고, 그리하면 얽혔던 실타래는 풀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