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수할 때 우선 세속에서 한 몸처럼 따라다니던 휴대폰, 술, 담배 등을 절연絶緣시키고자 압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부지불식간에 ‘나’라고 하는 존재가 되다시피 한 욕망의 때들을 털어내고 오롯이 근원적인 존재 그 자체에 대해 짧은 기간이나마 탐구해보라는 의미에서다. 개중에는 수련회 도중 급한 일이 있다며 휴대폰, 차키 등을 쓸 수 있냐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4박 5일이라는 짧은 기간임에도 미리 정리하고 오지 못한 것이다. 아니 한 순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임에도 유루有漏의 연緣을 내려놓지 못하고 마음의 일부가 결박되어 있는 것이리라.
‘호리유차毫釐有差 천지현격天地懸隔‘이라는 말이 있다. 털끝만큼의 차이가 있더라도 하늘과 땅만큼 현격하게 벌어진다. 내게 이 말은 참된 것에서 조금이라도 전도顚倒된 것이 있다면 그만큼 그것은 크게 벗어나게 된다는 말로 해석된다. 벗어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번뇌가 많거나 무한루프처럼 반복되는 어리석음에도 하릴없이 지켜보기만 할 뿐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인囚人같은 삶을 말한다. 부처님의 법을 모르면(無明) 세간이건 출세간이건 그런 굴레의 삶을 벗어날 수가 없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수련회는 그러한 차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스님들 앞에 나오기까지 이런 저런 사유를 들어 오랜 망설임에 고심했던 분들도 계셨으리라. 불교가 그만큼 대중에서 유리留離되었다는 반증일 수 있으며, 과거 찬란한 국가불교시대에 생활 속에서 언제나 가까이할 수 있었던 시대가 과연 있었던가 싶다. 다양성의 시대, 종교 또한 예외는 아니다. 다행인 것은 불교의 선수행(禪修行, 명상瞑想)이 복잡한 현대인에게 정신적 위안을 준다는 긍정적 평가로 인해 템플스테이가 상당히 인기가 있다는 사실이다. 수련생 중에는 기독교, 천주교, 무교 등 불자가 아닌 분들의 신청이 더러 있었는데, 이들은 그러한 사회적 인기에 편승해 종교의 벽을 넘어 부처님 앞에 나온 것이다. 그 저의가 어디에 있든 일단 산문 안에 들어온 이상 산문 안에서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느냐는 바로 그 사찰과 스님들 몫이다.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인 것 같다. 다만, 지속적으로 해인사 수련회에 참가하는 기경험 신청자들에 대한 별도의 프로그램이 없어 아쉽다. 초심자라는 입장에서 상투성에 대해 무조건 인욕하라고 하는 것도 요즘 같은 다종교 경쟁시대에 맞지 않는 논리라고 본다. 실제 참가후기에서 기참가 경험이 있던 수련생이 매년 똑같은 프로그램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수련회 참가경험을 바탕으로 단계별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함이 노출됐다. 수련동문회 활동을 통한 지속적인 동아리 신행활동이 이어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동문회 활동을 하건 그렇지 못하건 간에 기경험자를 위한 배려 차원의 심화 프로그램의 필요성은 여전히 있어 보인다. 요즘처럼 출가자가 적어 사찰운영에 애로가 될 만큼이라면 이런 계기들을 통해 출가로의 자연스런 유도차원에서도 그런 노력들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수련회는 습의사로 나가는 스님들에게는 강당생활 중 대중포교 전초전 격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대중포교가 절실한 요즘 다종교사회에서 언제까지나 산속에서 대중과 별리別離되어 수수방관 개별수행에만 몰두할 수는 없다. 언제까지 찬란했던 옛 과거 문화유산의 빛바래어가는 향기 속에 취해 혼침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 과연 나는 어떠했는가? 수련회를 마치고 나 자신이 얼마나 수행자로서 정진해왔고 그 위의며 향기를 전해주었단 말인가? 과연 나 자신이 그들에게 한 말이나 행동에서 수행자로서의 모습과 천지현격 할 만큼 호리의 차가 없지는 않았는가? 다시금 마음을 챙겨야겠다.
더운 날씨 속에 삼보일배, 천팔십배 등 이구동성으로 힘들었다던 과정을 모두 마친 수련 법우님들의 모습은 한층 편안해지고 드레져 보였다. 그들은 무엇을 과연 얻었을까? 법명이 적힌 수계증과 수료증 외에 세간에 다시 나가 다시금 쓰러지는 일 없이 무한루프의 번뇌의 고리를 끊을 만한 힌트라도 얻었기를 바란다. 이제는 승속僧俗을 불문하고 도반道伴으로서 막힘이 있으면 서로 연통해 해결해나갈 수 있는 법연法緣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유마경維摩經에 이런 말이 있다. ‘비여고원육지譬如高原陸地 불생연화不生蓮華 비습어니卑濕淤泥 내생차화乃生此華 … 여시견무위법如是見無爲法 입정위자入正位者 종불부능생어불법終不復能生於佛法 번뇌니중煩惱泥中 내유중생乃有衆生 기불법이起佛法耳’. “비유컨대 고원의 육지에는 연꽃이 나지 않고, 낮은 습지의 진흙탕에서 도리어 이 꽃이 자라나는 것과 같다 … 이와 같이 무위법을 보고 바른 위치로 들어간 사람은 결국 다시는 불법을 낼 수 없고, 도리어 번뇌의 진흙탕 속에 있는 중생이 불법을 일으킬 수 있을 뿐이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저 아래 낮은 습지로 내려간 법우님들에게서 이번 수련회의 작은 인연을 발판삼아 찬란하고 희유한 연꽃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