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계사로 옥스퍼드 시청에서 일하다가 조기 퇴직을 한지 2년이 되었건만 아직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남편이 제시한 것은, 아직 다리에 힘이 있을 때 한국에 가서 실컷 놀다가 오든지 아니면 새 직장을 찾든지 하라고 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공부하고 일밖에 몰랐던 나에게 만 58살에 찾아온 퇴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힘겨웠다.
세 남매가 다 대학을 졸업했고, 남편이 직장에 다니고, 많지는 않지만 공무원 연금이 나와서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지만 나는 하는 일이 항상 재미있고 즐거웠고 또 내가 하는 일이 시청각 부서 간부와 직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항상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 해 왔다.
특히 영국에서 그들이 처음 만나는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또 한 여자로서 3-4부서의 회계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그들에게는 무척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퇴직을 하고 난 뒤에는 모든 것이 다 어두움에 깔려버렸다. 2011년 8월에 퇴직하고 내가 정말로 어렵게 방황할 때 남편이 한국에 가서 좀 쉬었다가 오라고 해서 3개월 놀고 왔지만 아직도 무엇을 해보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확실히 서지 않았다.
중학교 때 시작된 7년간의 펜팔이 인연이 되어 영국인과 결혼한 지 어언 34년이 되도록 자식들 키우라, 회계사 공부하라, 직장에 다니라, 오직 5% 밖에 가지 않은 사립중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딸 둘 아들 하나 입시준비를 하느라 정신 없이 달려온 삶이었다.
1979년 영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대구 반월당 보현사에 청년회 부회장을 하다가 남자들이 하는 일에 마음이 안 맞아서 회장하고 열심히 싸우다가 결국에는 여자들만의 모임인 우루벨라를 대성사에서 만들어서 활동하다가 영국으로 왔다.
이번 방문에는 꼭 하고 싶은 세 가지 일들이 있었다. 첫째는 법정스님의 무소유 책을 읽고 서울 길상사 방문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여수 향일암에 가보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친구랑 길상사에 가보니 역시 법정스님의 성격을 품은 것 같이 절이 깔끔하고 단정하였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도 참가할 수 있었고 책 사인 하시면서 몇 마디 나눌 수 있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처음 해보는 기도를 향일암에서 했다. 처녀 때는 외부적인 활동을 하느라 기도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때는 기도는 늙은 할머니들만 하시는 것 인줄 알고 지냈다. 11월 달의 향일암 관음전의 저녁기도는 뒤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다 바람과 비구니 스님과 후배와 세 사람만이 하는 아담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생긴 처음 기도의 경험을 맛보았다.
시간을 더 유용하게 보내기 위해서 가야금, 기타도 배우고 관음사에서 불교 교리 공부도 했다. 미술은 교회에서 배웠는데 선생님이랑 학생들은 다 기독교인들이었다. 나는 불교 신자인데 와도 되느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것이라 속도는 느리고 좀 겁도 났지만 선생님과 동료들과 지내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그런데 매번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 스님이라고 불러서 미안했었지만 집사님인 선생님께서 잘 이해해 주셨다. 50세가 넘은 선생님의 말씀인즉 나같이 오래 외국에서 살면서 아직까지 기독교인 안 된 사람은 처음 만났다고 했다. 대부분 한국인이 외국에 살면 언어 소통이 잘 안되고 외로워서 교회로 모인단다. 그러나 나는 다행이 영국에 살면서 인간 차별이나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인으로서 당당하게 살았으며 한국인과 만날 시간도 없이 살아 왔다. 나도 몇 번씩 교회에 음식 먹으로 오라는 초대를 받고 또 그들의 열성적인 전도를 듣곤 했지만 고등학교 때 시작한 나의 불심과 그 열정을 어떻게 버리겠는가?
나의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사촌 언니를 해인사 구경을 시켜주는 것이었다. 2년 전에 왔을 때 언니랑 둘이서 부산 범어사와 양산 통도사를 다녀왔다. 언니의 불심은 매일 아침에 기도를 하고 나서 하루가 시작된다. 나랑 같이 절에 다니는 것이 좋아서 그때도 해인사에 같이 가자고 했는데 내가 시간이 없었다.
사촌이라도 여동생은 오직 나 밖에 없어서 자주 같이 다닐 기회가 없기 때문에 이번에는 언니를 해인사 구경은 꼭 시켜주고 가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에 살면서 65살이 되도록 해인사에 가보지 못했단다. 하기야 너무 열심히 살다 보니 아마도 정신적인 여유와 같이 갈 사람이 없었겠지?
다행히 나의 절친한 친구 덕분에 언니랑 내가 영국에 오기 1주일 전에 다녀왔다. 백련암 구경을 하고 지족암에서 한밤을 지냈다. 저녁예불과 새벽 예불을 언니와 함께 한다는 것이 너무 감명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좋은 곳에서 하루를 지낸다는 것이 너무 고맙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고 행운이라고 느꼈다. 오직 고국에서 맛볼 수 있는 이 고귀한 경험을 그 어디에 비교하랴?
이튿날은 향적 큰스님과 승원 스님, 공양주 보살님께 인사 드리고 큰절로 내려갔다. 언니는 절을 둘러보면서 감탄사가 끊이지가 않았고 나는 법당에서 성안 스님께 절을 할 때는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교통사고가 난 뒤에 안 스님이시지만 젊고 할 일이 많으신 분이 갑자기 돌아 가셨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기 때문이다. 원당암에 들러서 금강경 책을 주신 무영스님께 간다는 인사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성철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해인사를 떠났다. 언니 말인즉 다음에 또 같이 절 구경을 가잖다.
지난 10월에 딸과 사위도 한국에 와서 해인사 백련암 지족암에 들렀다. 그들에게 가장 추억에 남는 것이 영국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산사들과 지족암에서 점심공양과 차 마셨던 것이란다. 특히 건축가인 사위는 나무로만 지은 절 건물에도 관심이 많았다. 백련암을 구경할 때 어느 한 스님께서 책 한 권을 딸과 사위에게 주셨다. 불자가 아닌 그들이 그 책으로 조금이라도 불교를 아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제 기도의 영험을 알아서 영국에 가서 부처님을 모시고 기도하기 위해서 나의 큰 스님인 지성 스님께 부처님 한 분을 달라고 요청을 했다. 받아서 영국에 모시고 올 때는 몰랐는데 집에 와서 기도를 하다 보니 부처님께서 웃고 계신다. 그래서 요즈음 나는 항상 웃는 부처님을 보면서 하루를 보낸다.
집에 오자마자 일 할 때 입었던 옷들은 다 버렸다. 이제는 새로운 마음으로 새 삶을 살려고 한다. 돈이 행복을 가져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안에서 우러나오는 행복이 진짜 행복이기 때문에 이제까지 상상하지 않았던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한다. 나의 인생을 보다 즐겁고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새 경험을 항해가면서………
8개월의 고국 방문 끝에서 깨달은 것은 나의 마음의 고향은 한국이고 정신적 고향은 영국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외모는 한국인이 틀림이 없지만 이제 35년을 영국에 살다 보니 한국 사람들과 사고 방식과 생각이 너무나 차이가 나서 한국에는 오래 살수 없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래서 나는 죽는 날까지 먼 영국에서 살다가 가야 하는 것이 내 인생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