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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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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스님의 세계 만행 27 - 원제스님 2014년 09월 391호
한국에서 마약은 아무래도 생소합니다. 마약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유럽이나 남미에 비해, 한국이나 여타 아시아 나라에서 마약은 거의 흔적도 없는 듯합니다. 에콰도르를 떠나 콜롬비아의 메데진으로 가는 도중 저를 포함한 버스의 승객들은 모두 버스 밖으로 나와 검문검색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바로 마약 때문이었습니다. 콜롬비아는 아직까지 마약을 생산하고 이를 전세계에 유통하는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 중 제가 향했던 메데진은 전설적인 마약왕이었던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주된 거점으로 활동하던 지역이었고요.
마약에 대한 관심은 없었지만 마약왕이었던 파블로 에스코바르라는 사람의 행적에는 관심이 생겨서 투어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파블로 에스코바르. 10대 때부터 그는 밀수나 도난 등의 범죄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러다 20대 초반 본격적으로 마약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그의 사업은 점차로 커졌습니다. 2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서는 그는 메데진에서 마약을 생산 가공 유통하는 조직인 카르텔을 장악하게 되었고 인근의 칼리 카르텔도 흡수하게 됩니다. 이렇게 카르텔을 통합하며 그는 미국 내에 공급하는 마약의 80퍼센트를 독점하는 수준으로 영향력을 뻗쳐갔습니다. 유럽이나 아프리카까지 마약을 유통함으로써 그는 전세계 마약 시장의 대부가 되었습니다. 1989년, 미국의 포브스지는 그의 재산을 250억 달러로 추정하여 세계 7위의 부자로 올려놓았기도 했지요.
그는 이렇게 갑부가 되었으면서도 메데진 주민들의 신망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수시로 메데진의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돈을 뿌려주었고 그들을 위해 집을 사주거나 학교나 병원, 교회 등을 지어주는 등 로빈 후드와 같은 의적의 이미지를 만들어갔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그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바탕에 힘입어 국회의원에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정치인이 된 파블로는 수많은 뇌물을 뿌려가면서 정부의 고위 관리층을 포섭했습니다. 뇌물이 아니면 총알. 만일 뇌물을 받기를 거절한다면 그 관리들은 암살을 당했기에 공권력을 넘어선 그의 영향력은 무소불위에 가까웠습니다.
그에게 반대하는 경찰을 죽일 때마다 카르텔의 암살자들은 경찰의 계급에 따라서 포상금을 얻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경찰서를 자동차 폭탄테러로 공격하기도 했고요. 콜롬비아는 이렇게 한 때 마약왕의 무법지대였습니다. 그러던 와중 당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은 콜롬비아 정부에서도 더이상 어찌하지 못하는 거물이었던 파블로를 특수 부대를 통해 체포합니다.
그러나 콜롬비아 경찰에 잡힌 파블로는 콜롬비아 정부를 상대로 해서 기상천외한 제안을 하게 됩니다. 만일 자신과 자신의 부하원들을 사면해준다면 정부가 지니고 있던 빚 3540억 달러(현재 한화로는 360조)를 갚아주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눈치를 보던 콜롬비아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리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간 뿌려온 뇌물의 효과로 그는 일반적인 감옥에 투옥되지 않고 그가 직접 지은 그만의 저택 감옥에 머무르게 됩니다. 무려 40만평의 대지에 테니스장, 수영장, 볼링장, 당구장, 나이트, 바 등이 마련되어 있는 개인의 호화 저택에서 사설 경호원을 둔 사설 감옥이었습니다. 낮 시간동안 그는 안에서 마약과 관련된 사업 전반을 관리를 해나갔고 저녁마다 그만의 호화 감옥에서 파티를 열었습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미국정부는 그를 다시 잡아들이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미리 전해들은 파블로는 저택 감옥에서 탈출해 주민들의 비호를 받으며 메데진 민가로 숨어들어갑니다. 그러다 파블로의 한 측근으로부터 그가 은신해 있는 곳의 정보를 입수하고 미국의 델타포스와 콜롬비아 특수부대 연합은 파블로의 은신처를 찾아냅니다. 1993년 12월 2일. 그는 생일 파티를 마친 다음날 그를 추격하던 특수부대의 작전에서 사살당합니다. 투어는 이렇게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묘지를 찾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럼 파블로의 사후 카르텔은 와해되었을까요? 현재 마약 카르텔은 여러 집단에 의해 분할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공권력이 영향을 미치는 대도시는 괜찮지만 아직도 밀림 지역은 이 집단들의 관리 하에 코카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여러 집단이 경쟁적으로 한정된 마약 루트로 경쟁하다보니까 외려 미국에 공급하게 되는 마약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더 낮아졌고 더 많은 양의 마약이 미국에 공급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파블로의 죽음과 무관하게 마약의 수요는 변하지 않았고 공급은 이렇게 상황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영어 가이드를 했던 친구는 어렸을 적 카르텔간의 분쟁과 테러의 한 가운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녀가 생생히 기억하는 그 시대는 그야말로 공포와 불신이었습니다. 거리에서 누구라도 죽어나갈 수 있고, 비리와 부정을 어떻게든 반강압으로 받아들이며 살아나가야 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의아스러운 것은 그런 힘든 시절을 겪은 뒤의 20대 중후반을 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습니다. 부패한 고위 관리층과 불합리한 사회 제도, 마약을 둘러싼 어두운 과거를 두고 그녀는 \'정말 멋진 나라에다 행복한 국민들이죠\'라는 식으로 조롱을 해댔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런 냉소적인 태도에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빈정거림이나 조롱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방식도 아니고 이를 해결할 의지나 방향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 순간 마음 안의 불편함을 기형적으로 게워내고 해소하기 위함이 이 비아냥거림의 전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대의 불우한 상황들이 자신들의 경험이었기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그녀는 스스로를 항변했지만 사실 이러한 인지의 태도는 인과의 법에도 맞지가 않습니다. 그녀는 스스로와 친구들 세대를 불우한 시대의 희생자라는 결과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 그들 스스로가 현재나 앞으로의 콜롬비아를 책임지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메데진의 모든 젊은 친구들이 그녀와 같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파블로 에스코바르라는 인물이 만들어낸 시대의 불우함이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까지 이렇게 냉소적으로 만든 상황은 어쨌거나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사람의 육신은 죽어 없어지지만, 기억은 이렇게 집착으로 여전히 살아있으니 말입니다.